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기사가 미주를 억지로 데려가려는 걸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미주는 싸늘합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하강재씨가 끼어들 수록 꼬여요.
참담한 강재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마음도 어둡기만 합니다.
그래도 걱정을 떨치지 못해 따라왔는데 예감이 맞았습니다.
붐비는 러시아워에 미주의 자동차가 서 버렸네요.
사방에서 울려대는 경적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미주.
다시는 끼어들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일이 작을 것 같지 않네요.
진수선배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는 못 탈 것 같다네요.
허락없이 덩달아 타이어를 갈아버렸다고 진수선배에게 화를 내는 강재에게 고소해하는 미주.
아 이거 어째 싸우는 분위기가 못된다는 거지요.
표정관리, 잘 안되시죠?
네.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에게도 ^^
어머나.
이 사람, 카레이서이기도 했다네요.
의외의 얼굴입니다.
모델로 와 달라는 초청을 받고, 갈 수는 없지만 살짝 설레네요.
그런데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가 풀어지던 두 사람의 얼굴을 다시 얼려버렸습니다.
신도에, 아이들만 있는 교회에 창배일당이 와 있답니다.
남창배.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지요.
마음이 급해집니다.
다행히 창배일당은 순순히 물러나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이제 신도의 교회 위치까지, 아이들의 얼굴까지 모두 파악해버렸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한바퀴 돌아서 미주의 뒤를 침으로써 강재의 가장 예민하고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아킬레스건을 알아차렸다는 것이 더 큰 부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위기를 넘겼습니다.
뜻밖에 크리스마스를 여기서 이렇게 보내게 될 것 같네요.
신이나서 성극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미주의 율동을 보며, 처음으로 크게 소리내어 웃어본 강재.
서툰 톱질로 무대장치를 준비하는데, 어째 두 사람, 톱질만큼이나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애써 만든 무대에서 뛰는 아이들을 보니 흐뭇해졌네요.
아니라구요?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구요?
수상해~ 수상해~
미주씨. 바른대로 대답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 하면 안되지요.
정말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입이 벙그러졌던 겁니까?
톱질도 서툴고, 자기가 잘못한 걸 목사님이 그랬다고 덮어씌우는 저 나쁜 양을 좋아하는 건 아니시구요?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혼자서 뒷정리를 하며 남은 강재.
자신의 이익과는 아무 상관 없는, 조무라기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며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아마도 그의 생에 처음이었을 겁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은신처로 숨어들었던 곳이었지만, 여기에서 보낸 짧은 시간들은 그의 인생에서도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던 추억으로 남았지요.
그 추억의 장소를, 삿된 어떤 그림자로도 얼룩지게 할 수 없는, 그렇게 소중한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강재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미주는 다 알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도, 그와 함께 보냈던 그 순간들이 그렇게 빛나고 소중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날 밤.
온 세상이 다 잠든 그 밤.
누군가 가만히 그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하늘의 달도 별도 모르는, 하나님도 모르는, 하루 당긴 크리스마스 이브.
내일이면 모르는 사람들처럼 또 그렇게 세상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파티가 시작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