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사무실 내 책상 위 벽에 붙여 놓은 광안리 해변 사진을 보고 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해변, 온통 짙은 청색의 수평선이 한 가운데 차지할 뿐 갈매기 한 마리, 행인 하나도 없는 황량한 모랫벌이다.
재작년 가을, 옆 사무실 정선배와 결혼 전 마지막 여행으로 광안리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사내 결혼을 했다.
일하는 틈틈이 어쩌다 눈길이 사진으로 간다.
"승옥씨 뭐야. 이런 덴 애인 사진이나, 하다못해 멋진 관광지 사진이나 그런 걸 붙여두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밍밍한 모랫벌이 뭐냐구. 이왕이면 각선미 늘씬한 사진이나 좀 붙여줘. 칙칙한 사무실 좀 환하게"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고 가는 아래층 김 대리 말이 아니더라도 누가 봐도 그거 밋밋한 사진 한 장일 뿐이다.
어젯밤 자다가 받은 전화는 명숙언니였다.
울음 끝에 하는 전화인지 목소리가 낮게 젖어 있었다.
미망이라고 적은 네 말을 한참 생각했다고 했다.
그랬던가.
내가 편지에서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그게 미망이겠는가.
나는 나즉나즉 중얼거리는 언니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맘에 맺힌 말이 있을 터인데도 언니는 요즘 온천장에 지는 벚꽃이랑 범어사에 놀러 갔다가 본 대웅전 꽃창살 무늬 얘기만 하더니 끊어 버렸다.
가만히 손을 벽에 댄다.
내 귀에만 찰랑거리는 그 물결 소리가 들린다.
물길은 벽 속으로 흐르다 내 손길까지 닿을 것만 같다.
문득 손을 떼어 들여다보니 물빛이 손바닥을 물들인 것처럼 파랬다.
해변에 와 부딪는 물결이 차르르르 내 가슴까지 이른다.
훌쩍 그렇게 다녀온 후 다시는 광안리에 가지 못했다.
간간히 전해듣는 말로 광안대교를 만들면서 해안선이 바뀌고 전망도 망가져버렸다는 것은 안다.
그럴 것이다
죽거나 변하는 것 말고는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