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아들아
이 땅에 너를 씨뿌린 아비를 저주하여라
두부같던 너의 살은 짓이겨졌고 별을 보던 너의 눈은 뭉개졌다.
네가 아직 전사의 팔뚝을 갖기도 전에 불길은 너의 얼굴을 지나갔고
흙벽돌은 어미의 가슴처럼 너의 가슴패기로 무너져 내려
나는 뭉겨지고 이겨진 너의 몸뚱이를 안고 운다
너의 아버지를 저주하여라 아들아
뜨지도 감지도 못한 눈으로, 진흙 구덩이 어디서 뭉개져 잠들어버린 아들아
고운 별자리를, 맑은 들판을 택하지 못하고 아무데나 나고 자란
네 비참한 운명을 저주하여라
딸아. 내 딸아
네 어미를 너를 받아 기른 어미를 저주하여라
애호박처럼 순하고 부드럽던 너의 얼굴 간데 없고
맨발로 어미는 흙더미를 파헤치다 운다 운다...
쇠종처럼 울리던 너의 웃음소리 간데 없고 버짐핀 그 얼굴도 어미는 찾지 못해
어미를 용서하지 말거라
햇솜처럼 포근포근 어여쁘던 내 새끼야
한끼 배부른 이팝 한번 맘 놓고 먹여보지 못해 한이 된 에미.
네 꽃같은 작은 입에 재갈을 물려버린 다만 에미였다 생각하거라
우리의 목구멍을 죄고, 우리의 논밭이 황무지가 되도록한
저들이 아니라, 이 허무한 땅에 너를 내어 기른 에미탓이라 하거라.
오 내 새끼들아 어디로 갔느냐.
한 번의 폭풍이 어쩌자고 내 새끼들을 태워 지나가고
어찌하여 에미 애비 맨발로 너희들의 탄 몸을 찾아 떠돌게 하느냐
누구였느냐
누가제비새끼같은 너희들을 불구덩이로 몰아 태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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