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빠진 책이 일전에 읽은 <눈오는 날 싸박싸박 비오는 날 장감장감>과 더불어 이 책이다.
지은이가 전라도 구석구석을 돌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붙잡고 말을 건네고 어울리며 채록한 사투리 산문집이다.
이 책은 소리내어 읽을 책이다.
언뜻 활자로 보아선 말맛이 살아나지 않다가 소리내어 읽어보면 말 속에 숨었던 향과 맛이 반딧불처럼 환하게 피어오른다.
전라도 말은 충청도내기인 내가 읽어도 큰 무리가 없게 닮은 꼴의 사투리가 많다.
전라도 사투리를 읽지만 나는 잊은 내 고향말을 떠올린다.
ㄱ을 ㅈ으로 발음하고 (겨우 ->제우) ㅎ을 ㅅ으로 발음하(형 -> 성)는 등의 발음변화나 독특한 사투리와 그 고장의 고유명사들이, 음표들처럼 튀어올라 노랫가락이 된다.
깜밥, 붴, 버큼,산내끼, 짐치...
촌스럽다고 외면하고 버렸던 그 말들이 이렇게나 그립고 정다운 것들이었다니.
그리운 그 말들과 더불어, 젊은이들에겐 죽은 이 말을 당신의 삶과 꿈으로 함께 하며 풀어놓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구수하고도 정답고 따뜻하게 감돈다.
책장을 넘기다가 마음 한 쪽으로 불빛이 환하게 떠오르는 말들.
젊은이들이 다 떠난 고향집에 홀로남아, '너물'을 캐고, 철 따라 '씨갓(씨앗)' 싱궈 거둬먹는 햇살 따뜻한 땅의 어르신들.
돌가지(도라지) 손질하고 있는 그 손가락 맹키로 굵고 옹이진 그 삶의 이야기들을 듣자니 그렇게 살아오신 세월이 고맙고도 안스러워 마음이 저릿해진다.
저런 할머니가 내게도 있어서, 여름밤 모굿불 피워놓고 회푸대 부채로 살살 부쳐주시면서, 할머니 무릎에 눠 퇴끼랑 호랭이가 사이좋게 산다는 심심산골 이야기를 듣다 잠이 드는 유년이었으면 얼마나 풍요로왔을까.
정에도 가난했다 나는.
제목: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지은이 :이대흠
펴낸 곳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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