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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루만지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4

by 소금눈물 2011. 11. 7.

*거품

적지 않은 사랑이 거품이라는 것은 슬픈일이지만, 그런 거품 없이 이뤄지는 사랑은 매우 드물 것이다. 열정을 낳는 것은 부풀려진 매력인데, 그 부풀려진 매력이 바로 거품이기 때문이다. 슬퍼라, 거품은 사랑의 유토피아(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다)다.

!

p.210

*어루만지다

강제나 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면, 어루만지는 행위는 그 대상에게 주체의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다. 때로 그 사랑의 대상은 "청화백자를 어루만지다"나 "소담한 벼이삭을 어루만지다"에서처럼 사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 연인이 무슨 일로 모욕을 당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따스한 언어로. 제 연인이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가 발목이 접질렸을 때, 우리는 그 발목을 어루만진다. 따스하고 섬세한 손길로. 그러니까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다.

p.233


* 서랍

시간은 기억의파괴자다. 그런데 이 파괴자는 가까운 기억부터 차례차례 허물어뜨린다. 먼 기억이 가까운 기억보다 더 또렷한 이 현상을 나는 '시간원근법의 역설'이라고 부르련다.


p.238


* 버금

사랑은, 특히 열애나 순애는, 그 주체와 객체의 으뜸감과 버금감을 뒤바꾸는 행위다. 사랑이라는 열병은 그 주체의 자기보존 욕망, 자기확장 욕망을 더러 압도한다. 고금동서의 많은 연애서사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는, 심지어 목숨을 내던지는 인물을 등징시킨다. 이것은 유전자의 자기보존과 확장 욕망에 어긋나는 행위다. 아니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버이들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이 유전자를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p. 238


연애서사 속의 인물들은 자신과 피를 나누지 않은 연인을 위해 더러 목숨을 바친다. 으뜸의 자리를 연인에게 주고, 제게는 버금의 자리를 남긴다.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개인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열정에 빠진 한 개인은, 같은 종種에 속한 이성(때로는 동성)이라는 것말고는 자신과 아무런 생물학적 실로 연결돼 있지 않은 타인을 자신보다 더 중요시한다. 제 유전자의 확산과 무관한 경우에도 이런 자기희생을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사랑은 정신의 질병이랄 수도 있다. 제 유전자의 확산과 무관한 경우에도 제짝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생물체가 이 행성 위에 사람말고도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순전한 사랑은 그 주체끼리 으뜸의 자리와 버금의 자리를 맞바꾸는 행위다. 또는 최소한, 자기 다음의 자리, 즉 버금 자리에 한 타인을 세우는 행위다.

(윤... 나는 그 이름을 지울 수 없다...ㅠㅠ)


p.247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세상의 으뜸이 되는 것, 상대에게 으뜸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버금으로 내려앉는 것, 2인 공동의 배타적 이기주의, 그게 내가 생각하는 연애고 사랑이다.


p.248


*
비탈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늘 평정을 이룰 수만은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숨 쉬기와 희로애락에서도, 사랑과 걷기는 사뭇 닮았다. 열정이 높은 기울기로 상승할 때, 거기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엔 조바심과 불안이 들러붙어 있다. 비탈길을 오를 때처럼 숨도 가빠진다. 높은 기울기로 상승하는 열정은, 높은 기울기로 하강하는 열정만큼이나 스트레스다. 열정이 하강할 때도, 슬픔과 허무감만 있는 건 아니다. 거기엔 후련함, 속시원함, 해방감이 따른다. 비탈길을 내려갈 때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아아.. 영원할 줄 알았던 그 사랑이 스러질 때의 마음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해방감- 일 수도 있다니...

p.251-252


* 엿보다

'엿보기'가 사랑의 말이라면 그 사랑은 불구의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은 제 눈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간수看守의 사랑이자, 딴 사람의 눈에 걸려든 수감자의 사랑이다. 사르트르가 제 희곡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지옥이란 타인들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전형적인 타인이 바로 '부아이외르', 엿보는 사람들일 테다.

p.260


그러나 엿보기는 곱다란 사랑의 시작이기도 하다. 나무꾼과 선녀의 사랑은 지상의 샘에서 멱을 감는 선녀를 나무꾼이 엿봄으로써 시작됐다. 엿보는 사람은 음란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수줍은 사람일 수도 있다. 순애純愛는 본디 수줍음에서 발원한다. 연모하는 마음은 붉디붉은데 제 처지에 비춰 언감생심일 때, 사람은 상대를 맞보지 못하고 엿본다. 그 엿보기의 사랑은 흔히 짝사랑이다. 사촌누이 록산을 향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엿봄의 사랑이다.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넘보지도 못하는 사랑, 그 비스듬한 사랑이 엿봄의 사랑이다.


록산느, 시라노, 시라노, 록산느..



p.260


고종석.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