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새삼 이 그림에 대해 뭐라 말을 얹는다는게 송구스러울 정도의 명화.
추사는 당시로서는 살아돌아오기 어려운 절도 제주로 유배된 때였지요.
제주로 유배된 이들 중에 실제로 다시는 육지를 밟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거나 그 한을 다스리지 못하고 망망대해에 몸을 던진 일이 허다했답니다.
버림받은 땅, 더우기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이름을 떨치던 이들이 절도에 내쳐져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밤을 지샐때 몸서리쳐지는 그 한들을 어찌 다 이루말할 수 있을까요.
허나 이 까마득한 외로움의 처지에도 그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제자와 벗들의 힘으로 그는 버텨냈겠지요.
이러한 처지의 추사에게 제자 이상적이 북경을 다녀오며 귀한 서책들을 구해 스승을 방문하여 전해줍니다. 뼈가 저리는 외로움과 세사의 무상함에 지쳐있던 추사에게 얼마나 반가운 손님이었을까요.
이에 추사는 이 그림을 그려 전해주며 그의 정에 감사합니다.
그림에서 잘려버렸지만이 그림 왼편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는 화제가 붙어있습니다. 권세와 이익이 아닌 진정한 벗의 사귐이 한겨울 찬서리속에서서 푸르른 소나무로 나타납니다.
이 뛰어난 그림을 받고 감동한 이상적은 감격하며 이 그림을 다시 연경으로 가져가 지기에게 보여 발문을 받아오겠노라 했지요.
추운 겨울 바람을 덥히는 아름다운 두 사람의 정은 뒤로 하고-
풍죽도에서 이 그림을 쓴 배경에는 단지 이 그림의 차고 서늘한 기운, 그 쓸쓸하고 스산한 겨울날의 이미지 단순히 그것이었습니다.
무성한 모든 것들이 다 져버린 겨울날, 인생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것들이 모두 물러나버린 그 쓸쓸한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서 홀연히 바람소리를 헤며 겨울밤을 지새는 노인.
밤을 뒤척이며 돌아보는 젊은 날은 그저 허망하고 쓸쓸하여 외롭기만 한데
문득 떠오르는 마지막 얼굴들, 그들의 이야기...
창의 독백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아 참. 이 그림에서 김정희는 완당이라는 호를 쓰고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가 잘 아는 추사, 완당 외에도 수백 개의 호를 가지고 있답니다. 자신의 호를 짓기를 즐겨했고 또 남에게 호를 지어주는 것을 즐겨하셨으니 아마도 자신의 호를 다 외지도 못하셨을 거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