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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안녕, 신해철..

by 소금눈물 2014. 10. 28.

 

 

존재의 주소이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유시민이었다.

이전에는 자의적 이전과 타의적 이전이 있다.

노무현이 그의 생물학적 주소를 이전한 것은 그 스스로의 의지였겠으나, 그를 보내지 않은 이들에겐 그의 주소는 옮겨지지 않았다. 그를 잊지 못하고 지워버릴 수 없는 타인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주소이전이 되지 않는다.

기억하는 이들의 뇌리와 가슴 속에서 온전히 지워질 때 비로소 그는 타의적으로 완전히 이전이 된다.

 

조사를 쓰려고 했다.

나와 동갑내기, 같은 학번, 겨우 나흘 먼저 태어난 그는 그렇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였다.

이 한 줄을 쓰기가 괴롭다. 부끄럽고 슬퍼서.

이것은 조사도 무엇도 되지 못한, 그저 한 사람을 이전시키지 못하는 이의 푸념이 되겠다.

조사라니, 조사라니. 용광로처럼 뜨겁고 어름처럼 차갑던 그에게 이 말은 너무 빨리,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도래한 호출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망히 밤을 새울 뿐이었다.

 

며칠째 뉴스 창을 오가며 마음을 졸이고, 입을 열면 불길한 예고가 될까봐 차마 이야기를 뱉지도 못하고 기도만 하였다.

나는 너무 많은 슬픔을 보았다. 보내고 싶지 않은 이들을 너무 빨리, 많이 보내야 했다.

 

한줄속보를 보면서 뉴스 창을 껐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비명을 삼키며 거짓말 뉴스, 나는 너희들을 믿지 않아! 소리치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깨어나, 초침소리마저 죽은 방 안에서 이불을 쓰고 잠깐 울었다.

청춘이 지나간 지 이미 오래였으나,한 사람이 떠남으로 정말로 이제 내 청춘은, 젊음은, 아니 그 모든 날들은 먼지처럼 부서지고 나는 초라하게 늙어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하릴없이 무력하고 초라한 중년이 되어버렸으나, 그런 나를 깨우며, 냉소하며, 그러나 뜨겁게 부르며 그는 언제나 내 반대편에 서 있었다.

비겁하고 찌질하게 살며 속물이 되어가는 나에 비해, 그는 늘 뜨겁고 차가워서 젊었다. 그는 영원히 청춘이었고 그렇게 마왕이었다.

 

백분토론의 패널로 나와 그 현란한 무대복차림으로 허위와 기만에 젖은 정치권을 일갈하던 모습.

어렵사리 빌린 그 옹색한 성공회대 추모공연에서 절규하던 그의 음성 "씹쌔끼들!!" - 그 욕을 들으며 펑펑 울었었다.

나 뿐이었을까. 생물학적 연대와 상관없이 그와 함께 동지여서, 벗이여서 젊었던 우리 모두가 그 욕을 퍼부으며 울지 않았던가, 씹쌔끼들! 용서하지 않을 거야!

 

 

 대학가요제에 나와 씩씩하게 노래하던 미소년 해철.

아이돌 스타들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아이돌이던 해철.

시대와, 사회와 늘 불화하며 자신을 거침없이 던지며 싸우던 해철.

지치고 변절하는 우리들의 뒤에서 혼자 남아 무대로 올라가 포효하던 해철.

그가 부른 수많은 명곡들과 함께 지나온 내 청춘, 우리들의 시절들.

아프고 괴롭던 시간들 속에서 기성의 동지가 되어주었던 벗.

 

그대를 어찌 보내야 하는 지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너무나 빨리 떠난다.

참으로 짐승의 시간들이구나.

부질없이 질기고 찌질한 인생은 여기에 남아 있는데.

 

그 별나라에 주소를 옮기는 그리운 이들을 불러본다.

이제 여러분의 막내가 가네요.

사랑하는 분들, 벌써 젊은 벗의 노래가 그리워서 부르셨나요.


 

내 벗이여. 잘 가요.
함께 해 준 시간들 고마웠어요.
함께 싸워주고 함께 웃으며 걸어왔던 시간들, 행복했고 힘이 되었어요.
잘가요 마왕. 그리울 거예요. 정말... 당신의 목소리가, 그 노래가 그리울 거예요.
이별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고 고통스러워요.
그래도... 힘을 낼게요.
당신이 하지 못한 말들, 우리가 이어서 또 잘 가 볼게요.
당신의 주소를 우리는 영영 옮기지 못할 거예요.

우리의 뜨거운 청춘이었던 해철.

차가운 지성이었던 해철.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