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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연인의 마을

마지막 문을 닫으며

by 소금눈물 2011. 11. 10.





살아있다는 것은 때로 그렇게 잔인합니다.
살아서 함께 하고 싶었던 이들
그들은 이 목숨값을 대신 치르고 떠났고
그리고 누군가는 또 자신의 고통을 대신 치르며
남은 시간을 또 그렇게 살려 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고 사랑해주었던 그 사람들.

이렇게 환한 겨울햇살을 언제 만났는지도 아득한데
마음은 얼음벌판에 혼자 서 있는 듯 합니다.
잃을 길도 더 이상은 없이 절벽 앞에서 나는 길잃은 양처럼,
정말 도무지 갈 곳도 없는 어린양처럼 오도카니 서 있습니다.





언젠가...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낀 날이 있었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태어나서 고맙다고. 내 앞에 와 주어서 고맙다고. 나와 함께 있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이 비루하고 가난한 생에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를 알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그 따뜻한 눈길. 전해오던 그 미소, 환한 눈부처 아직도 선연히 떠오릅니다.
잊고 싶어서 그토록 많은 밤을 울부짖었고
잊혀질까봐 그토록 많은 밤을 두려워 떨었는데
내민 손을 가만히 마주잡고 빙긋 웃어주던 그 모습이 이렇게나 사무치게 떠오르는데...





무심하고 독한 것이 사람이라니
그 기억들도 끝내는 잊혀질 날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젊은 날의 한때의 흐린 추억으로 떠올릴 날이 있겠지요.
그런 밤이면...잠깐 뒤척이며 가슴을 부여잡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지워버릴 얼굴이 될 것입니다.





오기야 오겠지요.

더구나 그 사람은 세상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을 사람.
누군가 그녀 옆에 서고 그녀도 언젠가는 그 사내에게 마음을 주며
이 시리디시린 이야기는 또 어지러운 한때의 꿈처럼 지워버릴 날이 올 것입니다.

오겠지요...

다만.
내 부질없던 한때의 추억, 사랑이라고 말을 건네보지도 못했던 그 짧은 봄날에
마지막으로 허심한 인사를 나누는 것 뿐입니다.

잘 가라... 잘 가라 내 청춘.
뜨거운 지문처럼 가슴에 남은 그날의 이야기는 이제 물그림자로 지우며
나 혼자 그 시간들을 더듬어 마지막 얼굴을 들여다보며 안녕을 고합니다.

다시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다시는...다른 누구와도 그런 꿈을 감히 꾸는 날은 영영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마지막 문을 닫으려는 의식일 뿐입니다.





참 바보같던 그 사람.
좋아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고백해놓고도 저 먼저 울어버리던 사람.
저를 어찌 해할지 모르는 무서운 놈들에게 목덜미를 잡혀서도
저를 놓고 도망치라고 울부짖던 사람.
4년동안.. 한번도 대답도 없고 만나주지도 않는 나쁜 놈을 그렇게 무작정 기다리고
매몰찬 말 한마디에 그렇게 무너지던 사람...

견뎌보라던 그 말이 뼈에 사무치게 살아납니다.
견뎌야겠지요.
그리움에 목구멍이 아파서 피가 솟구쳐도 견뎌야겠지요.
죽을때까지 다시 만나지 않는다니... 세상 끝으로 가버린다니 아마도 정말 정말...
다시 만날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 견뎌야겠지요.
생각만으로 나는 미쳐버릴 것 같지만... 나는 영영 사람이 못된 채 허파가 빠진 짐승처럼
그렇게 미쳐서 죽고 말겠지만... 그래도 견뎌야겠지요.






형...
그 여자 지금 내 옆에 있어.
내 옆에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잠이 들어있어...
형도..보여?...
형... 형은 좋겠다... 그냥 더는 아프지 않을테니까... 이렇게 아프지 않을테니까...
형 좋겠다...
정말 좋겠다....





사람이 죽으면 가장 귀한 것 하나만 가지고 하늘에 올라간다는데
나는 아마도 어떤 사람의 숨결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갈 것 같아.
그 사람은 다시 나 못 본다니... 죽어도 만나지 않을 거라니...
영영 나 모르고, 못보고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나... 그 숨결 하나만은 간직할래.
내 어깨에 기대 가만히 잠들었던 그날 밤 숨결 한 오리만...나 간직할래.
그건 아무도 모를테니까...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테니까

그 정도는 괜찮겠지?
괜찮겠지 형? ....



내 몸이 때묻어 그대 곁에 못가네
내 마음이 망가져 그대 곁에 못가네
그댄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련만
그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
내 마음이 무너져 그대 곁을 떠나네
내 몸이 부끄러워 그대 곁을 떠나네
그댄 아직도 내가 오리라 믿으며 있으련만
이렇게 누추해진 목숨을 들고 어이 그댈 만나리
내 삶이 부끄러워 그대 곁에 못가네

<여기 있는 까닭>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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