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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놀다

호구산

by 소금눈물 2011. 11. 9.

10/14/2007 07:36 pm공개조회수 0 2





밥벌이의 난으로 여행기가 한참 늦어졌네요.
여행 다녀오고 난 뒤에 하도 정신없이 빠져 있어서,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에 갔다오긴 한 건가, 가기 전에 그토록 설레던 마음이 온데간데 없습니다.

암튼 기억력을 되살리며 다시 고고~~!

소주는 오나라의 수도였지요.
오월동주, 와신상담의 전설이 있는 그 오나라.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그런 자부심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소주는 평야인고로, 이곳으로 올 때도 몇 시간을 차로 달려도 낮으막한 산 하나 볼 수 없이 가도가도 끝없는 평원이어서 참으로 기이하고 부러웠습니다.
운하도 많고, 기온도 좋아 일 년에 두번이나 쌀농사를 짓는다니 고래로 풍요롭기도 하겠고, 여기에서 나는 비단이 좋아서 옛날부터 나라간 서로 차지하려는 고장이었다지요.
중국 땅 넓으나 넓은 터전에 이런 곳은 얼마나 되겠으며 여기서 나는 소출이 얼마나 대단할까 싶으니, 좁은 땅에서 머리터지게 복닥거리며 전쟁을 치루고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가 참 서글펐습니다.
이 무지막지한 땅에서 쌀이며 농산물이 제대로 마구 들어오게 되면 우리 농민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답답도 하구요.

이런 땅과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 역사를 가지고 왜 이 작은 나라의 역사를 못잡아먹어 안달인가 싶으니 억울하고 울화도 치밀었습니다.
암튼, 대단히 애국적인 이런 마음을 가지고, 호구산에 오릅니다.

호구산은 말이 산이지, 산이라곤 볼 수 없는 이 곳에서나 산소리를 들을 낮으막한 구릉 같은 곳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참 많지요?

호구산이라는 이름에는 역시 와신상담의 주인공 부차의 이야기입니다.
오나라 보다 힘이 약했던 월나라 구천에게 패해 죽려는, 아들 부차에게 이 원수를 반드시 갚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지요.
그를 묻은 지 3일 째 되는 날, 흰 호랑이가 내려와 아버지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고로 이 이름을 따 호구산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부차가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고 밤마다 섶위에 자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사람을 세워 자신이 들고 날 때마다 "부차야 네 아비의 원수를 잊지 마라!" 외치게 하지요.

부차는 이렇게 때를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이 공격을 합니다.
하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부차에게 대패하고 항복했지요.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는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죽이라 간언하지만 , 부차는 구천의 충신 범려가 보낸 서시의 미모에 홀려서 구천을 살리고, 마굿간에서 똥을 치우게 합니다

갖은 고생 끝에 부차의 마음을 산 구천은 귀국을 하게 되고, 이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쓸개를 매달아 놓고 핥으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리하여 12년 후, 부차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나라를 비운 틈을 타서 오나라를 공격해서 이 곳 소주에서 부차를 굴복시킵니다.
목숨은 살려주었으나 부차는 거절하고 자결해버립니다.
서시에 빠져 나라일을 등한이 하는 부차에게, 오자서가 충언을 거듭하자 목을 베어버렸으니 죽어서도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 얼굴을 가리고요.
오자서는 죽으면서 쳐들어오는 월나라를 보겠다고 그 쪽 문에 목을 묻게 했답니다. 

구천의 책사였던 범려는, 구천의 상이 고생할 때는 함께 있을 만 하나 부귀영화를 함께 누릴 상은 아니라며, 적국이 망하면 책사는 모략을 받아 죽고,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먹힌다 라는 말을 남기고 월나라를 떠납니다.
토사구팽~!

 



오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이 군데군데 보이구요.




사자를 여기서 또 봅니다.
애교부리는 강아지 같이 귀여워서 도무지 저 녀석이 어찌 벽사의 노릇까지 하나 싶습니다. ^^





이 우물은 감감천이라고 부른답니다.
감감의 우물.

