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아니 그럼 말을 안 하고 살았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중국인이야. 이름은 장강. 남편도 있어. 아마 여기에 살고 있다고 하면 단숨에 뛰어올걸?”
“그럼 빨리 연락해야지!”
“모르겠다. 내가 연락을 해야 하는지. 본인이 일부러 신분을 감추고 숨어사는 거라면? 내가 말해야 하나? 저 사람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침울한 내 표정을 보고 김이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옆방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중국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못 찾는 거라고. 이런 데에 와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안주도 없이 단숨에 들이키는 나를 잠자코 바라보던 김이 안주를 밀어주었다.
“천천히 마셔.”
싸리나무를 후려치는 것처럼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졌다. 창문이 덜컹거렸다. 쨍그랑. 우물가에 엎어놓은 대야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되는대로 사는 내 꼴을 보고 작은아버지가 중국어를 배우라고 했다.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하고 영 싹수가 없으니 중국어라도 배워서 졸업하면 상해에 있는 작은아버지 회사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이었다. 잔소리 많은 작은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얼결에 끊은 중국어학원은 생각보다 꽤 재미가 있었다.
한국인 강사가 하는 초급반 삼 개월을 마치자 본격적으로 중국인강사가 하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과정이 올라 갈수록, 중국인강사들의 한국어능력은 반비례로 낮아졌다. 일년 쯤 지났을 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원어민 강사와도 그럭저럭 가벼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중국어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엉망이었던 학점도 그럭저럭 중간쯤까지는 올라왔다. 미심쩍어하던 가족들도 대학에 들어가더니 철이 났나보다고 반가워했다.
초급반에서 시작했던 사람들은 고급반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남지 않았다. 중간에 다른 과정에서 들어와 합쳐져 석 달에 한번씩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로 물갈이가 되었다. 과정이 올라갈수록 인원수는 줄어들었다. 장강을 만났을 때 우리 반 학생은 나를 포함해 여덟 명이었고 그나마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다섯 명 남짓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한달이 되었다고, 한국말은 ‘여보’, ‘사랑해’, ‘밥 먹어요’ 세마디 뿐이라며 웃었다. 고급반에 들어온 첫날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동안 계속 원어민 강사와 수업을 했지만 그들은 모두 한국유학생활이 몇 년이나 되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었다. 수업시간에는 모두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했지만 급하거나 섬세한 표현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합한 표현을 찾아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국어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장강은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이가 가르치는 중국어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서로가 묻고 대답하는 것이 달랐고 자신의 질문이 적합한지, 그 대답을 제대로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갔다. 장강은 묻는 말의 뜻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사전을 펼쳐서 그 단어를 찾아 보여주었다. 그렇게 서로 조금씩 익숙해지니 또 그런대로 재미도 있었고 분위기도 좋아졌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그녀에게 우리는 또 조금이라도 한국어를 알려 주고 싶어서 열심히 중국어를 배웠다. 더뎠지만 그녀도 한국어를 익혀나갔다.
처음 수업시간, 그녀는 내 이름을 힘들어했다.
“저는 이성섭입니다. 워스 이싱스!”
“싱스?싱시?”
중국어에는 S발음이 없어서 한국어 중에서 시옷발음이 제일 힘들다고, 그게 두개나 들었으니 너하고는 절대 친해지지 않겠다고 장강이 말했다. 주먹을 꼭 쥐고 다짐하는 바람에 우리반 모두가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장강과 금세 가까워졌다. 나뿐 아니라 우리 반 모두 그녀와 친밀하게 지냈다. 키가 늘씬하게 크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장강이 복도를 지나갈 때면 다른 과정을 듣는 남학생들도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저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우리 반 학생들은 그녀와 잘 어울렸다. 한국어를 잘 못해서, 백화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도 그녀는 지하 정문에서, 우리는 1층 정문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찾아야 했다. 불고기 식당에 간 날, 메뉴판을 본 그녀가 파안대소를 하기에 어리둥절했더니, 우리가 개고기를 먹자고 불러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카오러우(불고기.烤肉)를 거우러우(개고기.狗肉)로 잘못 말한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국인들이 모두 개고기를 먹는 줄 알았다. 친하게 지내는 수강생들이 식사초대를 했는데 안 올수도 없고 참 난감했을 것이다. 실수를 깨닫고 박장대소했다.
