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마지막 장을 덮고 한동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드디어 평화로운 만에 기나긴 항해가 끝나고 닻을 내리게 되었다는 안도감, 가슴 밑바닥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슬픔, 죽음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시 불려나온 애절하고 슬픈 사랑의 한숨들...
알았구나.
만났구나... 애쉬는 모든 것을 알고 눈을 감았구나. 그것을 크리스타벨은 몰랐던 것이구나...
크리스타벨의 침묵과 그녀의 기나긴 외로움과 슬픔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괴로와했던 사람의 평생에 걸친 사랑이 내 가슴을 울렸다.
오후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와 내내 베란다 양지쪽에 기대 읽은 이 책, 한없이 슬프고도 외로운, 하지만 꼭 그렇게밖에 다시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를 내내 붙잡았다.
이 책은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미문학의 장황하고 섬세한 온갖 이론들이 그 시인들의 이름으로 등장하고, 빅토리아시대의 시인들의 묵은 시들과 편지들, 이론들과 섞여 그들을 추적하는 현대의 시인들, 미국와 영국을 오가는 문단, 학계의 파벌싸움과 주도권 다툼이 얽혀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다.
뚜렷한 성과도 없이 랜돌프 애쉬라는 시인의 흔적을 조사하는 연구자 롤랜드가 어느날 우연히 도서관 낡은 책더미에서 애쉬가 어느 여인에게 보낸 편지의 원본을 발견한다. 충동적으로 그 편지를 집으로 가져온 롤랜드는 문학사에 애쉬의 주변 사람으로 등장한 적이 없는 그 여인의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애쉬의 문학을 둘러싼 사람들의 치열한 공방전, 미지의 여인 크리스타벨을 떠도는 이야기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있던 그들의 은밀하고 뜨거운 사랑은 그들을 쫓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다시 불려나오며 그들처럼 다시 그 사랑을 쫓아가게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이렇게 호흡이 길고 풍성한 이야기는 오랜만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 말해야 하는지 나는 지금 둔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다만... 크리스타벨의 그 침묵, 뜨겁고 깊은 그 침묵의 무게를 내가 짐작하고 있으며 그녀를 평생 바라보며 자신의 울타리에서 유령처럼 행복하고 다정했던 한 남자의 슬픔과 기다림을 생각하고 있다.
내내 아쉽고 무거웠는데, 그들의 무덤 속에서 떠오른 (글자 그대로 무덤 속에서!!) 마지막 이야기는 소름이 돋을만큼 커다란 무게로 내 뒷머리를 강타했다. 애쉬가 평생 간직한 로켓 속의 그 금발머리카락 몇 올. 그 머리카락의 주인공, 그 놀라운 진실!
크리스타벨... 눈을 감으세요. 당신은 이제 안식할 수 있어요.
멜루지나- 크리스타벨.
이제 정말 그곳에서 행복하길. 당신들의 생애 가장 아름답던 그 며칠의 이야기가 내내 그 곳에서 이어지길. 당신들의 아이와 함께.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제목: 소유
지은이 : A. S 바이어트
옮긴이 : 윤희기
펴낸 곳 :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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