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
절판되었다는 이 책이 다시 나온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내내 인터넷 책방을 들락거렸다.
바싸마을은 이딸리아 뽀강 옆에 있다.
그 마을의 광장 한중간에는 공산당 읍장 주세뻬 빼뽀네의 읍사무소와 마을회관이 있고 다혈질 신부 돈까밀로의 성당이 마주하고 있다.
빼뽀네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말아서 공고문 한장이라도 붙이면 맞춤범을 다 틀려서 망신당하기 일쑤인데다 늘 인민들의 복지와 위대한 공산당의 정치선전을 위해서 늘 무슨 일인가를 저지른다.
그의 호적수 돈 까밀로 신부.
덩치가 크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예사로 하고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일삼다가 동거중인 예수님한테 혼나고 풀이 죽는 인물이다.
날마다 으르렁거리고 꼬투리를 잡아서 주먹질을 넘나들이하느라 바싸마을은 조용할 날이 없다.
빼뽀네가 몰고 다니는 공산당 부하들이 치는 사고에, 공산당을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돈 까밀로가 그 사고에 빠지지 않고 반격을 하느라 이 마을은 늘 무슨 소동을 일으키고 그것을 해결하느라 법석인다.
종교와 사상의 대립.
두 사람은 서로를 악마라 규정하고 날마다 싸우지만 또 상대가 위험에 처하거나 곤란을 당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사실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믿는 두 사람.
그 얄팍한( ㅜ.ㅜ;;) 사랑의 확인이 끝나자마자 바로 발길질로 이어지지만 ^^;
빼뽀네읍장과 돈 까밀로 신부의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민과 하느님의 선량한 양떼들에 대한 사랑이다.
두 사람은 또한 마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빼뽀네의 아들이 위험에 처하면 주먹을 불사하면서 내달리는 돈 까밀로, 가난한 공산주의자의 아들을 위해 빼뽀네와 싸우는 그.
돈 까밀로 신부가 쫓겨가게 되자 마을 사람들 몰래 부하들을 다 이끌고 구명활동에 나서는 빼뽀네 읍장 (물론 신부가 돌아오자마자 서로 이를 박박 갈면서 다시 싸움질이다).
다혈질에 실수투성이인 신부를 읍장이 신뢰하는 것은 신부의 내면에 누구보다 뜨거운 "인민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고, 천하에 무식하고 미련한 공산주의자 읍장의 불운에 누구보다 분개하는 신부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보다 이웃의 불행에 먼저 가슴 아파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실수투성이의 신부를,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엄하게 타이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성당의 예수님이 있다.
두 사람 뿐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의 하나하나의 모습이 모두 그들처럼 사랑스럽고 애정이 가는 것은 그 작은 마을에 소동을 일으키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들처럼 다 그렇게 귀엽고 순수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 신념과는 별개로 걱정거리가 생기면 신부의 강복을 바라고 신부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남들모르게 먼저 달려와 피하라고 알려주기도 하며, 그들의 가난하고 슬픈 어린 것들을 아파해주는 신부에게 의지한다.
덩치가 크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신부에게 늘 당하면서도 서로를 믿는 그 정들이라니.
종교와 이념을 달리하는 상대와의 공생이라.
문득 한나라당 골수지지자를 내가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그와 우정을 진정으로 나누게 되는 일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글쎄... 나는 돈 까밀로의 사랑도 주제빼 빼뽀네의 신실함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생각해보니 2002년 아주리병사들의 그 열혈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들 역시 빼뽀네의 부하들이고 돈 까밀로의 신도들이었지 않겠는가 ^^
눅눅하고 지루한 장마의 한 가운데
아무 생각없이 행복해지고 따뜻해지고 싶은 분들께 강추 백만개다.
당신들이 이 책의 책장을 읽으면서 빼뽀네의 망치소리를 듣고 돈 까밀로 신부의 주먹질에 정강이를 걷어채이고 화들짝 놀라는 몇 군데서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짓다가 슬쩍 콧물을 훌쩍거리는 순간 그들을 잔잔히 사랑하는 성당의 십자가의 예수 얼굴을 하고 있음을 어느새 깨닫게 될 것이다.
제목 :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지은이 : 조반니노 과레스끼
옮긴이 : 이승수
펴낸 곳 : 서교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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