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드디어 무량수전이 나왔네요.
정면보다 이렇게 찍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사실은 손님들이 너무 많고 마당이 좁아 저 지붕선을 제대로 담기가 어려웠어요 T.T)
지붕선이 아가씨 치마폭을 양 쪽에서 살짝 들어올린 듯 하지요?

소백산기슭부석사의한낮,스님도마을사람도인기척이끊어진마당에는오색낙엽이그림처럼깔려초겨울안개비에촉촉히젖고있다.무량수전,안양문,조사당,응향각들이마치그리움에지친듯해쓱한얼굴로나를반기고,호젓하고도스산스러운희한한아름다움은말로표현하기가어렵다.나는무량수전배흘림기둥에기대서서사무치는고마움으로이아름다움의뜻을몇번이고자문자답했다.……기둥높이와굵기,사뿐히고개를든지붕추녀의곡선과그기둥이주는조화,간결하면서도역학적이며기능에충실한주심포의아름다움,이것은꼭갖출것만을갖춘필요미이며문창살하나문지방하나에도나타나있는비례의상쾌함이이를데가없다.멀찍이서바라봐도가까이서쓰다듬어봐도무량수전은의젓하고도너그러운자태이며근시안적인신경질이나거드름이없다.……무량수전앞안양문에올라앉아먼산을바라보면산뒤에또산,그뒤에산마루,눈길이가는데까지그림보다더곱게겹쳐진능선들이모두이무량수전을향해마련된듯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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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했던 우리 문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리움을 곡진하게 보여주셨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명저<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송광사처럼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 단청을 입힌 것도 아니고 담백하고 고졸한 이 기둥 하나에 그만한 사랑과 찬사를보내고 또더불어 감동하며외면했던 우리 문화재를 다시 돌아보게 했으니 참말로 대단한 기둥이고 대단한 선생이셨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문화재 뿐 아니라, 그 깃들인 마음과 뜻을 알아주고 기리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혜곡 선생이야말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못지않은 우리 문화의 보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치장이 없으니 소박하게까지 느껴지네요.
날이 잔뜩 흐리네요.
무량수전 동탑 언덕 쪽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조사당 올라가는 길에 있는 삼층 석탑입니다.
상륜부 옥개석이 많이 상했네요.
이 바위가 절이름의 유래가 된 부석입니다.
의상대사가 불법을 구하러 가는 길에 만난 선묘라는 아리따운 처녀를 만납니다.
선묘의 연모와 달리 의상대사는 받아줄 마음이 없었고 선묘는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되어 그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네요.
선묘는 의상대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산에 뜬 돌(浮石)이 되어 들끓던 도둑을 내려치겠다 위협하여 몰아냈다지요.
지금도 본당 아래 마당에 용이 된 선묘가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티비 다큐멘터리에서 무량수전 마당 아래 깊은 땅 속에 형체가 꼭 공룡의 등선을 닮은 커다란 바위를 봤습니다.
전설이 뜻없이 남았을리 없겠지요.
그런데 좀 씁쓸한게요.
왜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남자들의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 게다가 대부분은 여성들의 희생이 필요했을까요.
아무 댓가없이 헌신한 가엾은 그녀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지요.
생각하면 사랑은 참 부질없고 쓸쓸하지만 그것으로 온 생을 견디어 가는 이들에겐 또 그만큼 절대적이었겠지요.
반드시 보답받아야 사랑이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뤄지지 못한 사랑은 참 쓸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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