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마도 순수한 <독후감>이 아니게 될 것 같다. 그의 책을 잃고 어떤 소감을 말하기엔 그의 속말들을 다 짐작하고 넉살좋게 풀어놓을 내 언변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사실은 그가 언급한 책들 중에 실제 내가 읽어본 책은 단 네 권 뿐이다. 이런 주제에 뭔 서평을 말하겠는가.
그냥 내 하고픈 말이나 지껄이고 말련다.
좋은 책은 살면서 세 번 읽는다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책인 건 알고 있고 감동도 크지만 살면서 한 번 읽은 고전을 되풀이 해서 읽을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도 않고또 새로운 책이 날마다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책은 사실 열 다섯 이전에 이미 다 끝내버린 것만 같다.
언젠가 이 방에서 내 인생의 세 남자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세상을 어지간히 살았다 싶은 이 나이에 이르러서 문득 그렇게 나를 만들고 이루었던 그 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정리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책 몇 권.. 그렇게 틀을 잡고.
여덟살 어린 나이에 하인리히 실리이만의 전기를 통해 처음 알고, 찾아 읽었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그렇게 만난 첫사랑 아킬레스- 나이들어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 자체가 철저히 그리스시각일 수 밖에 없었던지라 트로이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보다는 아킬레스의 비극적인 영웅담에 빠질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너무나 좋았다. 전장에 나가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전화에 휩쓸려들어가그 친구를 죽인 적장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트로이성을 미친듯이 질주하던 그 사람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춘기에 만난 히드클리프.
주위에 나를 세상으로 이끌 만한 롤모델이 되어 줄 사람도 없었고 딱히 그럴 만한 계기도 없었다. 천상 유치찬란한 한때 문학소녀로 살다가 그렇게 나이들어가야 했을 내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세상일에 늘 시끄럽고 법석을 떨며 살게 되었을까.
세상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역시나 책으로 인해서였다.
기형도의 유고집을 들고 망월동에 갔다. 이한열의 어머니를 거기서 만났다는 한 구절 때문이었다. 눈을 못 뜨게 지열이 펄펄 끓어오르던 팔 월 어느 날, 햇볕에 달아오른 비석의 비문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나는 비로소 80년 광주를 읽었다.
내가 알기로는 천상시인, 하늘에 한 칸 대청마루를 갖고 싶어 했던 그 눈물의 시인 박정만. 그런 사람을 끌고가 고문하고 죽인 정권은 도대체 무슨 정권인가, 나는 분노하고 그들이 궁금했다. 그렇게 5공을, 전두환과 노태우를 알았다. 세상에 목소리를 높여 그들을 비토하고 저주하는 참여시인도 아닌 이런 순정의 시인을 죽이는 독재.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한시절을 위로하고 또 내 눈길을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이끌던 그 책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형도가 없었다면 나는 이한열을 몰랐을테고 박정만을 몰랐다면 나는 독재의 폭력도 몰랐을 것이다. 김환을 알지 못했다면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던져 역사의 제단에 제물로 불살라진 선조들의 분노의 힘, 그것도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이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를 처음 알았을 때는그저 단순히 좋아하던 지식인이었고 또 얼마 후에는 너무나 고맙고 미더운 동지였다. 그가 상처받을 때는 더불어 아팠고 그가 행복했을 때는 나도 자랑스러웠다. 그가 오열하며 쓰러졌을 때는 나도 숨을 쉬지 못했다. 어쩌면 어떤 시기를 거치면서는 그와 나란히 한 쪽 방향을 바라보는 눈길을 닮아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면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그를 보는 내 눈길은 여전히 미덥고 그리고 그만큼 아프고 지금은 몹시 미안하다. 턱없는 내 소망이 그를 죌까 봐,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데 그를 이끌고 그것이 그를 불편하게 하고 우울하게 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어둡고 비극적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는 어려서부터 왜 그렇게 좋았을까. 나이에 맞지 않게 그 무지막지한 운명의 대적자들을 만나 사모하고 내 영혼을 온통 흔들리우며 그렇게 걸어왔을까. 