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죄 있기 오가다
네 사는 집 불빛 창에 젖어
발이 멈출 때 있었나니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에도
네 모습 어리울 때 있었나니
늦은 밤 젖은 행주를 칠 때
찬그릇 마주칠 때 그 불빛 속
스푼들 딸그락거릴 때
딸그락거릴 때
행여 돌아서서 너도 몰래
눈물 글썽인 적 있었을까
우리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 데 없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는 그 언덕들
석남꽃이라는데 ......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
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들고
밤이슬 풀비린내 옷자락 적시어가며
네 집에 들리라
<석남꽃 꺾어>
이십 년도 더 훨씬 전의 봄날입니다.
목련 꽃봉지가 함박 벙그러진 아침었습니다.
꽃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꽃그늘 사이로 마당이 열었다 닫혔다 했습니다.
석남꽃을 본 적도 없으면서, 이 시를 읽으며, 이 꽃향기에 젖어 그 봄을 보냈습니다.
시는 참 좋은 것입니다.
말이 할 수 없는 말, 마음이 갈 수 없는 길을 멀리까지, 오래도록 가게 합니다.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데 없이 넘나들며 피는 꽃, 시도 그렇습니다.
음악.
오펜바흐 - 자클린의 눈물
오펜바흐가 작곡한 곡은 맞지만, 이 곡의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아닙니다.
베르너 토마스라는 음악가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오펜바흐의 곡을 찾아낸 후에,
요절한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에게 헌정하며 붙인 제목이지요.
너무나 뛰어났던 천재, 너무 이른 나이에 다경화증으로 첼로를 연주하지 못하고 온 몸이 굳는 병에 걸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에게조차 버림받아 쓸쓸히 홀로 죽어갔지요.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얘기할때 비탈리의 샤콘느를 흔히 꼽지만, 제게는 이 음악도 비탈리의 샤콘느처럼 아름답고 슬픈 음악입니다.
'그룹명 > 낡은 서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음악의 거장들 (0) | 2014.09.19 |
---|---|
되다 만 어느 화가의 겨울 이야기 - <화가전> (0) | 2014.05.23 |
보여지는 이미지, 감추는 이야기, - 겹눈의 소설 “달로” (0) | 2014.03.21 |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 (0) | 2013.12.19 |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 (0) | 201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