본문 바로가기
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무위- 피에르 보나르

by 소금눈물 2011. 11. 3.

-= IMAGE 1 =-



그는 그녀를 평생 그리고 살았다.
100여장의 그림 속에서 마르트는 대부분 욕실과 침실에 있다.
사람을 만나기를 극도로 싫어했고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기고 살았으며, 32년 동거생활후 결혼 신고서를 낼 때야 비로소 자신의 본명을 밝힌 여인.
그것도 사후에 재산상속문제로 세상에 밝혀지게 된 커튼 뒤의 여인.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그의 모델이자 연인이고 약혼녀였던 르네 몽샤티와 아픈 이별을 했고, 그녀는 그 충격으로 자살을 했다.
어쩌면 마르트는 그 존재로, 보나르를 평생 얽어매고 자신의 나른한 권태와 비밀로 그의 화실과 의식을 휘감아버렸을 것이다.
마르트를 사랑했지만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육체와 정신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또 그리는 화가 보나르..
파스텔처럼 옅고 부드러운 빛이 무표정한 여인의 마른 육신과 욕조를 희부윰하게 떠오르게 하지만, 어쩌면 그 부드러움 속에서 나는 지독한 권태감을 느낀다.
무슨 생각으로, 무슨 희망으로 살았을까 마르트.
온전히 침묵중인 자기 의식에 빠져서 자신을 지켜보는 보나르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여인..


침실의 은은한 빛 아래 마르트는 누워있다.
아무렇게나 젖혀진 시트와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의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이 여인. 표정을 짐작하기가 난감하다.
글쎄.. 정사의 낭자한 뒷자리를 생각하기엔 갸우뚱해진다.
그녀의 그림자가 더 크게 자리잡은 내 머리속에서는 벗은 몸조차 자기연민에 빠져든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너른 침대는 그녀가 내내 기다란 몸을 담그고 누워있던 물담긴 욕조의 연장과 같이 보인다.
그녀는 침대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베를렌느의 시집 paralle'ment에 삽화로 그려진 것이라 하는데 에로틱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인다. -나만의 착각인지?

폐병 비슷한 지병으로 깨끗한 공기와 목욕을 평생 해야했던 그녀는 어쩌면 그 지독한 자폐와 은둔욕에 딱 맞는 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욕조속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한 침대속에서 빛은 그녀의 몸을 흐른다.

아..
나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