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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봄학기 첫 과제 -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by 소금눈물 2014. 3. 16.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내 키를 넘는 회색 시멘트 벽, 천장 가까이 붙은 조그만 쇠창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손바닥만한 햇살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나는 죽었다. 내 육신이 묶인 이 몇 평의 독방, 감옥과도 같은 작은 격리병동 안에서 이따금 지나가는 햇살이 맞은 편 벽에 그리는 그림을 보며 나는 중얼거린다. 나는 죽었지. 이미 죽었다.

 네가 죽인 내 이름은 아마도 그 사회에서는 잊혀진지 오래, 내 삶의 궤적도 먼지 속에 풍화가 된 지 한참일 터이다.

 나는 안다. 세상이 모두 나를 잊고 나 또한 세상을 잊었다 하더라도 오직 한 사람, 나를 죽이지 못한 사람이 너임을 나는 안다. 너는 초조하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겠지. 내 바이털사인이 한 줄의 실점으로 그려지는 순간을. 날마다 주기적으로 내 목구멍에 집어넣는 바리움과 아티반이 드디어 그 효력을 발휘해 내 숨통을 막아버릴 그 날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백 여섯 개의 뼈와 그 뼈들을 둘러싼 촘촘한 근육과 관절들이 모두 해체되고 부서진다 한들, 내 혈관에서 피들이 모두 쏟아지고 뇌수가 터져버린다 해도 내가 아쉬울 것이 무엇이랴. 이미 죽어 오래인 넋이 다시 흔들리거나 경련할 일은 없을 텐데.


 나는 메트로놈의 분절음처럼 정확히 들르는 햇살의 그림자를 센다. 날마다 그 높이와 넓이를 달리하며 이 방안을 점령하다 사라지는 그것을 좇고 있는 순간만이 내 지각이 아직 생명활동을 잃지 않았다는 유일한 흔적이다.


 너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종잇장처럼 얇은 다리를 늘어뜨리고 누워 쇠창살을 바라보고 있는 내 뒤에서, 창날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매끄러운 그 눈길로 다만 나를 지켜보며 너는 서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이 내 몸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내 목덜미를 잡아채기 전의 잠깐의 호흡, 그 정지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백 년의 시간만큼 길고 지루한 낮이 지나고 나면 드디어 밤이 오겠지. 숨을 죽이고 내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나는 기다린다.

 

 

 

그는 죽은 사람일까.

 

 "여전한가요?"

 

  문을 닫으며 뒤에 와 서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마를 찡그리고 고개를 흔든다.

 

 "오늘은 자신이 누구라고 하던가요?"

 

 "고골리가 되었답니다. 저를 보고 톨스토이 백작이라고 부르더군요. 아직 완성 못한 원고가 있다고 한나절만 기다려 주시면 완성하겠다고요."

 

 그의 국적과 직업은 날마다 바뀐다. 어제는 중세시대 마녀사냥의 불행한 희생자였다. 내가 병실을 들어서자 자신의 창자를 끄집어내어 나무 그루터기에 돌돌 말리러 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발작을 일으키는 그를 제압하느라 남자간호사의 가운이 찢어졌다. 

 

 "작가선생께서 집필하실테니 오늘은 좀 조용해지시겠군."

 

 "오늘 아침에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았으니 더 이상 먹을 필요없다고 식사도 약도 거부했습니다."

 

 지적인 병자다. 날마다 다른 직업과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늘 죽음과 함께 서 있는 것이다. 마녀가 되어 불타 죽고, 제임스 딘이 되어 자동차와 함께 절벽으로 날아가고, 가야의 부족장이 되어 왕의 출전에 앞서 순장을 당한다.  그는 날마다 죽는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의 상대는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그 엷은 햇살이다. 부유하는 먼지가 떠 다니는 그 햇살의 결 사이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원고지를 넘기고, 포르쉐 스파이더의 운전대를 잡고, 장작더미 위에서 춤을 춘다.

 오늘도 그의 식판의 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다. 한달에도 몇 번씩 식사를 거부하며 나와 싸우고 있다. 아니 싸우고 있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는 누구와도 대적하지 않는다.  그는 조그만 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낮은 호흡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의 세계는 너무나 의료진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간호사가 주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벽에 기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근육이 말라붙은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나는 간호사에게 바리움을 믹스한 수액을 놓으라고 지시했다. 대 문호께서 탈고하면 배가 고파지겠지. 그 전까지 최소한 탈수가 일어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이곳에 들어오면 저들은 고유명사를 포기한다. 51병동 702호 환자. 그를 인식하는 기호는 병실 호수이다.  그의 이름이 누구이던, 나이가 몇이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인 이곳에서는 사회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렸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카덱스에 기록된 병력, 그가 복용하는 항우울제, 폭력성의 유무만이 유일한 관심사이다. 순환근무로 51병동에 배치되었을 때 처음에는 나도 이렇지는 않았다. 어떤 과를 지망할 지 아직 결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신신경의학과의사의 역할을 주지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폐쇄병동에 갇힌 그들에게서 아무런 생명의 기미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다. 그들은 먼저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었다. 폐쇄병동에 고립된 이들은 몇 가지의 조건을 갖는다. 첫째, 자해 혹은 타해의 위험이 있는자, 둘째, 치료 프로그램이나 병실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자, 그리고 , 환자의 동의하에 행동요법의 한 부분으로서. 이것은 교과서의 구절일 뿐이다. 나나 당신 모두 알고 있는 것, 족보에 나와 있지 않은 그 경우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환자의 동의가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그는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안전하게. 자신과 타인들에게서. 어떤 면으로 보면 그는 나로서는 참 다행인 환자다. 그는 아무에게도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을 조금씩 사회로부터 박리시키고 있을 뿐이다. 의사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다른 질병과 달리 이 병동의 대부분의 환자의 경우 의사는 어떤 면에서 보조자일 뿐이다.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을 살해하고 있는 환자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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