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한 수 시이다.
노인은 작은 배에 앉아 언덕에서 강물로 떨어지는 매화 그루를 바라본다.
노인이 바라보는 것은 오직 그 매화 한 그루이니 언덕과 강 아랫편 사이에 아무것도 필요없이
오직 뿌연 안개일 뿐이다.
매화가지를 그리던 붓끝이 슬그머니 아래 쪽으로 떨어져 강물위의 노인과 사동을 그려내고
다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실제로 언덕 위의 매화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 매화 한줄기는 이 생의 것이 아니고 선계의 어떤 것인양 아련한 것이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하다.
젊은 시절 호방하고도 꼼꼼하여 화면 가득 이야기 거리를 만들던 단원의 그림은
말년으로 갈수록 불교적인 색채와 아늑하고 조선적인 선계로 들어선다.
단원의 일생, 환쟁이 중인 신분으로 어진을 그리고, 신분제가 엄혹하던 그 시절 찰방 현감까지 오르며 출세도 맛보고 가난과 고독으로 말년을 보내기도 했으니,
나는 이이를 요즘 다시 생각하면 내가 그다지도 사모한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저잣거리의 엿장수, 대장간 아이로부터, 애욕이 흘러넘치는 양반, 기녀들의 사랑 놀이.
그의 그림이 임금의 지밀 정보였다는 풍속화, 드디어는 그윽한 선계와 불계에 접어든 신선의 경지까지
그토록 민중을 애틋이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세계도 선계로까지 끝없이 뻗어갔던 그 사람.
아....단원에게는 정조가 있었다 하나, 그 아픈 종사관에게는 누가 있었던가.
그의 재주를 아끼고 키워준 좌포장이 있었다 하나 그를 베어버린 것은 한 가지의 여린 매화였으니..
주상관매와 행주도,추성부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턱없이 좋아하는 단원의 그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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