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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by 소금눈물 2011. 11. 28.

 

05/15/2008 11:17 pm공개조회수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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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책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직후인 지금, 가슴은 두근거리고 이별의 슬픔에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고 있다.
숲을 좋아하고 그 숲에 깃들인 생명을 좋아했지만 그것은 참으로 막연하고도 무책임한 잠깐의 관심이었다. 그런데 그 자연의 숲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의 움직임이 있고 그 생명들간의 교류와 삶과 꿈, 그리고 사랑과 이별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곡진하게 숨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고보면 우리 인간들 역시 그 자연의 일부이거늘 어쩌자고 그 태원을 잊고 앞뒤없이 무작정 제 목구멍만 생각하며 달리느라 다른 생명들을 무시하고 가차없이 멸살하였던가. 모르면 무심하게 되고 무심한 것은 일쑤 폭력이 되기 쉬우니.

이 책은 아주 특별한, 아주 아주 특별하고 눈물이 나게 아름다운 한 새 가족의 육아일기이다.

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지은이는 어느날 이른 봄 새벽 우연히 산에 오르다 반가운 새 부부를 만난다. 큰오색 딱따구리. 오래전부터 그 숲이 건강하다는 지표종이 된 큰오색딱따구리를 만나고 이들의 번식과정을 관찰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그들을 방해하지 않게 조심하며 꼼꼼히 관찰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다. 강의준비로 새벽 일찍 일어나는 일이 힘들지만 지은이는 꼬박꼬박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요람인 죽어가는 미루나무 근처에 차를 대고 불편한 몸을 구부려 사진기 렌즈에 눈을 대고 오랜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버틴다. 두 마리의 큰오색딱따구리가 사랑을 나누고 알을 낳을 보금자리인 미루나무를 쪼아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고 그 알을 돌보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며 지은이는 어느덧 그들과 가족이 되고 읽는 이의 마음도 또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며 가족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큰오색딱따구리가 반드시 그 나무에, 딱 그 위치에 집을 정해야 했던 놀라운 자연의 신비와 그 자연을 이용하는 지혜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감추며 훈련시키는 과정은 인간의 부모마음과 절대 다르지 않고 오히려 가끔은 어떤 인간들은 감히 따르지도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은이가 큰오색딱따구리의 마음이 되어가면서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여, 큰오색딱따구리를 위협하는 까치를 미워하고 붉은배새매를 두려워하여 조바심을 내는 모습을 보다보면 나도 몰래 웃음이 나오지만 어쩌랴 나도 똑같이 그 가족과 한 마음이 되어 까치의 출현을 불안해하고 있는 것을.

둥지가 완성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알에서 깨어난 큰오색딱따구리의 새끼와의 첫만남을 벅차게 반가워하며 그 새끼 중 한 마리의 죽음을 숙연하게 바라보며 나도 이미 그들과 한 마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극히 조심스럽게 은거지를 숨기고 온갖 꾀를 부리던 큰오색딱따구리 부부가, 결정적인 위기에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그 무서운 붉은배새매를 맞서는 장면에선 나도 몰래 "헉!"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눈물겨운 그 부정이라니... 그렇게 키운 새끼들을 떠나보내고, 새끼들이 떠난 것을 모르고 먹이를 물고 찾아온 아비새가 정신없이 나무를 오르내리며 찾는 모습에선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이별을 준비하며 새끼를 혹독하게 훈련시키던 부모의 마음이었지만 그 이별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새끼를 주려고 물고온 먹이를 그대로 문 채로 네 시간을 나무를 헤매는 수컷 큰오색딱따구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새끼를 떠나보내는 이별은 그렇게 힘겨운 것이었다.
지은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별을 아쉬웠던 자신의 모습을 '호들갑'이었다며 반성한다. 50여일동안 정을 함빡 주며 함께 가족이 되었던 자신이었지만 그래 그 부모보다 힘겹지는 않았을테니까.

큰오색딱따구리부부의 든든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들이 만든 둥지 속의 새끼들과의 사랑, 그들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사랑과 더불어 또 독자인 나까지 그 사랑속에 함께 가족이 될 수 있었던 50일간의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기록.<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지은이의 렌즈는 큰오색딱따구리의 가족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있지만 어느덧 그 렌즈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이웃인 박새와 황로와 왜가리와 적인 까치, 붉은배매새에게까지 흘러가고 그들이 머물고 어울려 사는 숲과 갈대숲과 논을 일구는 젊은농부와 그 가족에게까지 비추며 흘러 자연속에서 우리 모두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논가에 무심히 서 있는 가지 부러진 늙은 나무 하나를 무심히 보지 못할 것이고, 갈아엎어진 논배미에서 어떤 새들이 날아와 새끼를 키울 먹이를 찾는가도 돌아보게 될 것이고, 나무의 잎파리 모양 하나, 바람의 방향과 그 숲의 냄새까지도 나는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나쳤던 그 무심의 시선 너무에 이토록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갈피갈피 있을 것이니 말이다. 전에 살던 곳의 그 작은 동산에서 새벽마다 마주치던 이름을 모르는 그 작은 새들, 그 새들의 안부가 새삼 그립다. 미안하다 새들아. 너희를 몰라서 너희 존재가 그리 아름다웠던지를 또 몰랐다.


다시금 지은이가 너무 고맙다. 근자에 읽은 책 중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공들여 찍은 수많은 사진들과 더불어 꼼꼼한 설명과 그 설명이 전혀 어려움 없이 읽혔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 정말 고맙다.
망설임 없이 추천한다.


제목 :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지은이 :김성호
펴낸 곳 : 웅진 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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