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 풀리고 마음도 다 풀리면 나룻배에
나를 그대를 실어 먼 데까지 곤히 잠들며 가자고
배 닿는 곳에 산 하나 내려놓아
평평한 섬 만든 뒤에 실컷 울어나보자 했건만
태초에 그 약속을 잊지 않으려
만물의 등짝에 일일이 그림자를 매달아놓았건만
세상 모든 혈관 뒤에서 질질 끌리는 그대는
내 약속을 잊었단 말인가
에전에 읽은 시집을 다시 꺼냈다가,
책장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는다.
말들이, 말의 숨결들이 오소소 어깨를 떨다
또 가만히 가라앉는다.
목울대 안 쪽에서 둔탁한 통증이 올라왔다.
어젯밤 꿈에 보았던 길다란 그림자가 한쪽 어깨를 젖은 채 지나갔다.
요즈음은 꿈길이 길어진다.
제목 : 바람의 사생활
지은이 : 이병률
펴낸 곳 :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