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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보보경심

by 소금눈물 2013. 8. 7.

 

 

 

작년 이맘때 드라마로 보면서 주구장창 울며 여름 휴가를 보냈는데 올 여름 휴가는 이 책으로 또 넘기나보다.

섶구슬에게 빌려온 게 그제.

어제 미술관 다녀와서부터 내내 오늘 오후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책에 빠져 보냈다.

드라마로 다 보고 또 인터넷에 도는 감질나는 번역본으로 보아서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여전히 가슴이 시리고 눈물이 난다.

청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 드라마 때문에 관심도 생기고 그 무자비하다는 냉혈황제 옹정제의 비련에 가슴이 시려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뤘더니 오늘 밤도 쉬이 잠이 들것 같지 않다.

 

워낙 유명한 드라마고 또 드라마 내용에 아주 충실한 원작이라 (음.. 말이 잘못 되었군. 원작에 아주 충실하게 드라마를 찍었다고 해야 옳지) 읽으면서 내내 감동 받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내용이야 뭐 많이들 알테니 대충 거칠게-.

 

현명하고 냉철했던 청 강희제에겐 엄청난 황자들이 있다. (수도 없이 많은데 여기서 중요하게 나오는 황자들은 대략 열 네째 황자까지)

현대여성인 장효가 교통사고를 겪는데 깨어나보니 청 황실 여덟째 황자네 저택. 장효는 여덟째 황자의 처제로 나이도 한참 어린 말썽꾸러기 소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간체자를 배운 현대여성 장효는 번체자를 읽지 못해 망신을 당하고 또 어지간한 말썽꾸러기가 아니어서 집안을 뒤집어놓기도 하지만 언니와 언니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형부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응해나간다.

 

황자의 집안을 들락거리는 다른 형제황자들과 금새 친해진 약희(타입슬립한 청조의 어린 소녀의 이름이다)는 그들 각자와 우정을 나누게 되고 그렇게 운명이 시작된다.

나이가 차서 관례대로 궁으로 들어간 약희는 바깥세상과 다른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엄격하고 두려운 궁의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고 궁의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어린날의 평화는 잠깐이었고 황자들도 점차 성장하고 그들의 권력다툼이 모양새를 갖춰가면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들 사이에서 사랑과 우정을 주고받는 약희에게도 그 바람은 피해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중심으로 황자들의 갈등과 다툼은 격해진다.

 

진심어린 우정이기도 했고 또 누군가에겐 평생, 죽어도, 무덤에도 함께 가져갈 사랑- 약희는 그들이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무던 애를 쓰며 저울질을 하지만 역사는 결코 그녀의 기원대로 비켜가지 않고 하나하나 비극을 완성해간다.

 

모두 절대 악인은 아니었고 각자의 명분이 모두 있었지만 어긋나고 흐트러지면서 서로에게 원수가 되어버린 형제들. 그들의 사랑을 받고 그들을 사랑하는 여주인공의 비극.

 

나중에 황제가 되는 네째 황자와의 절절한 사랑과 이별은 정말 그 드라마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정신없이 눈물이 났다.

하루종일 어찌나 울었던지 머리가 아프다.

 

작년 이맘때는 드라마를 보며 울고 올해 여름은 책으로 다시 되새기며 울고...

  

우리 앞을 살았던 역사 속의 영웅호걸들의 위대한 행보 뒤에서, 드러나지 않는 이런 사랑과 비극은 또 얼마였을까.

권력이라는 것은 정말 그런 고통을 다 감당해도 차지하고 싶을 만큼 대단한 일일까.

 

하기야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인 네째황자가 황위를 기어코 차지하고픈 욕망에는 그 사랑도 있다.

자신의 유일한 벗인 열셋째 황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 여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그 황위가 간절히 필요했던 것이다.

권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한다.

그들에게 그 권력은 단지 천하를 호령하는 영광일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도 직결되는 것이니까.

 

그 권력을 마침내 차지했을때는, 그 권력을 마침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또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비극이 모순이긴 하지만.

 

 오랫만에 소설을 읽었다.

어지간히 돌이 되었다 싶은 내 마음을 울리다니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긴 한 거구나.

 

윤진은 약희를 만났을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다 했던 약희를 놓치고 윤진은 그 야윈 몸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구천을 헤매야 할까.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저 나라에서는 꼭 둘만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황제도 무엇도 아닌 그냥 두 청춘만 남아서 그렇게 헤어지지 말고 사랑했으면...

 

 

더운 여름밤이다

오늘도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그 쓸쓸한 뜨락을 홀로 오가며 그녀가 남긴 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있을 늙고 야윈 황제가 생각나서.

 

 

 

제목 :보보경심

지은이 :동화

옮긴이: 전정은

펴낸곳 : 새파란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