그것은 내 마음 속 어느 주파수가 그를 찾았던 것이고 내 마음판을 그들이 울렸기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이 책에 언급한, 그가 식자우환이라고 개탄하기도했던 그 책들은 그가 태생으로 가진 그 기질에 맞아서였을 테고 그는 그렇게 처음부터 이미 그들의 일부기도 했을 것이다. 인간사회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민중들과 더불어 함께 살고 싶어 했던 그 철학자, 경제학자들에게서 그는 배웠고, 그런 삶으로 살아가는 문학 속의 주인공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그 빛에 기울였다. 젊은 날 한 청년의 가난하고 답답한 가슴을 적시고 이끌었던 청춘의 독서가 이미 어떤 고유명사로 독보적인 자리에 서 있는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그 청춘에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좀 더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아갔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그 시절을 살았다 해서, 부조리한 그 사회현실을 목도 했다 해서 그 사람처럼 살지는 않았다. 그 시절을단순히 몸이 살아냈다 해서 역사를 겪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다치고 쓸리면서 삶이 겪어내야 그 시간을 살았다 할 것이다. 그는그 시간에 부끄럽지 않게 기꺼이 자신을 던졌고 그런 그를 이끌고 키운 스승이 바로 이 책들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말 잘하는 이는 많고 글을 잘 쓰는 이도 많다. 하지만 말과 글을 두루 잘 하면서 자기의 논리를 상대방에게 쉽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이는 많지 않다. 그런 능력은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와 사려가 깊으면서도 자신의 논리가 확실히 정립되어 있고 그 논리가 상식적이고도 정서가 풍부한 이들이 가지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두 사람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와 눈물을 갖고 있는 사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이제 이곳에 없고 남은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맹자를 탐독했던 그 마음을 내가 안다. <사기>를 읽으며 역사에 버림받는 비극적인 영웅들의 이름을 외는 그 마음을 내가 안다. 신문들의 금수와도 같은 무지와 폭력의 잘못을 범죄학이 다뤄야 한다는 그의 분노를 내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캄캄한 밤, 그는 외롭고 아프다. 그를 이끌던 현인들의 별빛은 너무나 먼 곳에 있고 그의 동지들은 추워 떨고 있다. 들판에 서서 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아득한 곳을 찾고 있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그를 다독이는 E.H.카의 말에 그는 진정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역사는 과연 진보할 것인가. 끝내 이 역사는 그가 꼼꼼히 박음질을 하듯 되돌아보며 민중에 대한 희망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바램을 들어줄 것인가.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시간은 너무나 끔찍하고 저주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고 이 희망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키워야 하는 것임을 잘 아는데.
젊은 날 그를 키우고 다독여준 고전을 뒤지며 그 낡은 책냄새에 코박고 스스로를 억지로 부추겨 세우며 견뎠을 그 시간이 너무나 안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또 말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 그렇다고. 당신과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이 시간을 똑같이 고통스럽게 견디며 지나간 현인들이 우리를 키우고 세워준 것처럼 우리의 이 길이 뒤에 올 어린 벗들에게 또 작은 힘이 될 지 모르겠다는 희망으로, 그 소명으로 버티고 있노라고. 그러니 너무 오래는 슬퍼하지 말 것이며 너무 깊게는 절망하지 말자고.
세상이 조금 평온해지면 나도 나를 키워준 책 이야기를 맘 편히 하며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대장 부리바>, <데카메론>,<사랑의 단상>, 그리고 김현과 김화영의 평론집들... 내 속살을 채워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불러놓고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다.
제목 :청춘의 독서
지은이 :유시민
펴낸 곳 : 웅진 지식하우스
그냥 내 하고픈 말이나 지껄이고 말련다.
좋은 책은 살면서 세 번 읽는다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책인 건 알고 있고 감동도 크지만 살면서 한 번 읽은 고전을 되풀이 해서 읽을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도 않고또 새로운 책이 날마다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책은 사실 열 다섯 이전에 이미 다 끝내버린 것만 같다.
