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Dionysos)는 로마신화에서는 바코스(Bacchos)이며, 술과 축제,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제약회사에서 메가히트를 한 음료수 박카스의 원 이름이기도 하지요. 디오니소스의 어트리뷰트는 포도나무덩굴이나 포도송이입니다. 낭자한 잔치에서 포도덩굴을 머리에 이고 있거나 허리에 포도송이와 술병을 찬 남자가 보이면 그 남자는 디오니소스라고 읽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와 제우스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멜레가 디오니소스를 임신하고 있을 때 질투에 불탄 헤라가 세멜레에게 가서 꼬드기지요. 네 연인이 그 제우스가 정말 맞다면 증거를 보이라고 해 보렴. 신의 얼굴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그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아니? 세멜레는 흔들립니다. 제우스가 세멜레를 찾아왔을 때 자신의 소원 하나를 들어달라고 하지요. 제우스는 사랑스런 세멜레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기로 지옥의 강 스틱스를 걸고 약속합니다. 세멜레가 요구한 증거를 듣고 제우스는 슬픔에 잠김니다. 스틱스를 걸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맹세로, 신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제우스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옅은 빛으로 자신을 감싸고 세멜레 앞에 서지만 그래도 그 빛나는 광채는 인간이 감당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우스의 본 모습을 본 순간 세멜레는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입니다. 제우스는 세멜레의 태에서 아기를 꺼내 자신의 허벅다리에 넣고 열 달을 채워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니까 제우스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두 번째 자녀인 셈이지요(첫번째는 전쟁과 지혜의 아테네로 제우스의 머리를 뚫고 태어납니다). 디오니소스는 어머니의 태에서, 그리고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이렇게 두 번 태어납니다. 재생과 생식의 상징이 되는 이유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여타 다른 올림푸스의 신들과는 자리매김이 좀 다릅니다. 원래는 올림푸스 12주신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화덕의 여신 헤스티아의 자리르 이어받아 12주신에 들어갑니다. 그리스 문명 초기 변방의 신, 이민족들의 토템이었던 디오니소스가 미노스문명 이후 그리스민중문화로 토착되면서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여자신녀들(박카이)들의 열렬한 활동과 그들을 경원시 하는 남성문화 사이에 충돌을 일으키지요. 디오니소스 축제의 광기에 가까운 음행과 살인까지 불사하는 열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종교는 리디아와 프리기아를 넘어 아시아 일대까지 퍼지고 중세까지 큰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합니다. 무질서와 광기, 동물적인 본능만을 추구하는 축제는 이처럼 기원이 까마득하게 올라가는 걸 보니 우리가 믿는 이성과 질서라는 것도 문화와 규범의 틀 아래서 그다지 힘센 것만도 아닌가봐요.
카라밧지오는 디오니소스를 다른 버전으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늙고 병색에 찌든 이 디오니소스 뿐 아니라, 풍성한 수확물을 앞에 둔 젊고 활기찬 소년 신의 모습으로요.
그 아무리 생명과 축제의 신이었다 할 지라도, 계속된 폭음과 난음은 신마저도 이렇게 병색에 찌든 얼굴을 만듭니다.
방종하고도 자신의 천재(天材)와 본능을 따라 불꽃처럼 살다 사라져간 카라밧지오의 일생은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인 박카이와도 닮았습니다. 보통 스승 아래서 오랜 도제생활을 마치고 프로로 데뷔하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1600년 경 느닷없이 나타난 카라밧지오는 수많은 비평가들의 질시를 받았지요. 그는 술자리나 싸움판에서 늘 소란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겸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만과 자부심에 가득차서 자신보다 못한 화가들을 조롱하며 싸움을 일삼으니 누구라도 좋아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거룩한 성인들을 아름답게 그리던 당시 화풍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평민의 모습으로 성인들을 표현하니 종교지도자들도 불편해했구요. 결국 그는 어떤 싸움판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로마와 몰타를 거쳐 도망을 치다가 나폴리에서 누군가의 칼날에 살해당합니다. 그의 심성이 지탄을 받은 것과 반대로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과 정확한 묘사, 평범한 서민들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깃들인 성심을 구현하고자 했던 카라밧지오는 그의 사후 미술사에서 잊혀져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재조명되면서 미술사에서 찬란한 왕좌를 차지하게 됩니다. 디오니소스가 올림푸스에 오른 것처럼요.
아마도 이 그림은 술과 황음에 취해 있던 젊은 카라밧지오의 자조에 가까운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누구나 이렇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지만, 우리의 완강한 이성은 허락하지 않고 우리가 속한 사회질서도 그것을 용납하지는 않지요. 가 보고 싶으나 갈 수 없는 욕망의 얼굴, 병색의 디오니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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