우리도 흔히 말하는 "지성이면 감천"의 어원이 되는 우물이라네요.
옛날 이 호구산 꼭대기에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절에 조그마한 동자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 이름이 감감이었대요.
그런데 그 스님은 눈이 멀었습니다.
감감스님은 아침마다 산 꼭대기 절에서 이 산 입구에 있는 곳에 있는 우물까지 물을 길어야 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며 한참 먼 길을 오르내리며 물길러 오는 것이 고역이었겠지요.
하루는 딱 중간인 이곳에 이르러 더듬거리다 그만 엎어져버렸습니다.
서럽고 기막혔겠지요.
그런데 땅에 댄 귓가에 물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눈이 어두우니 귀가 밝은 탓이었던가.
물소리를 듣고 스님은 정신없이 맨 손으로 땅을 파 헤집는데, 마침 지나가던 주지스님이

"감감아, 너 무얼 하고 있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하여, 여기서 우물이 있는 듯 하다, 물소리가 들립니다~ 하였더니 스님 가가대소하면서 왈~

"여기서 물이 솟는다면 내가 두꺼비가 되겠다."
했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물기둥이 펑 솟는 것이었습니다.
감감스님이 깜짝 놀라 눈이 번쩍 떠졌는데, 바로 옆에 있던 스님이 온 데 간 데 없더라네요.




우물 옆에 있는 요 바위,
두꺼비가 되신 주지스님이라십니다. ^^

지성이면 감천 - 정성을 다 하면 하늘도 감동시킨다 해서 느낄 感자를 쓸 줄 알았는데, 어원의 감字가 다르더군요.

재미있는 일화였습니다.




복수를 다짐하던 합려가 명검을 얻어 그 칼을 시험해보았다는 시금석.
단 한 칼에 저렇게 쩍 갈라졌다네요.
이 칼을 묻었는데 그 비밀을 아는 천 명의 사람을 모두 죽여서 비밀을 지키게 했답니다.




요기에 돌을 던져서 위 올라가면 아들이고 떨어뜨리면 딸,-
점을 치러 신혼부부들이 많이 온답니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다는 옛이야기가 나온 정자도 있고 하던데, 우리가 간 날은 몹시 분주해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올라가는 중턱에 넓직한 바위광장이 있는데 소수민족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아 생각해보니 중추절이네요. ^^
민족 별로 다양한 복장과 춤으로 공연을 하는데 한참 넋을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좀 보실래요?





단단한 몽둥이로 몸을 가격하고 부러뜨려보이는데, 무술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걸 자랑하는 모습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겐 별 감흥은 없고, 옷이 형광색이라 눈이 좀 아팠습니다. ^^;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인데 아찔하도록 깊습니다.
부차가 그 명검을 보물과 함께 이 곳에 감추었는데 나중에 진시황이 그 검을 찾으려고 이 곳을 죄다 파보다가 산 꼭대기 탑이 기우는 바람에 포기했답니다.




바위다리가 젖어 있는데다 안전대가 없어서 여차하면 저기로 퐁~
이 사람들은 굉장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데, 관광객도 많으면서 안전에 대한 개념은 별로 없나봐요.
어질어질 합니다.



서시가 내려다보았다는 거울입니다.
그 아름다운 서시가 물에 얼굴을 비춰보다 빠질까 하여 이렇게 구멍을 내주었다네요.
한 번 보면 십 년이 젊어지고, 두 번 보면 십 년이 늙는다나요. ^^




열심히 두리번 거리며 호구산 꼭대기에 올라왔습니다.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는 호구탑입니다.
호구탑은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입니다.
약간 각도가 기울어 있어요.
내부는 들어갈 수 있는데 위험해서 1층만 관람이 가능하구요.




윽~!
사진촬영이 금지되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찍다가 공안아줌마에게 큰소리를 들었습니다.




유적은 잘 관리되고 있네요.



용도가 무엇일까나..



호랑이가 새겨진 것 같지요?



서시가 이 문을 들고 났을까요? ^^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장식들이라 열심히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호구산을 내려오며 돌아보았네요.
어르신들도 무리없이 오를만한 곳입니다.
여기저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으니, 올라가실 분들은 미리 이 이야기들을 알고 가시면 더 유익하실 듯 합니다.




운하의 도시 소주, 좀 있다가 운하 구경을 제대로 해보기로 하구요.




호구산의 상징인 백호가 새겨진 답도입니다.

기억이 알딸딸해져서 밥을 언제 먹었는지, 운하는 어디 다음에 갔는지 마구 뒤엉키고 있습니다. ㅠㅠ

다음엔 한산사로 가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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