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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다시 거론하며, 반드레퓌스파가 '지식인'이라는 말에 담은 부정적 의미를 오히려 영예롭게 받아들인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지식인에 대한모든 비난은 결국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한 뒤, 바로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정확한 정의라고 되받았다. 지식인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바꾸면 지식인은 세상만사를 자신과 관련 있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p.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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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텍쥐페리
본격문학의 공간을 처음으로 하늘로 확대시킨 이 작가는, 평론가 로제 카이유와의 관찰에 따르면, 자신의 삶이 보증하지 않는 어떤 것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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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렘브란트의 위대함은 자기만의 빛과 그늘을 창조한 데 있었다. 색이든 모양이든 대상의 모든 특성은 렘브란트에게 빛과 그늘로 환치되었다. 렘브란트가 보기에 빛과 그늘은 생명의 흐름이자 영혼의 질감이었다. 그것은 유화에서만이 아니라 에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선의 교차를 통한 명암의 섬세한 요철은 렘브란트의 에칭을 인간 정신의 깊다란 표현으로 만들었다. 그가 단 한 점의 유화도 그리지 않고 오직 에칭만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렘브란트라는 이름이 유럽 회화사의 가장 중요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상 에칭의 기술은 거의 렘브란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렘브란트는 10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남긴 '자화상의 화가'다. 자화상 속에서 작가는 겸손하고 소박하다. 그 겸손하고 소박한 영혼의 상상력 속에서는 성가족(聖家族)의 얼굴들마저 수수했다.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 그리스도나 마리아의 얼굴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평범한 네덜란드 사람 얼굴이었다.
p.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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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권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18세기 프랑스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선언은 오늘날의 여러 사회에도 절실하다. 예컨대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제9조 "모든 사람은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제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사회적 차별은 공공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3조 "어떤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유래하지 않은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같은 대목들이 특히 그렇다. 인류의 다수는 아직 이 선언 이전에 있는 듯 하다.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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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조약 (不戰條約)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속언은 군국주의자들의 금과옥조였지만, 전쟁준비는 늘 전쟁으로 마무리됐다. 매력 없는 대책이긴 하지만, 평화 애호의 심성을 가꾸는 평화 교육은 반전 평화 운동의 처음이자 끝이다.
p.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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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바흐
인간은 범죄로 얻게 되는 쾌락과 형벌로 겪게 되는 고통을 비교하면서 행동하므로 형벌은 범죄로 얻는 쾌락에 대응하는 고통을 내용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심리강제설이고,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그 범죄에 어떤 형벌을 주느냐 하는 것은 미리 정해진 법률에 따라서만 할 수 있다는 원칙이 죄형법정주의다.
p.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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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인류를 우주의 중심에서 추방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지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인류는 결정적으로 왜소화됐다. 사람은 자신의 주체적 선택에 따라 행도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밑 깊숙이 숨어 있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에 얽매여 있다고 프로이트는 단언했다. 그는 인간의 불합리한 내면에 처음으로 이성의 빛을 비추며 그 불합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쓴 사람이었지만, 그 애씀을 통해서 인간으로부터 자유의지, 선택, 책임감, 결단 같은 도덕적 개념을 솎아내 버렸다.
p.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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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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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몽탕
개인의 소망에 대한 역사나 운명의 어깃장은 대체로 '아주 슬며시. 소리소문 없이' 놓인다. 그 방해 공작이 떠들썩하게 이뤄진다면 미리 최소한의 대비라도 할 수 있으련만 역사나 운명은 그만한 너그러움도 없다. 그러고 나서 운명은, 차라리 세월은, 그 삶의 찢김을, 삶 자채를, 망각으로, 차라리 원초적 부재(不在)로 밀쳐버린다. 이 노래(고엽)가 발표된 것이 종전 직후이니, 여기서 개인들을 갈라놓는 삶이란 전쟁 속의 삶이다. 언뜻 상투적 사랑 타령으로 들릴 법한 이 노래가 가슴 시린 반전 가요로 받아들여진 이유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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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즈버그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동시적으로 구현될 때만 가능하다. '인민에 의한'만이 강조될 때, 정치는 대중의 변덕과 이기주의에 이끌리는 포풀리즘으로 타락할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인민을 위한'만 강조될 때다. 이때, 정치는 '수호자주의'라고 불리는 엘리트 독재로 변질될 수 있다. 수호자주의는 공자나 플라톤에 기원을 둔 위계적 사상이지만, 그것은 20세기의 좌익 이론인 레닌의 전위당 이론과도 결합해 수많은 독재정권을 낳았다.
p.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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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1948년 12월 9일 제3차 유엔총회에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대한 협약(제노사이드 협약)이 채택되었다. 전문과 본문 19조로 이뤄진 이 협약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조약국들에서 1951년 1월 12일 발효했다. 제노사이드(genocide)의 정의가 담긴 조항은 이 협약의 제2조다.
"본 협약에서 제노사이드는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할 의도로 저질러진 다음의 행위를 뜻한다.
(a)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는 것.
(b)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해를 끼치는 것.
(c)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집단의 육체적 파괴를 초래할 속셈으로 의도된 생활 조건들을 그 집단에게 고의로 부과하는 것.
(d) 집단 내부의 출산을 막기 위해 의도적 조처들을 부과하는 것.
(e) 집단의 어린이들을 강제로 다른 집단으로 이동시키는 것. "
대한민국은 1995년 12월에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 시효등에 대한 특례법에서 형법상의 살인죄 가운데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바 있다.
제노사이드가 무슨 상관이람. "헌정질서 파괴 범죄"자들이 이렇게 뻔뻔하게 세상을 농간하고 있는 걸 방관, 혹은 조장하고 있는 주제에.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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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세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의 뮈세 비석에 새겨진 시.
"친구들이여, 내가 죽거든
무덤에 버드나무를 심어주오
나는 그 눈물 젖은 잎을 좋아하고
그 창백함은 내게 부드럽고 다정하니
그 그늘은 은은하겠지
내가 잠들 땅에서."
누가 기억하고 발길 멈추고 유심히 들여다 봐줄 무덤을 나는 가질 주제가 못되면서 말이다, 평생 제대로 내 글을 갖지도 못하면서 괜찮은 비문 하나쯤은 장만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364
고종석 <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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