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림과는 정 반대로, 오늘은 아주 쓸쓸하고 외로운 마을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오늘의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 현대인의 고독을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붓터치로 그렸던 미국의 화가입니다.
그의 화폭에서 자연광이던 아니면 실내의 인공적인 조명이던 풍부한 빛이 넘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맴도는 인간의 얼굴들은 서로가 마주치고 얽히는 법이 없이 시선을 비껴가거나 외면하며 개별자들의 고립, 고독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배경은 여행자들이 머무는 도시의 밤 까페,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집 정원, 호텔의 방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동안 많이 보아와서 익숙했던 것들이 마치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 낯섬이 불안하고 불편한 '자메뷰(Ja mias vu)'를 만들지요.
그림을 볼까요?
이런 무지막지한 구도가 있을까요.
딱 잘라 일직선으로 시선을 탁 막아버렸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데, 붉은 상가가 가로막은 거리에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의 이 평화는 평안의 고요가 아닙니다.
숨막힐 듯한 이 지겨움. 침묵. 무엇인가 사고라도 터져야 할 것 같은 이 지독하게 외롭고 나태하고 낡아버린 거리. 강아지 한 마리, 낡은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시간 밑바닥의 거리.
보고 있는 것조차 답답하고 숨이 막힙니다..
그야말로 고독. 어느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는 인간의 고독.
호퍼의 그림을 한 번 본 이라면 단박에 이 그림투를 기억하게 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잘난 체 하고 강한 척 해도 한꺼풀 들쳐보면, 소통 불가능한 고독, 쓸쓸함 , 허무. 무표정... 그가 그리는 미국 중산층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서로 바라보지 않고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침묵하고 있거나 (시선의 얽힘이 없는 자세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열정이나 슬픔, 절망 같은 감정들이 일체 배제된, 막막한 침묵, 고립, 목적이 없는 일탈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이거나 혼자가 아니라도 감정적으로는 혼자인 사람들이며 어딘가로 떠나거나 막 도착했거나 하는 길 위의 사람들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여행이 아니라 그저 떨궈졌거나 하염없이 어디로 가고 있거나 버림받은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그림 속의 방들, 마당, 테라스, 호텔로비들은 소음 조차도 없을 것 같은 완벽한 침묵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앉아 있거나 엉거주춤 서 있는 배경이 되는 집은 가구도 많지 않은 적막한 방이고, 그들이 밖에 있다면 그 배경의 한쪽으로는 무언가 불안과 공포가 서린 어두운 숲이 자리하고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방과 거리와 창가는 늘 우리가 만나고 기대고 살아가는 너무나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지만 호퍼의 그림 속에서는 어딘지 다른 삶의 터인 것만 같은,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의 장소, 불안과 공포가 뒤엉킨 낯선 순간들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평생 다른 이의 가슴에는 들어갈 마음이 없었거나 깔깔거리며 맨 발로 춤을 춰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사회적인 품위는 유지될 만한 경제력은 있었겠으나 누구를 위해선 울어볼 여지도 없었고 누군가가가 그를 위해 그렇게 가슴 아파 해본 적도 없었을 것만 같은 그렇게 외롭고 말이 없었을 것만 같은.
물론 이것은 어이없는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평탄한 삶을 살았고 그의 그림속의 여인들은 대부분 그의 아내가 모델이었다 하니 실제로는 아주 행복하고 믿음이 강한 부부관계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으로 짐작해보기엔 상상이 잘 되지 않지요. 그런 사람이 이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그림을 그리다니. 참 이상합니다.
호퍼의 그림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흑백사진속의 한 장면 처럼, 그 낯설고도 익숙한 외로움의 순간들이 너무나 가슴 깊이 파고들어 화폭 하나가 직설적으로 던지는 칼날에 가슴일 베이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날카로운 단편소설처럼, 감동적이긴 하지만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다보면 이 삶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서 나도 그만 저렇게 가방 하나를 들고 정처없이 어디로든 가게 될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는 또 저 여인들의 막막한 얼굴로 국도변의 손님이 드문 모텔 방 창가에서 막막한 편지를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든지 가든지 올 곳도 갈 곳도 없는그림자를 그대로 달고 말이지요.
그래도 한 장의 그림이 소리도 없이, 눈부신 색감도 아니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비명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하지 않은가요.
그림에서 물러서서 햇빛이 눈부신 밖을 바라봅니다. 나를 물들이지 못하는 저 이질의 햇살들. 그 음험한 숲의 그림자가 머리속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누가 그 숲에 들어가는가요. 어둠이 웅크리고 응시하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은가요.
딱히 무어라 이름짓지도 못하는 그 지겨움, 고여있는 이 도시의 여름 한낮이 숨막혀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그런 날은 내게 없었던가요.
아니 이게 과거형으로 슬쩍 바꾸면서 지금 나는 아니라고 사기 칠 자신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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