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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

by 소금눈물 2011. 11. 28.

 

06/19/2010 08:36 pm공개조회수 1 0

시절이 어렵고 마음이 고단할때는 제일 큰 위로가 역시 책이다. 착하고 좋은 책, 읽고나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이 환해지는 책, 누군가에게 아무 말 없이 건네주어도 흐뭇하고 든든해지는 책. 글자를 배워서 참 좋구나, 복이구나 싶어지는 책. 이 책은 참으로 그런 책이다.

책장 가득 풍성한 사진도 눈에 큰 복이지만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내내 따라가며 새들의 마음을 읽는 지은이의 마음은 이내 독자인 내게도 고스란히 옮겨와 내내 이 새들의 한 가족처럼 느끼며 읽었다. 처음 둥지를 만들 때, 바쁜 어미새에 비해 태평하기만 한 아빠새를 보며 밉살스럽고 철없다 싶었는데 알에서 깬 아기새들을 부양하느라 그 고생을 하는 아빠새를 보면 자연의 규칙에선 부모의 역할이 더 하고 덜 할 것도 없이 딱 그 부모구나 싶은 것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이 책의 전 편이라고 할 수 있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읽으면서도 자연의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다큐를 만든다는 게 참 대단한 노역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에선 지은이는 아예 안식년을 신청해서 꼬박 새둥지를 바라보며 80여일간을 산다. 큰 새도 아니고 움직임이 빠른 작은 동고비 부부를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꼬박 카메라 렌즈안에서 지켜보고 버틴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책 가득 펼쳐진 사진으로만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지은이는 아빠 동고비 엄마 동고비를 따로 구분해서 그 섬세한 감정까지 읽어가며 정을 불어넣었는데 그게 진짜 사랑없이는 안 되는 구나 싶었던 것이, 나는 아무리 보아도 사진상으로는 숫놈인지 암놈인지도 구별을 못하겠는 거였다. 사진설명으로, 둥지를 만드느라 부리가 닳고 깃털이 흐트러진 것이 엄마새구나 싶을 뿐이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얼마나 우습고 기고만장한가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자연이 정해준 짧은 시간 안에 짝을 만나고 둥지를 정하고 또 새끼를 키워내는 일가족에겐 한 계절, 아니 하루의 몇 분이라도 정말 눈물겹도록 소중하다.폭우에 길이 막혀 한창 자라나는 새끼새의 먹이를 구하지 못해 애가 탄 부모새가, 잠깐 비가 긋는 틈에 잽싸게 날아 먹이를 구해오고, 그러느라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해 (날개를 관리하지 못하는 새는 그 자체가 생존에 위험이 된단다) 나날이 수척해지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스럽고 애가 탔다. 놀라운 부모새의 부정도 부정이려니와, 나무를 정하고 온갖 정성을 들여 둥지를 짓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모르는 놀라운 자연의 법칙과 그것을 활용하는 새들의 지혜와 배려에 정말 감동했다.

주인공인 동고비 뿐 아니라 내가 모르던 그 수많은 새들, 박새, 붉은배매새, 방울새, 오목눈이등, 숲에 깃들어 사는 그 많은 생명들이 작은 옹달샘 하나에 의지해 찾아들고 서로 순서를 정해가며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동화 같았다. 다람쥐 모자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가족들의 모습 아니던가. 나무열매, 새잎순도 순서를 정해서 나누어 먹고 사는 욕심없는 숲의 가족들 모습은 제 잇속을 위해선 싹쓸히 해치우면서 배려라든지 나눔이라든지는 전혀 생각할 능력도, 마음도 없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차라리 진화가 덜 된 모자란 족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딱따구리가 맨 처음 지어서 가족을 이루고 떠난 집을, 또 다른 새 동고비가 날아와 가정을 일구고 떠나고, 그 다음엔 또 다른 새 가족이 날아와 그 집을 쓰고, 그렇게 나누는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그 둥지를 키워내고 지켜주는 은단풍나무도 참 넉넉하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온 숲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도, 숲도 지키지 않으면, 아끼고 살피지 않으면 무너지고 만다. 동고비가족이 떠난 둥지가, 돌보는 손길이 없어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지금 온 나라를 포크레인으로 쑤셔대는 현실이 떠올라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일전에도 썼지만, 출근길에 오가는 작은 개천에도 백로며 내가 모르는 새 가족들이 여럿 모여 살았는데 요즘 날마다 강변을 파헤치고 새들의 둥지를 부수다보니 요즘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렇게 파헤치고 망가뜨려 무엇을 얼마나 더 갖고 치부하자는 것인지 참말로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쌓은 돈으로 우리는 무엇을 사겠다고, 무엇을 얼마나 누리겠다고 그러는 것일까. 어리석고 천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우주의 저울로는 한 인간의 무게나 토끼 한 마리의 무게나, 그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고 했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꼭 필요한 만큼만, 기울지도 넘치지도 않게 돌려쓰고 나눠쓰는 새들의 모습앞에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읽으면서 내내 행복했지만 그래서 그만큼 괴롭기도 했다. 현실이 너무 슬퍼서, 너무나도 끔찍해서.

이 새들이 떠나고 난 숲, 상상도 하기 싫다. 새들이 떠난 숲에는 사람도 살지 못한다.
더불어 살자. 함께 잘 살자. 우리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지은이에겐 너무나 고단한 일이었겠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자마자 또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아 정말, 한번 보지도 못한 숲속 식구들의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그나저나 오목눈이 아가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제목 :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
지은이 : 김성호
펴낸 곳 :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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