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재씨에게 참 힘겨운 날입니다.
자신의 아들 세연에게도 그토록 냉정한 회장님이
어째서 자신은 그렇게 늘 따뜻하게 바라보고
덮어주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아버지라고요...
깡패가 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어 찾는 것 조차 포기했던 아버지가, 그 분이었다구요.
그동안 세연이 왜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고 밀어냈는지 이제야 알 듯도 합니다.
지척에 아들을 두고 십 칠년을 바라보면서 살피기만 했을 그 "아버지"
그 속을 강재는 알지 못합니다.
아직 강재는 혼란입니다.
뼛속 깊이 박힌 외로움, 그리움, 그것들이 일시에 원망과 미움과 또 반가움으로 뒤섞여버렸겠군요.
더 이상은 고아가 아니라는 기쁨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저 바라보면서
깡패로 만들어버린 원망...아마도 그게 더 크겠지요.
강재에겐 이 방이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선물받은 곳.
세상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 여기서는 그 모든 허물과 상처를 다 잊을 수 있는 곳이었지요.
이 혼란을 감당 못하는 그가 도망쳐 숨을 수 있는 모태 같은 곳.
이 사람만 보고 있으면
이 혼란과 고통을 다 잊을 것만 같습니다.
조폭 하강재가 아닌 그냥 하강재.
각목을 든 하강재가 아니라
밤거리의 군밤장수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장갑 낀 손을 들여다보게 된 하강재...
어쩌면 사랑은 이토록 놀라운 것일까요.
크리스마스 전전야의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놀랍도록 가까와져버렸습니다.
떠올리기가 아직 부끄럽고 설레는 두 사람.
바라보기조차 아깝고 소중한 사람들.
혹시 우리 처음 만났는지..기억해요?
- 그걸 어떻게 잊습니까...
잊을 수 없겠지요.
강재가 기억하는 그 날, 미주는 난데없이 뛰어들어 다짜고짜 자기의 멱살을 잡았지요.
그렇게 잡힌 인연이 지나 지금 여기에 와 있군요.
첫사랑을 고백하는 소년처럼 강재의 얼굴이 수줍습니다.
일식집.. 아니예요..
아!
그랬군요.
유진의 화를 풀어주려고 옷을 사러갔던 날, 자꾸 옆에서 얼쩡거리며 눈치를 보던 여자
그게 미주였군요.
그러면 우리의 인연은 더 뒤로 갑니다.
강재는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그 드레스요.
참 이뻤는데 내 인연이 아니었던 것처럼
당신 참 이쁜데... 내 인연이 아닌가봐요.
이게... 무슨 소리지요?
지금 이 사람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거지요?
인연이 아닌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교통사고라고...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고...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우길 수 있을 때 그만... 헤어지자고...
강재의 가슴 속으로 가슴 깊이 박혀버린 칼날이 한바퀴 돌아버립니다.
당신 참 이쁜 사람인데 내 인연은 아닌가보다...
그녀의 말이 날카로운 그 칼날처럼 후벼파고 있습니다.
우리... 그만해요...
이토록 무섭고 고통스런 말을 그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인가가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강재는 그만 자신이 얼음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럽니까...
나는 미주씨에게 가려고 죽을 힘을 다 하고 있는데... 왜 이럽니까...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힘겹게 올라오는 그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그녀의 얼굴도 떨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갈텐데...이제 갈 용기도 생겼는데...
왜 오지 말랍니까.
여기 말고는... 갈 곳도 없는 사람한테...어떻게 나가랍니까...
가라니 가겠지만...안 그래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새끼한테
왜 해줄 수 있는 게 가는 것 밖에 해줄 수 없게 만듭니까...
그는 이 순간, 상택형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을까요.
이제 정말 행복을 알 것 같다고
이 여자와만 있으면 자주 행복할 것 같다했던 그 설레임. 기쁨...
자신이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쁨
누군가를 떠올리며 행복하고 떨리고 가슴아팠던 그 마음이...
이제는 인연이 아니라니, 가라니 가야합니다.
좋아합니다.
네... 하나님 앞에서, 당신 좋아합니다...
바로 이 곳에서 그날 밤 눈물에 젖어 들려주었던 그녀의 고백이
그가 자신의 상처를 딛고 한 남자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용기가 되었는데
아니랍니다.
이제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답니다.
그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사랑의 무게와 상관없이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이 될지.
그녀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통고에 그렇게 물러나주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지.
그럼에도 자신들의 선택이 옳아야 한다고 .. 그들은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닌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누군가 또 그 새벽 선착장에서 오래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차를 보았다면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심장을 뺏겨버린 얼굴로
누군가가 그렇게 오래 텅 빈 바다를 바라보고 있더라고.
금방이라도 그 바다로 걸어들어가버릴 것만 같은 얼굴로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더라고...
새벽바다 앞에서
그는 그렇게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다로 가 버릴 것만 같은 그 차를 보면서
누군가도 오래오래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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