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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춤추는 세상을 껴안은 화가 - 브뢰겔

by 소금눈물 2011. 11. 24.

 

07/11/2006 09:10 pm공개조회수 5 0




독후감이 늘어날 수록 마음 한 쪽이 불편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때쯤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그림을 보고 느끼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지 그것을 일일히 기록하여 어줍잖은 목록을 늘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몇 권 째 책을 읽고 독후감을 건너뛰고 있다.
좋은 책은 좋아서, 가슴에 가만히 간직하다 올릴 시기를 놓치고
마뜩찮았던 책은 이런 책을 왜 읽었나 한숨을 쉬면서 돌이질을 하고...
그래서 이 서고에 올라오는 책은 감동이나 내 정성의 무게와는 별로 상관없을 때가 많다...

아마도...이 독후감도 그리 오래 갈 일은 아닌가보다.
지금처럼, 종일 주구장창 길게 만들다가 한순간에 날려버려 허탈해질때는 더더욱이나 이런 짓들이 부질없다...


브뢰겔과 히에로니무스 보쉬, 막스 에른스트...
그들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시대를 뛰어넘는 이상한 동질감같은 것을 느낀다.
특히나 지옥을 묘사하는 기괴한 모습에는 어쩌면 이들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들이 살고 움직였던 환경을 전혀 몰라도.

그 중에서 브뢰겔의 그림을 나는 참 좋아했다.
어린시절, 달력에서 처음 만난 브뢰겔.
<눈밭의 사냥꾼>은 겨울을 떠올리면 맨 먼저 생각나는 그림이다.
등뒤에 여우 한마리를 매달고 돌아오는 사냥꾼들의 등 뒤로 개들이 따르고 있다.
뒷모습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지친 등만으로도 고단한 사냥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래로 펼쳐진 마을은 겨울이다.
눈에 묻혀 온통 하얀 마을과 얼어버린 호수에서 얼음을 지치는 마을 사람들.
화면의 왼쪽으로 눈을 이고 있는 검은 나무 두 그루가 기나긴 겨울의 굳건한 힘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유화로 그려진 서양 최초의 풍경화라 한다.

마을을 온통 아이들만 모여서 각종 놀이를 한다.
팽이를 돌리고, 말뚝박기를 하고, 통굴리기를 한다.
어른이 아닌 아이는 어떤 이야기의 주제도 주인공도 될 수 없던 중세. 어른들은 하나도 없는 이 이상하게 흥겹고 신나는 그림이 있을 수 있다니.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표정들로 가득한지, 마치 얼마전에 유행했던 그림책 - 윌리를 찾아서를 보는 듯 하다.

큰 낫으로 썩썩 밀을 추수하는 농부들
한쪽에선 새참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이 즐겁다.
벌써 한껏 배불리 먹고 나무 그늘에 누워 잠깐 낮잠을 청하는 농부의 허리끈이 만족하게 풀어져 있다.
밀베기를 하는 날이다.

마을에 결혼잔치가 벌어졌다.
하루종일 입을 벌리지 못하는 신부는 눈을 갸름히 뜨고 볼이 달아 있는데, 피로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시끌벅적 잔치를 즐긴다.
문짝을 뜯어 음식을 나르는 일꾼의 모자에는 곧 챙겨먹을 요량으로 숟가락 하나가 단단히 꽂혔다.

화면 가득 정말 이상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소가 빠져죽은 웅덩이를 메우느라 바쁘고, 돼지를 잡은 이는 그만 칼을 돼지 배에 찔러버렸다. 어쩔끄나~!
개 두마리가 뼈다귀 하나를 가지고 싸우고 있고 잘 차려입은 이는 돼지들에게 꽃을 뿌려주고 있다.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하나같이 기묘한 동작.
네덜란드의 속담을 그대로 그린 우화란다.
하나하나가 다 뜻이 있고 연결되어 있는 그림이지만 그 뜻을 모르면 정말 이상하기만 한 그림이다.

이게 피터 브뢰겔의 그림들이었다.

성경의 인물들이나 신화속의 이야기들 말고는 왕족의 호화로운 생활이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던 그 시대에, 앞치마를 두르고 검은 빵을 먹는 농부들이 땀을 흘리는 들판에서, 흥겨운 농가의 결혼잔치에서 춤을 추고 일을 하는 그림을 보여준 사람 브뢰겔.
그에게로 와서 비로소 그림은 일상의 모습을 담을 수 있게 되었고 그림 속의 인물은 왕관을 벗어내릴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ㅡ 그가 태어났고 자란 네덜란드의 농촌을 사랑했고 그의 농부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림을 모르면서, 더구이 브뢰겔을 잘 모르면서도 막연하게 무작정 좋았던 연유를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이 앞치마를 입은 아낙과, 농부의 귀에 꽂힌 숟가락을 좋아했던 것이다.
꾸밈없이 그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 그 눈높이를.

귀족들이 생각하는 그런 한가하고 여유로운 자연의 소작인 농부가 아니라, 부지런히 건초를 말리고 밀을 거두어 수확을 하고 양식이 없는 추운 겨울을 두려워하며 사냥을 하는, 그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난하고 소박한 터전, 그 농촌의 사람들말이다.

브뢰겔의 말년은 애석하다.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조국 네덜란드를 짓밟는 스페인의 탄압을 보고야 만다.
죽기 직전, <베들레헴의 영아학살>이라는 제목으로, 아기예수를 찾아 집집마다 뒤지며 아기를 찾는 침략자의 얼굴을, 스페인의 알바공작으로 그려서 보여준다.
치떨리는 그 시대를 그는 그렇게 붓으로 증거하여 남긴다.

유쾌한 우화에 깊은 깨달음을 실어, 웃기며 끄덕이게 했던 따뜻하고 즐거운 브뢰겔.
이 책의 저자는 눈높이를 어린 청소년으로 정했나보다.
친절한 설명이 때로 너무 늘어진다 싶어 귀찮다가 이내 그의 나직나직한 말소리에 귀기울여 따라가다보면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 고개를 갸우뚱 하고 마을의 결혼잔치에 끼어들어 엿보는 브뢰겔이 보인다.

앞으로 나는 브뢰겔의 즐거운 우화에 기꺼이 같이 웃으며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알고나니 더 깊다.
북구의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지면서도 그 눈속에 숨쉬는 사람들의 겨울이야기가 그래서 더 따뜻하고 아름답다.



제목: 춤추는 세상을 껴안은 화가 브뢰겔
지은이 : 노성두
펴낸 곳 : 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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