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가 가까워 오는 배 위에서 처음 보았을 때 바람이 만든 착시라고 생각했다. 바다로 몸을 길게 뉘고 하품을 하는 섬 능선 중턱에 박혀 선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저쪽 바다를 보고 서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저거? 말이야 말.”
신기해하는 나를 보고 김이 웃었다.
“여기 제주야. 속담만큼 많지야 않지만 있기는 있지.”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아직은 기상이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한나절 들러 가볍게 섬을 돌아보고 나갈 계획이었다. 해양조사원으로 제주도 연안 솔배감팽 생태에 대한 프로젝트를 맡은 김이 제주 바다 구경이나 하라며 전화를 했다. 바닷속을 보리라는 기대와 달리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태풍예보가 내려서 계획은 물 건너 가버렸다. 제주에는 몇 번을 왔다 갔지만 우도는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꼭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일을 잠시 미뤄두고 김이 동행을 해 주었다.
어차피 방학이라 며칠 연구실을 비워도 큰일은 없다. 마지막까지 교실을 지키던 장교수도 여름학회 때문에 일주일을 비우게 되어 때마침 잘 되었다. 김의 전화를 받고, 일주일에 세 번 들르는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실험동물들의 먹이와 똥만 잘 관리해달라고 부탁하고 가방을 싸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름학기 안에 어떻게든 연구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장교수의 압박도 더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봤자 내 논문도 아니고 결과가 어찌되든 올해까지만 버티고 그만 둘 생각이었다. 지옥도 일곱 번쯤 들락거리면 살만하다던데, 지옥만큼은 아닐 텐데도 출근하는 일이 목을 매러 오는 것만큼 싫었다. 해가 질 무렵 컴컴한 실험실 복도를 지날 때면, 하루를 무사히 버텨낸 실험동물들이 희미하게 울어대는 소리가 내 뇌수에 긴 손톱을 쑤셔 넣고 긁어대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의과대학으로 들어온 것이 잘못이었다. 논문을 준비하는 의대졸업자나 임상의사들 밑에서 그들의 연구 과제를 도울 연구원보조을 뽑는다는 공고가 과 사무실에 붙었을 때 처음에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크게 머리 쓸 것도 없고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라 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면서 충분히 내 대학원공부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지도교수의 추천에 솔깃했던 것이다.
실험보조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왔다. 실험동물들 때문에 그처럼 스트레스를 받을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내 불찰이었다. 이 연구동에서는 내가 일하는 생리학교실의 과제 뿐 아니라, 바로 옆 건물인 대학병원에서 주관하는 연구들도 함께 하고 있다. 처음 며칠은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지 않아서 실험동물인 흰쥐를 관리하는 일만 했다.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자 하루에도 몇 마리씩 흰 쥐를 죽여야 했고 일주일에 두 번은 토끼도 잡았다. 살아있는 토끼의 머리를 쇠막대로 내리쳐서 단숨에 죽이는 일이 실험의 시작이었다. 첫날에는 내 손에서 버둥거리는 토끼를 향해 쇠막대를 차마 내려치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하고 나와 눈을 맞추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생명을 향해 아무런 감정 없이 흉기를 휘두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못마땅한 장교수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덜떨어진 놈을 보내다니. 그 입에서 금세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날이 가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을 굳히고 그것들의 숨통을 단숨에 끊게 되었지만 실험이 있는 날에는 여지없이 머리가 터질 것처럼 두통이 밀려와서 고생을 했다. 심장을 뺏긴 토끼의 몸은 냉동실로 들어갔다. 죽은 토끼를 수거해가는 이가 일주일에 한번씩 다녀갔다. 그 토끼고기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모른다. 실험을 마치고 손을 씻을 때면, 씽크대 개수대 거름통에서 토끼심장을 보았다. 그때까지 살아서 펄떡거리고 있는 내 집게손가락 한 토막 크기의 토끼 심장을 볼 때면 구토가 밀려왔다. 더 끔찍한 것은 우리 교실도 아닌 대학병원 안과 연구실 실험동물방에서 왔다. 토끼사육실과 나란히 붙은 그 사육실은 새끼고양이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매독균이 주사되어 눈에 가득 고름을 달고 있는 새끼고양이들이 내는 울음소리는 진저리가 났다. 그것은 정말 인간아기의 갸날픈 울음소리와 똑같았다. 안과 레지던트들이 다녀간 날이면 되도록 사육실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연구보조원이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이박삼일 정도만 탁 트인 바다를 보며 그 지긋지긋한 동물들의 울음소리만 듣지 않아도 살 것 같았다. 대학동창인 김의 초대에 두말 않고 가방을 챙긴 이유였다.
