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트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책을 읽고 싶은 분들은 더 이상 읽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두어 장 남겨두고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결국 퇴근시간을 미뤘다.
내 평생 일본인에게, 일본 작가에게 감사할 마음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야기를 다 읽고, 옮긴이의 말까지 다 마치면서 가슴 깊이 고마움, 서글픔,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조국의 운명과 더불어 한 몸이 되어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었던 먼저 가신 세대에 대한 감사와 슬픔,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분들에 대한 아픔이 어우러져 무엇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진짜 아무 생각이 없어서였다.
늘 들락거리는 인터넷뉴스 사이트에서 리뷰를 읽으면서 흠.. 오랫만에 그럼 일본 소설 좀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류나 하루키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도 물론 있지만 나는 어쩐지 일본 소설에 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문성으로 추앙하는 나쓰메 소세키도 그렇고 요즘 한창 많이 팔리는 오쿠다 히데오나 요시모토 바나나도 영 내 쪽은 아니었다. 그 정서가 도무지 닿지 않았다.
때로 기분전환을 하겠다고 추리소설을 사면 이건 뭐 진짜...기분이 너무 나빠지는 "링" 같은 분위기가 역시 추리소설에도 묻어 있어서 진짜 일본문학은 나와는 먼 얘기였다. (하기야..생각해보니 내가 '문학'에 관한 책들에 이상하게 덜 재미를 느끼고 있긴 하구나. 어느 나라 것이든지간에)
이 책도 그랬다.
괴기담인가보다 했다.
요즘 뉴스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게 그쪽 얘기인지라 듣기도 생각하기도 솔직히 조금은 지겹지만 그래서 또 한번 읽어보자고도 싶어서 샀다.
시작은 괴기담 같았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괴기스런 판타지물로 시작했다.
어젯밤 늦게 책을 열었다가 으스스 해져서 많이 못 넘기고 덮었다.
옴니버스 괴기담인줄..로만 알았는데 어라? 추리소설이네?
따라가다보니 추리소설만도 아니고 애정소설인가? 했는데 후반부에 이르러서 어머나...!
내가 독서량이 너무 적고 무지해서 이런 말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일본인의 입으로, 일본 작가의 입에서 이렇게 진솔하게 조선에 저지른 일본의 죄에 대해 통렬하게 아파하고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며 눈물 흘리는 책을 본 적이 없다.
'일본인들 스스로는 도덕이니 뭐니 굉장히 떠들지만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일본인들의 도덕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백, 자책을 우리는 그토록 듣고 싶어했고 기다려왔는데.
자신이 직접 저지른 죄가 아니지만, '일본사람'으로, '일본의 역사로' 조선 사람 앞에서, 조선 역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 주인공을 보며 가슴 한 쪽이 아프고 저리고 그리고 고맙고도 밉고...이 복잡한 심정을 무엇이라 할까...
역사에 관심이 적지 않은 나도 그 부분까지는 몰랐던, 징용당한 조선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절절히 써 간 이 작가에 나는 너무나 고맙고도 고맙다.
이 작가의 이름을 이제부터 기억하며 지켜보련다.
이 작가가 기획하고 있는 다음 소설이 역시 조선과 일본의 악연과 악몽이 만나는 정신대, 조선 근세사라 하니 더 기대가 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정신나가고 밸도 빠진 인간들이 이 나라의 이름을 걸고일본에 못 퍼줘서, 못 보태줘서 발이 저리다 못해,국민들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갖다 바치며 국민들 얼굴에 똥칠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고 있는 이 참담한 기분이란...
아홉시 뉴스에 나와서 지금 이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고 설치고 있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개새끼다.저 새끼들 머리속에 진짜 이 나라의 역사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할까. 하긴 개뿔, 제 뱃속에 쳐넣을 돈 말고는 뭐가 있겠어.
진짜 생각하면 짜증나 돌아버리겠어!!
제목 :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지은이 : 시마다 소지
옮긴이 :한희선
펴낸 곳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