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봄 바람은 다만 꽃바람은 아니다.
바다에서 오름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피의 빛깔로 불어온다.
제주 낮은 오름마다 피고지는 철쭉들은 피냄새로 젖어 운다.
제주 섬 주민의 삼분의 일이 그렇게 죽어갔다.
반공의 이름으로, 반미의 이름으로.
아비와 아들이 한 날을 제삿날로 가졌고
어미가 보는 앞에서 아이의 숨통이 끊어졌고
죽은 아이를 두고 어미는 바다로 바다로 달려갔다.
인륜은 생존보다 무겁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십 년 침묵을 강요당했다.
소리내지 못하는 생울음은, 고샅길에서, 고목 등걸에서 봄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다에서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슴뼈 헤치며 운다. 운다..목메어 부른다.
저 하늘. 시시로 짖치며 감아오던 검은 기운.
늙은 아비의 밥상에 올리던 감자 한알
어린 딸의 주먹에서 놀던 조개껍데기
동화같은 이름들만이 숨을 쉬던 그 섬. 제주..
그 순하고 어린 것들 다 무서워 고개를 돌리고
무서워 무서워 도망질 치고
하늘도 두려워 눈을 가리던 날.
그날의 울음이 어디 있느냐
그날의 피 묻은 죽창은 누가 감추었느냐.
아비의 해골뼈를 찾지 못했는데
학도병에서도 살아난 막내아들, 그 살 한점 남기지 못하고 앗겼는데
누가 화해도 없이 용서를 말하느냐
누가 눈물도 없이 침묵을 강요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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