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적한 별궁.
오늘은 마마께서 오랜만에 물감접시들을 늘어놓고 분주하십니다.
도화서에 있을 때는 늘 하던 일이건만, 오늘은 더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마마님
중전마마 납시셨사옵니다.
중전마마께서 어찌 ...
중전마마
훈육상궁이 물러났다 하기에 무얼 하며 소일을 하는고 궁금해서 들렀더니
뭘 하고 있었던 것인가
어마마마의 생신 진연에 맞추어 수를 놓을 실을 염색하고있었사옵니다.
색실이라면 숫방에 일러 들이면 될 것을 어찌 직접 하고 있는 겐가?
하나하나 마음을 담고 싶어 그런 것이오니 괘념치 마십시오 마마.
어마마마께서 아직 문후조차 받지 않고 계신다 들었네
내내 밝던 송연의 얼굴에 엷은 그늘이 집니다.
어찌 그같은 일을 내게 말하지 않았는가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나를 찾으라 하지 않았는가
송구합니다 마마...
아니네
자네 성품이 어떤지를 알면서도 찾아와 말을 해 줄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모두 내 불찰이네
당치 않으시옵니다 마마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모든 것이 소첩의 부덕에서 빚어진 일이오니
마땅히 소첩이 풀어야할 일이라 생각하여 그런 것입니다.
허니 마마께선 마음 쓰지 마시옵소서.
이사람아...
하옵고..
부디 전하께도 이 일을 전하지 말아주십시오 마마
궐 안팤이 소란스러울 때 공연히 소첩의 일로 전하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사옵니다.
이보게...
소첩의 일은 괘념치 마시옵소서 마마...
소첩이 성심을 다한다면 언젠가 어마마마께서도 마음이 누그러지실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도대체 그 날이 언제가 될 것이야.
그 분 성품이야 누구보다 내가 잘 알거늘.
사가의 시집살이라도 고초당초보다 맵다하는데, 모진 세월을 전하 한 분만 보고 살아오신 그 분의 진노가 언제 풀릴지 자네가 그 고초를 어찌 다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괜찮습니다 마마
이만한 고초가 없으리라 생각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더우기 중전마마께서 이리 친동기처럼 살펴주시고 아껴주시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중전마마께 받은 은혜를 어찌 다 이루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마마께서 아니 계셨더라면 전하께서 아무리 이끄신다 하여도 덥석 들어올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여기 제가 있음이 곧 마마의 은혜시니 어찌 다 갚을런지요.
걱정마시어요.
저는 아무 걱정 없이 그저 마마의 은혜로 무탈히 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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