절대 친해지지 않겠다고 했지만 장강은 나를 보면 웃었다. 이름은 끝까지 발음을 잘 못해서, 그냥 리싱! 하고 불렀다.
수업이 일찍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막 적응하기 시작한 한국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녀는 북경대학을 나왔다. 중국인들에게 ‘북경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프리미엄인지 알고는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 최고대학인 북경대 출신이라는 것은 그 선민 중에서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그녀가 한국, 그나마 이 지방까지 흘러들어와 학원강사나 하고 있나 그게 궁금했다.
“장푸 한구사람. 장푸 짱동찌엔.”
장강이 까르르 웃었다. 남편이 장동건처럼 잘생긴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다. 한국인인 남편을 몹시 사랑해서, 남편이 보내준 문자를 보여주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몹시 행복해보였다.
그랬던 그녀가 실종되었다고, 그녀의 남편이 전화를 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고급반을 마치고 중국어 능력시험반까지 올라갔는데 거기서부터 흐지부지해졌다. 중국에 유학가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학년이 올라가다보니 다른 일이 바빠져서 학원을 그만 두게 되었다. 학원을 그만두고도 한동안 수강생들과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학원을 그만두고도 이년이나 되었나. 어느 날 낯선 남자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음성이었다. 전화를 받으니 자기는 김응천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다. 전화를 잘못거신 것 같다고 끊으려는데 그가 다급히 말했다.
“장강선생 아시지 않습니까? 중국어학원 강사 장강선생 말입니다.”
끊으려다가 멈칫했다.
“누구시죠?”
“장강씨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 장동건처럼 잘생겼다는 남자. 그런데 어째서 내게 전화를 한 걸까? 학원을 그만둔 지도 한참이나 되었는데.
“실례인지는 잘 알지만 마음이 너무 급해서. 아내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진지 벌써 석 달이 넘었습니다. 갈만한 데를 다 가 보았고 알만한 사람은 다 연락했는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답답해서, 아내가 전에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친구들 얘기했던 생각이 나서 수첩을 뒤졌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마음으로 거기 적힌 분들 모두에게 이렇게 전화를 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장강에 대해 아시는 점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학원을 그만 둔지도 오래 되었고... 남편분 되신다니 저도 선생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분 얘기를 가끔 우리에게 하곤 하셨지요. 정말 좋아하시고 행복해보였는데.”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공연히 내가 미안해졌다. 남편이 보낸 문자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해맑게 웃던 그녀가 생각났다. 얼마나 속이 탈까. 모르는 이름들에게 전화를 하며 행여라도 소식을 들을까 마음을 졸일 남편이 안됐다.
“그런가요? 아내가 제 얘길 하면서 정말 행복해했나요?”
별뜻 없는 위로였는데 전화선 저쪽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동안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전화기를 붙잡고 있기가 어색해졌다.
“저......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아는 대로 알아보겠습니다. 무슨 소식이라도 들리면 이 번호로 바로 연락드리지요.”
진심이었다. 한국말이 서툰 아내를 찾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중년의 남자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꼭 좀 알아봐주십사고, 혹시라도 무슨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그게 어떤 말이든지 바로 알려달라고 거듭 부탁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마음이 싸해졌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그렇게 사심 없이 맑고 환하던 이는 장강 뿐이었다.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전설 속의 여인이 맹강녀다. 나는 성이 맹씨가 아니니 맹강녀는 못 되고 장강녀는 될 것이라며 깔깔대던 얼굴이 떠올랐다.
철썩같이 약속을 하고도 나는 그 일을 이내 잊어버렸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냐 대학원 진학이냐로 고민을 해야 했다. 작은아버지 사업은 그새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먼 중국까지 가서 일할 필요가 아예 없게 되었다.
학교 식당에서 그때 중국어를 함께 배우던 연을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대로 흐지부지 잊을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은 나와 달리 중문학 전공이었고 처음부터 유학을 목표로 다녔다. 학원에서도 그저 그런 나와 달리, 정말로 열심이었다.
연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뭐야? 마지막 학기에도 이렇게 착한 학생 코스프레?”
“그냥 뭐... 유학, 가는 거야?”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출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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