첫날은 김이 일하는 사이 혼자서 제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다녔다. 몇 년 만에 오는 제주였지만 달라진 것은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중국인들이라는 것뿐이었다. 배운지 오래 되어 거의 다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국어 한두 마디는 귀에 들어왔다.
우도를 돌아보는 걸로 나 혼자 정한 휴가를 마치고 다음날은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 바닷속 화려한 솔배감팽은 보지 못했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협제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하늘은 아직 태풍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섬으로 가까이 갈수록 파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페리가 선착장에 닿았
다. 떠들썩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먼저 내렸다.
김이 우도를 돌아보기에는 자전거보다는 셔틀버스가 낫다고 했다. 바이크로 돌아보는 방법도 있는데 사고가 심심찮게 난다고 했다. 나는 버스를 선택했다.
우도 언덕을 오르면서는 관광객들과 흩어졌다.
우도봉을 오를 때였다. 선착장에서 보았던 말을 다시 만났다. 언덕에 있는 무덤 옆에서였다. 바다로 떨어지는 능선 언덕에서 바람에 갈기를 풀어놓으며 풀을 뜯고 있는 말의 모습은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정에 홀로 누워 바다를 향해 있는 무덤의 주인은 어떤 마음일까. 사시사철 흔들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바닷물에 섞어 맞으며 무슨 생각을 저 피안에서 하고 있을까.
입을 닫고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고 김은 육지촌놈 티를 낸다며 웃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상하게 자꾸 끌렸다. 그저 낯선 풍경에 혹해서만은 아니었다. 가까이 갈만한 거리도 아니었고,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도 또한 아니었다. 저만치 마음을 바다로 떠내려 보낸 뒤에 넋이 저 혼자 가, 마음을 두고 온 바다를 바라보는 모양 같았다고나 할까. 언덕을 내려와서도 한참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언덕에서 내려오니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서둘러 페리호로 가고 있었다. 이 배를 타지 않으면 어쩌면 내일 배가 뜰지 못 뜰지도 모르는 일이고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지체했다. 그런 내 마음을 짐작했는지 김이 잡았다.
“어차피 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쥐새끼들 밥 주는 일 밖에 없다며? 온 김에 하루만 더 있다가지 뭐. 톨칸이 가는 쪽에 괜찮은 민박집을 알아. 밥맛도 괜찮고 잠자리도 나쁘지 않아.”
김의 말에 못이기는 척 붙잡혀버렸다. 하루만 더 묵기로 하자. 김과 나는 배를 보내버리기로 했다. 버스를 잡아타고 톨칸이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었다. 맨살이 드러난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민박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당에 늘어놓은 땅콩을 갈무리하던 노파가 김을 보고 반색을 했다.
“할망, 잘 지냄찌예?”
“메께라? 할망이야 잘 지냈수다. 어디 갔당 왐수꽈?”
“그동안 내내 제주에 가 있었어요. 친구가 와서 우도 구경 좀 시켜달라고 하기에 데리고 왔습니다.”
노파의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하는 김을 보니 한두 번 낯을 익힌 집이 아닌 듯 했다. 어정쩡하게 뒤에 서 있는 나를 보고 김이 끌어]다 인사를 시켰다.
누구? 눈썹을 치켜 올렸다.
“우도에서 일할 때면 여기서 살다시피 했지. 좋은 분이야.”