언젠가 이 방에서 내 인생의 세 남자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킬레스, 히드클리프, 그리고 김환.-
폭풍같은 열정으로 주어진 운명과 기꺼이 맞서다 죽음을 넘어가버린 비극적인 사람들.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무모하고도 들뜬 열기를 이 나이에도 감당할 줄을 모르고 날뛰듯 하고 있는 내 자신이 그들이 뿌린 빛에 그 때부터 물들어 버린 탓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을 어지간히 살았다 싶은 이 나이에 이르러서 문득 그렇게 나를 만들고 이루었던 그 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정리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책 몇 권.. 그렇게 틀을 잡고.
여덟살 어린 나이에 하인리히 실리이만의 전기를 통해 처음 알고, 찾아 읽었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그렇게 만난 첫사랑 아킬레스- 나이들어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 자체가 철저히 그리스시각일 수 밖에 없었던지라 트로이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보다는 아킬레스의 비극적인 영웅담에 빠질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너무나 좋았다. 전장에 나가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전화에 휩쓸려들어가그 친구를 죽인 적장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트로이성을 미친듯이 질주하던 그 사람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춘기에 만난 히드클리프.
둘도 없던 친구가 자살해버리고 그 충격과 죄책감으로 헤메던 그때 내 슬픔과 노여움을 아는 이는 워더링하이츠의 겨울밤, 창문을 열고 언덕을 헤메는 케더린의 유령을 향해 돌아오라 우짖던 바로 그 남자였다. 퍽 오래갔었다 그 사랑은. 내 일기장은 온통 히드클리프에 대한 절절한 연서와 자학으로 채워졌다.
주위에 나를 세상으로 이끌 만한 롤모델이 되어 줄 사람도 없었고 딱히 그럴 만한 계기도 없었다. 천상 유치찬란한 한때 문학소녀로 살다가 그렇게 나이들어가야 했을 내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세상일에 늘 시끄럽고 법석을 떨며 살게 되었을까.
세상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역시나 책으로 인해서였다.
기형도의 유고집을 들고 망월동에 갔다. 이한열의 어머니를 거기서 만났다는 한 구절 때문이었다. 눈을 못 뜨게 지열이 펄펄 끓어오르던 팔 월 어느 날, 햇볕에 달아오른 비석의 비문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나는 비로소 80년 광주를 읽었다.
내가 알기로는 천상시인, 하늘에 한 칸 대청마루를 갖고 싶어 했던 그 눈물의 시인 박정만. 그런 사람을 끌고가 고문하고 죽인 정권은 도대체 무슨 정권인가, 나는 분노하고 그들이 궁금했다. 그렇게 5공을, 전두환과 노태우를 알았다. 세상에 목소리를 높여 그들을 비토하고 저주하는 참여시인도 아닌 이런 순정의 시인을 죽이는 독재.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한시절을 위로하고 또 내 눈길을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이끌던 그 책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형도가 없었다면 나는 이한열을 몰랐을테고 박정만을 몰랐다면 나는 독재의 폭력도 몰랐을 것이다. 김환을 알지 못했다면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던져 역사의 제단에 제물로 불살라진 선조들의 분노의 힘, 그것도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이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를 처음 알았을 때는그저 단순히 좋아하던 지식인이었고 또 얼마 후에는 너무나 고맙고 미더운 동지였다. 그가 상처받을 때는 더불어 아팠고 그가 행복했을 때는 나도 자랑스러웠다. 그가 오열하며 쓰러졌을 때는 나도 숨을 쉬지 못했다. 어쩌면 어떤 시기를 거치면서는 그와 나란히 한 쪽 방향을 바라보는 눈길을 닮아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면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그를 보는 내 눈길은 여전히 미덥고 그리고 그만큼 아프고 지금은 몹시 미안하다. 턱없는 내 소망이 그를 죌까 봐,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데 그를 이끌고 그것이 그를 불편하게 하고 우울하게 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어둡고 비극적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는 어려서부터 왜 그렇게 좋았을까. 나이에 맞지 않게 그 무지막지한 운명의 대적자들을 만나 사모하고 내 영혼을 온통 흔들리우며 그렇게 걸어왔을까. 