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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아라비아전- 국립박물관(2. 아름다운 비문들)

by 소금눈물 2017. 8. 14.

 

아시아문명을 모르는 서양사람들은 아시아사람들이 다 똑같이 한자를 쓰는 줄 알듯이, 아랍문명을 모르는 문외한은 다 똑같은 문자를 쓴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나라와 문명이 뜨고 지면서 각각의 문자와 문화를 만든 건 당연한데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문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아라비아글자는 숫자 말고는 ㄱㄴ도 모르지만 명문 석판에 새겨진 글자는 조형적으로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이렇게 아름다운 알파벳이라니.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에 세워진 이 라틴어명문은 헤그라에 있던 한 재건축 기념물에 새겨진 것으로 로마군대의 도움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헤그라 시에서 자금을 조달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문이나 창문 위의 상인방 조각은 아이벡스(야생염소) 모양으로 된 두 줄 사이로 고대 남부 아라비아 언어인 사바어로 기록된 것이다.

기원전 1세기 경의 작품.

  

 

아름다운 문자도 문자지만 비문 문구가 절로 감탄을 불러온다.

아무개, 모년 모월에 태어나 어떠한 벼슬을 하다 자손 모모를 남기고 모년 모월에 묻히다-

 

이런 비문들만 생각하다 비문을 읽는데 허!-

  

 

  

 

 

 

생사통찰의 깊이를 엿본다.

중세 서양 수도사들은 성경을 필사하고 그 필사된 성경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신께 경외를 봉헌하였다.

자신들의 신앙과 내세에 대한 기원,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돌판에 새기며 장식하였을 남은 사람들과 그 마음을 돌판에 쪼아넣었을 석공의 정을 생각한다.

이것은 돌판에 새긴 캘리그래피이다. 여러 번 무두질한 양피지도 다루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어쩌면 돌을 갈아 이렇게 아름다운 비문을 만들었을까.

 

물론 그 시대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비문은 평범한 신분의 망자의 것은 아니었겠지. 이렇게 아름다운 비는 충분히 여유가 있거나 혹은  망자를 받아안을 신에게 정성을 다해 부탁하고픈 남은 이들의 조공이었을 것이다.

 

뱃사공 카론의 노 소리가 들려올 때 그 캄캄한 어둠의 물가에서 돌아보는 이승, 남은 이들에게 남기는 말들은 쓸쓸하고 다정하다.

식민지 조선의 시인 함형수는 자신의 무덤에 차가운 비ㅅ돌을 세우지 말고 한줄기 해바라기를 심어 태양같이 하던 자신의 사랑을 보여달라 하였으나 -

 

아름답다.

아름다운 글자들 사이로 흘러가는 죽음도 또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