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아무데나 뒤적거리다 걸리는 쪽을 읽어도 부담없는 책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딱 좋은 것이, 이런 역사나 문화의 뒷얘기나 신화 이야기들인데 오늘 이 책도 그렇다.
사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만 펴들 책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만든 중대하고 결정적이었던 사건의 어처구니 없기까지한 우연과 미친 광기의 순간들을 잡아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3편까지 나와있는데 그 저자가 다르다.
1편은 전기작가로 유명한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와네트, 로맹 롤랑 등의 탁월한 전기이야기로 유명하고 일생을 어떤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몰래 낳아 기르다 죽는 순간에 편지를 보내서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 같은 책이 있다)의 작품이고. 2.3편은 귀도 크노프가 세계 현대사의 굴곡진 순간들에 영원한 감동으로 남은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름에 혹해 샀던 건데 정작 내 마음을 더 잡은 것은 2.3편의 사진속에 담긴 현대사의 암영들이다.
히틀러의 사기극, 아우슈비츠의 비극,무릎꿇은 빌리 브란트(클릭;;), 사이공의 사형집행인 등등 한 순간도 그냥 넘길수 없는 현대사의 날카로운 상처들을 포착한 사진기자들과 그 이야기들이 감동적으로 그려있다.
때로 역사는 문인이나 역사가들의 절절한 호소와 명문으로도 기록되지만 인간의 양심을 꿰뚫는 낡은 흑백사진 한 장으로도 남는다.
유난히 상처와 고통이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가 바로 보여주지 않는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이한열열사를 부둥켜안고 분노에 차 돌아보는 친구.
아버지의 죽음의 의미도 모른채 멍하니 망월동 묘역에 앉아 영정을 잡고 있는 여섯살 상주의 맑고 슬픈 눈동자.
로마병정으로 지칭되던 전경들의 난타와 최루탄 연기속으로 태극기를 휘두르며 절규하던 청년의 젖혀진 얼굴.....
어떤 기막힌 문장으로도 저 한 장의 사진이 주는 호소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 사진의 배경은 1968년 프라하 브라티슬라바의 거리이다.
프라하의 봄은 단 하룻밤 사이에 이 육중한 소련군의 전차앞에서 꺾여버리고 말았다.
무력감과 절망에 빠진 한 남자가 가슴을 열어젖힌 채 탱크의 포신앞에 마주 서서 외치고 있다.
그는 무엇을 절규했던 것일까.
그는 체코의 평범한 노동자였고 아이 넷을 둔 가장이었다.
프라하의 한 남자가 가슴을 열고 침략군에 대해 분노하고 목숨을 내놓았을때 그의 약한 조국은 그로 인해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알았을까. 자신의 그 순간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아마 그는 그런 것을 의식하고 영웅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 그는 자신을 잊고, 이 미친 인간의 행동에, 자기들의 대지를 무차별로 짓밟고 들어오는 그 무시무시한 힘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을 느꼈고 그 다음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 이렇게 역사는 남았다. 그 울분과 절망의 고함을 새기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어느 저녁과 아침은 포연과 죽어가는 인간의 신음소리로 저물고 열린다.
그 순간을 기록하며 인간의 잔인함과 또한 그 잔인함으로도 결코 꺾을 수 없는 숭고한 정신을 기록하는 기자들이 있다.
이런 사진을 많이 갖게 되는 역사는 행복한 역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기지 않고 전하지 않는 역사는 기록할 내일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스런 인간의 광기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며 포연 속을 지나가는 종군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역사는 그대들의 손에서 기록되고 남겨질 것이다.
인간은...그런 발자취를 보고 배우며 발전해왔다.
제목 : 광기와 우연의 역사
지은이 : 1편 스테판 츠바이크
2-3편 귀도 크노프
펴낸 곳 :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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