그것은 내 마음 속 어느 주파수가 그를 찾았던 것이고 내 마음판을 그들이 울렸기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이 책에 언급한, 그가 식자우환이라고 개탄하기도했던 그 책들은 그가 태생으로 가진 그 기질에 맞아서였을 테고 그는 그렇게 처음부터 이미 그들의 일부기도 했을 것이다. 인간사회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민중들과 더불어 함께 살고 싶어 했던 그 철학자, 경제학자들에게서 그는 배웠고, 그런 삶으로 살아가는 문학 속의 주인공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그 빛에 기울였다. 젊은 날 한 청년의 가난하고 답답한 가슴을 적시고 이끌었던 청춘의 독서가 이미 어떤 고유명사로 독보적인 자리에 서 있는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그 청춘에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좀 더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아갔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그 시절을 살았다 해서, 부조리한 그 사회현실을 목도 했다 해서 그 사람처럼 살지는 않았다. 그 시절을단순히 몸이 살아냈다 해서 역사를 겪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다치고 쓸리면서 삶이 겪어내야 그 시간을 살았다 할 것이다. 그는그 시간에 부끄럽지 않게 기꺼이 자신을 던졌고 그런 그를 이끌고 키운 스승이 바로 이 책들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말 잘하는 이는 많고 글을 잘 쓰는 이도 많다. 하지만 말과 글을 두루 잘 하면서 자기의 논리를 상대방에게 쉽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이는 많지 않다. 그런 능력은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와 사려가 깊으면서도 자신의 논리가 확실히 정립되어 있고 그 논리가 상식적이고도 정서가 풍부한 이들이 가지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두 사람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와 눈물을 갖고 있는 사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이제 이곳에 없고 남은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맹자를 탐독했던 그 마음을 내가 안다. <사기>를 읽으며 역사에 버림받는 비극적인 영웅들의 이름을 외는 그 마음을 내가 안다. 신문들의 금수와도 같은 무지와 폭력의 잘못을 범죄학이 다뤄야 한다는 그의 분노를 내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캄캄한 밤, 그는 외롭고 아프다. 그를 이끌던 현인들의 별빛은 너무나 먼 곳에 있고 그의 동지들은 추워 떨고 있다. 들판에 서서 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아득한 곳을 찾고 있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그를 다독이는 E.H.카의 말에 그는 진정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역사는 과연 진보할 것인가. 끝내 이 역사는 그가 꼼꼼히 박음질을 하듯 되돌아보며 민중에 대한 희망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바램을 들어줄 것인가.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시간은 너무나 끔찍하고 저주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고 이 희망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키워야 하는 것임을 잘 아는데.
젊은 날 그를 키우고 다독여준 고전을 뒤지며 그 낡은 책냄새에 코박고 스스로를 억지로 부추겨 세우며 견뎠을 그 시간이 너무나 안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또 말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 그렇다고. 당신과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이 시간을 똑같이 고통스럽게 견디며 지나간 현인들이 우리를 키우고 세워준 것처럼 우리의 이 길이 뒤에 올 어린 벗들에게 또 작은 힘이 될 지 모르겠다는 희망으로, 그 소명으로 버티고 있노라고. 그러니 너무 오래는 슬퍼하지 말 것이며 너무 깊게는 절망하지 말자고.
세상이 조금 평온해지면 나도 나를 키워준 책 이야기를 맘 편히 하며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대장 부리바>, <데카메론>,<사랑의 단상>, 그리고 김현과 김화영의 평론집들... 내 속살을 채워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불러놓고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다.
제목 :청춘의 독서
지은이 :유시민
펴낸 곳 : 웅진 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