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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펼쳐진 일기장

뮤지컬 <키다리아저씨>

by 소금눈물 2017. 7. 24.

 

 

 

친구들이 죄다 요즘 이 뮤지컬에 파묻혀 있는 바람에,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나도 끌려들어가 주말에 보고 왔다.

연기잘하는 신성록을 좋아했는데 뮤지컬에서 보긴 처음이다. -좋아하긴 해도 그의 출연드라마를 꼭 챙겨본 건 아니니 팬이라고 하기도 멋적다만.

 

토요일 퇴근하고 바로 기차타고 대학로 가서 같이 밥먹고 공연장으로 달려가 관극하고 또 정신없이 기차를 타고 대전 도착- 지하철 막차로 귀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주말이었다. 젊어서야 부산에서 서울 혜화동으로 당일치기로 연극 잘도 보고 다녔는데 나이들어선 도저히 못하겠다.

 

친구들은 전 캐스팅 배우들을 번갈아 다 보고 감상을 나누는데 그렇게까진 못하고 겨우 한 커플 보고 끝이다.

 

지금 중국어로 더듬더듬 읽고 있는 참이라 그런지, 연기나 연출 같은 것보다는 내가 읽은 장면과 제대로 맞는지, 내가 이해를 제대로 했는지 맞춰보느라 솔직히 그것이 더 신경쓰였다. 이 극은 워낙 인기가 있어서 덕후들도 많다. 각 캐스트별로 어떤 팀은 연기가,어떤 팀은 노래가 더 좋았다, 이 배우는 어떠하고 저 배우는 어떠하다 말하는데 내가 어려서 읽은 그 감동선을 먼저 생각하며 따라가는 관람자라 연기나 노래보다는 각색이 왜 저렇게 달라지고 저런 장면에서는 효과가 더 어떠하다는 감상이 앞선다.

 

아무래도 원작 자체가 모노드라마이다보니 주인공의 무게가 압도적일 수 밖에 없는 극이긴 하다. 상대역인 키다리아저씨는 주디의 연기를 받쳐주는 역할일텐데 연기 잘하는 배우다보니 신성록의 리액션이 좋아서 그가 연기할 때마다 객석에서 한숨과 웃음이 터졌다.

 

여배우인 임혜영의 노래가 아주 좋았다. 아주 높고 맑은 아름다운 목소리에다 안정되어있어서 흐트러짐이 없었다. 귀여운 소녀에서 사랑에 떨리는 아가씨의 감정까지 잘 표현한 것 같다.

 

여러번 거듭 본 사람들은 나름의 개연성을 찾았을 것이나, 처음 본 사람의 눈으로 아쉬웠던 건-

 

제루샤 애봇에서 주디 애보트가 되는 개명은 굉장히 중요하다. 개명이 없이 끝까지 '제루샤'로 간 건 나로선 몹시 아쉬운 각색이었다. 전화번호부와 묘비에서 타인이 지어준 이름을 자신의 의지로 주디로 고친 후의 삶은 이전과 다르다. 가난하고 가엾은 고아소녀에서 진취적이고 발랄하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여성이 된다. 또 하나, 여주인공은 상대에게도 이 자세를 투영해서 호의적거나 사랑을 전할 때는 주디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의례적, 혹은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전할 때는 다시 제루샤가 된다. 편지 말미에 쓴 이름만으로도 여주인공의 심리가 전해지는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그걸 생략해버려서 어리둥절했다.

 

상대를 호칭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자체가 이름화가 중요하다. 저비스가 백발노인 키다리 아저씨와 잘생긴 청년 저비스와 다른 것처럼.

 

장학금 장면도 아쉽다. 일방적으로 수혜를 받던 주디가 자신의 개체로서, 주체로서 각성하면서 키다리아저씨가 주는 장학금을 거부하고 상대에게 돌려주는 장면이 생략되었다. 아직 참정권이 없던 그 시대에,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정치적 각성까지 이르는 주디는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성의 참여기회가 없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 토로한다 (실제 이 소설이 대히트하면서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런 성품이므로 주디는 후원자의 일방적인 혜택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주어졌을 때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돌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장면이 생략된 것도 아쉬웠다. '똑똑한 여성, 남자들이 무서워해야 할 제대로 그러니 앞에 말한  참정권 투표 어쩌고가  어색해지는 것이다. 참정권(혜택)을 누리고만 싶고 받기는 다 받고- 킁..

 

툴툴대기는 하였으나 극 자체는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성장한 소녀가 있을까 싶게 모두 다 알고 있는 이야기고 이미 보통명사가 된 명작이지만 어린시절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역시 나는 이야기책으로서의 키다리 아저씨가 더 맘에 든다. 신성록의 귀여운 질투에 여러번 웃음을 터뜨렸지만 앤딩연출은 좀 아쉽다.

 

그러나저러나 다른 저비스 연기가 보고싶어졌다. 여러번 거듭 보는 팬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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