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목표가 일 년에 얼마나 내가 읽나 모두 적어보자..하는 것이었고 읽은 만큼 되도록이면 독후감도 써보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꽤 스트레스인 것이, 길던 짧던 독후감을 남기는 버릇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한다는 압박은 생각보다 꽤 큰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그딴 계획 따위는 집어치우고 쓰고 싶을 때만 정리하자 마음 먹었다. 그러고 나니 이번에는 또 거의 안 쓰고 딩가딩가 놀게만 된다. -_-;; 안 그래도 정신머리도 없고 기억력도 엉망이라 읽은 책을 산 게 얼마인데 이러다 진짜 돌머리가 될 것 같아 정리하는 일은 역시 필요한 것 같다. 내 서고의 많지 않은 책들도 펴보면 이게 뭔 얘긴가, 주인공이 누구고 결말이 어떻게 났더라..하는 건 아예 백지인 것이 태반인데 말이다.
열심히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꽤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나 어린 시절엔 사실 책도 그다지 다양하지 않아서 다들 읽는 책들 그만그만했다. - 이게 또 좋은 점이 있는 것이 나와 엇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되는 책 부분이 꽤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엄청난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겠다 -
그렇게 너나없이 읽은 책들 중 추리소설에선 단연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시리즈다. 나 같은 둔탱이는 그냥 설렁설렁 줄거리만 따라가며 읽는데 그렇게 흘려 지나간 사소한 사건들이 그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거나 단서였다는 결말은 정말 충격적이고도 흥미진진했다. 코난 도일을 읽으면서, 평소 아무 생각없이 다니던 학교 계단의 갯수를 기억하려 애쓰고 지나치는 가로수 수종을 기억하거나 교실 복도 길이가 얼마인지 발걸음으로 세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내겐 코난 도일보다는 모리스 르블랑이 훨씬 더 매력있었다. 비슷한 시대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두 작가. 냉철하고 이지적인 셜록 홈즈에 비해, 도둑이면서 곧잘 사랑에 빠지고 나름 정의파인데다 인간미도 넘쳤던 아르센 루팡은 자못 낭만적이기까지 해서 어린 내 마음을 홀딱 빼앗아갔다.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에도 국수주의를 역력히 드러내는 루팡은 좀 치기어린 면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어린애 같은 귀여움이기도 했으니.
이후에 아가사 크리스티나 다른 작가들도 두엇 더 추가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내 유년의 탐정들은 이 둘이었다.
요즘 탐도갤은 바야흐로 셜록갤이다. 일에 치여서 며칠 비웠다가 들어갔더니 도무지 그 분위기를 따라가기 어렵게 모두 셜로키언이 되어서 각종 공구들을 저지르고 있고 말투도 하는 짓도 다 똑같이 일체화가 되어버렸다. 요즘 케이블에서 BBC에서 제작된 셜록을 보고나서 그리 되었단다. 덕분에 한꺼번에 배송받은 셜록시리즈를 보아야 했다. - 징글징글 갤러들 -_-;
셜록시리즈를 보고 나서, 나도 문득 추억에 젖어 시리즈를 왕창 사버렸다.
이 바쁜 시절에 어쩌자고.
각설하고 -
그냥. 기억력보존차원에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 몇 권만 우선 정리.
이 책들 모두,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문고판들이다.
1. 네 개의 기호
- BBC판 셜록을 보자면 먼저 이 책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원본을 꽤 충실히 감안했다는 생각이 든다.
셜록이 코카인 중독자라든지, 여자에 별로 흥미를 갖지 않는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바탕이 있다.
아, 참 어려서 읽을 때는 몰랐는데, 코난 도일이 어머니를 몹시 싫어해서 셜록시리즈에 어머니의 이름과 같은 여성을 네 번이나 불행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는 셜록탐정의 최대의 맞수인 모리어티의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에서 비튼 것이다. 그러게 그 여성은 왜 아들에게 약점을 잡혀서 세대를 거쳐 불운과 부정의 여인이 되어야 했나 몰라.
책이 두껍지 앟아서 읽기도 쉽고 사건도 드라마틱해서 꽤 잘 읽힌다.
옮긴이 : 김문유
2. 공포의 계곡
두 가지 사건이 시간의 차이를 넘어 진행된다.
한 사건의 주인공들이 몇십 년 전 사건의 또 다른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는 두 꼭지.
늘 회색빛이고 시니컬한 셜록의 조금 장난기있는 모습도 보이고.
두번째 꼭지는 글쎄... 아무리 함정수사라 해도 나로서는... 사회구조의 부조리와 그런 구조적 악행을 싫어하는지라 솔직히 좀 별로.
옮긴이 :한동훈
3.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
오스틴 프리맨 외 코난 도일이나 여러 추리작가들의 <암호풀기>를 주제로 묶은 소품들.
사실 이것은 <얼음꽃>에서 좀 얻어쓸까 하고 샀는데 도무지 도움이 전혀 안 되어서 자료로는 포기하고 그냥 읽기만으로 족해야 했다는 서글픈 독후감 -_ㅜ
대부분, 서양 중세의 문자나 기호를 모티브로 나온 것들이라 애초에 나와 마주칠 꼭지가 전혀 없었는데 내 정신없음이다. ㅠㅠ
그런데 그렇게 읽고 나서도, 지금 다시 휘리릭 떠들어보니 코난 도일의 <춤추는 인형> 외에는 전혀!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게 진짜 비극. 그나마 <춤추는 인형>도 어려서 읽은 기억이 선명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의 내 감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 읽은, 다른 것도 아닌 추리소설 내용이 기억 안난다니 ㅠㅠㅠ 진짜 내 머리속에 지우개가 있다 ㅠㅠ 아마도 노화가 겁나게 빠른 속도로 내 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ㅠㅠ
옮긴이 : 정태원
4. 노란 방의 미스터리
오늘까지 읽은 책.
얼음꽃 쓰느라고, 삼실에서 집으로, 침실에서 화장실로, 시간 나는 대로 들고는 다녔지만 진득하게 잡고 있지를 못했다.
그래도 오늘까지 읽은 책이라 다행이 아직은 기억이 살아 있다 -_-;;
어쩌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문체가 생각나는 책.
지금에야 이런 '밀실의 살인' 모티브는 너무나 유명하고 잘 알려진 구조여서 으흥..대충 그렇겠군 하고 짐작이 가지만 이게 1800년대에 씌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책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초딩애들도 다 알만한 지문이나 유전자인식같은 것도 없이, 순전히 한 사람의 지적인 뇌활동으로 풀어가는 사건이라니.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되는 글쓰기다.
그래도 그따위로 범인을 풀어준 마지막은 좀 시시했다.
작가가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풀어주었다는 이해는 하지만 .. 쯥.
옮긴이 : 오준호
--------
아직도 한참 남았다.
언제 다 읽을 지는 몰라도.
책 읽다보면 쓰지를 못하고 쓰다 보면 또 읽지를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고 늘 이 모양이다.
아 한심..-_-;;
'그룹명 > 낡은 서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쇠없는 집 (0) | 2012.03.22 |
---|---|
중국 앵무새 (0) | 2012.03.20 |
미디어 씹어먹기 (0) | 2012.03.09 |
조선시대 생활사 -2 (0) | 2012.02.21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0) | 2012.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