아침까지만 해도 빈방이 없었는데 태풍예보가 뜨면서 오후배로 모두 나갔다고 한다. 올레길 일주를 하고 있다는 남자 대학생 둘만 남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좀 씻어야겠다고 마당 우물가로 나왔다가 나는 멈칫했다.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수건을 빨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어딘지 몹시 낯익었다. 고개를 갸웃하다 틀어 올린 그녀의 긴 생머리에 꽂힌 흑단비녀를 보고서 확신이 들었다. 끝에 유리구슬 장식이 달려있던 그 비녀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북경에 남은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은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흘러내리는 긴 머리를 손으로 대충 휘어잡아 틀어 올리고 꾹 찔러 고정하곤 했다.
“니하오. 장라오스. 하우지우부찌엔!”
느닷없는 인사에 뒤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맹강녀가 아닌 장강녀, 창짱뉘라고 우리들이 별명으로 부르던 장강, 그녀였다.
젖은 수건을 대야에 떨어뜨리고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니 지이바? 워스 리싱. 리싱스어!.”
나를 기억하느냐고, 이성, 아니 이성섭이라고 말해도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백짓장처럼 하얀 얼굴이 굳어서 표정도 없었다. 텅 빈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가 대야에 빠뜨린 수건을 다시 건져 물기를 꼭 짜더니 탈탈 털어 손에 쥐고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나를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나를 모를 리가 없는데.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했는데 인사는커녕,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묵살을 당하고 나니 무참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던 김이, 마당에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 물었다.
“너 이집 잘 안다고 했지?”
“음.”
“옆방에 사는 여자, 전부터 살던 사람이야?”
“누구? 외자씨?”
“외자? 이름이 외자야?”
“진짜 이름이 뭔지는 몰라. 할머니가 외자라고 부르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할머니 가족이 아니지? 언제부터 살았대?”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외자라니. 어이가 없었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우도 바닷가 구석에 꽁꽁 숨어사는 그녀를 찾으려고 애쓰던 날들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내 딴에는 어지간히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가.
궁금해 하는 김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녀가 일부러 신분을 감추었다면 내가 말하면 안 되는 거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민박집손님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식당에도 나타나지 않아 저녁식탁은 김과 나 둘 뿐이었다. 반가운 손님이 왔다고 주인할머니가 전복에다 한치 물회며 해물을 듬뿍 얹은 상을 차려주었지만 식욕이 없었다. 밥은 그만두고 술이나 마시자는 내게 김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벙어리 외자씨를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대체?”
내 표정이 아무래도 그녀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김이 술을 따르며 물었다.
“벙어리라고?”
갈수록 모를 말이다. 벙어리는커녕, 내가 아는 그녀는 누구보다 밝고 명랑했다. 농담을 하면 한국말을 잘 못해도 표정만으로도 금세 눈치를 채고 먼저 까르르 웃던 사람이었다.
“너는 외자씨를 어떻게 알아? 언제부터 여기 살았대?”
“할머니한테 듣기로는 한 삼년 되었다나? 어느 겨울, 말을 못하는 여자가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었대. 한눈에 보기에도 세상 살 뜻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말도 없고 밥도 먹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더라네. 가끔 그런 사람들 있잖아 왜. 세상 그만 살겠다고 이런 섬으로 오는 사람들. 딱 행색이 그래보여서 할머니가 자기 방으로 불러서 밤새 이런저런 말로 물어보고 달래고 했는데 한 마디도 않더래. 듣기는 하는데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그런데 다음날도 가지 않고, 그 다음날도 가지 않고 날마다 바다만 보면서 어찌어찌 며칠을 있게 되더라나. 보아하니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갈 데도 없이 어쩌다 이런 섬까지 흘러와서 저러고 맥 놓고 살 생각을 안 하나, 영 마음이 쓰이는데 뭘 물어봐도 대답을 할 줄 아나, 글을 써 봐도 고개만 젓고. 그러다보니 할머니가 그냥 딸처럼 여기고 살아보기로 했나봐. 이름도 모르는데, 젊어죽은 할머니 친정동생 이름이 외자였다네. 그래서 동생이름을 주고 여태껏 살았던 거야. 그런데 너, 아는 사람이야?”
“벙어리 아냐.”
그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불쑥 말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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