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해가 저물어버렸네요.
행궁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아 정말 맛있는 그 우렁된장 쌈밥집~;; 행궁 가실 분들께 강추합니다.) 혹시나 밤정경은 어떨까 하여 나왔습니다.
오~
낮에만 다녀서 행궁과 성곽에 조명을 비추는 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멋지지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색의 조명이 참 멋졌는데... 이늠의 사진사가 산채식군가. -_-;
그러고보면 좌포청 비호대들이 날아올라간 궁궐의 밤도 이랬겠지요?
이 누각은 원래 진남루라 불렸는데 임금께서 '신풍루'라 고치셨다네요.
이 이름은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는데 화성을 두고 정조대왕의 새로운 고향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바꾸셨답니다.
장헌세자의 회갑이 되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하셨던 원행에서 정조대왕은 이 신풍루 앞에 친히 쌀을 내어 고장 백성을 먹이시고 노인들에게 죽을 끓여 대접하였는데 그것이 소홀할까 하여 먼저 그 죽을 당신이 직접 젓수셨다 합니다.
알 수록, 들을 수록 당신의 백성을 그토록 아끼셨나 감동스러운 성군이셨네요.
용주사를 나와 다시 수원 행궁으로 갔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장용영 수위의식을 봤어야 하는데, 용주사에서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즉위식을 놓쳤습니다 ㅠㅠ
혹시 장용영 즉위식을 보고 싶은 분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한다니 유념해두세요. 한겨울엔 하지 않습니다.
거중기.
화성을 축성하면서 다산이 만든 거중기랍니다.
그러고보면 주군이나 신하나 서로의 그릇을 알아보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인연일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백성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참 멋집니다.
좌익문 입니다.
휴일이어선지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저번 답사 때는 좌포청의 흔적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서, 월궁한 비호대들이 내란군과 마주친 곳이 여기인지 아닌지 왁자지껄했던 생각이 납니다.
준비해간 캡쳐도 밤씬이라 확인이 어렵고, 결국 행궁의 안내해주시는 분들이 여럿 모여들어 열띤 토론 끝에 이 곳이 아니라는 슬픈 결말을 내주셨지요.
이 원행에서 정조대왕은 어머니의 진찬연을 이 봉수당에서 베풀었습니다.
내빈과 외빈을 가득 모시고 성대히 진찬연을 베풀며 홀로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를 위로하는 임금님.
악공들의 여민락 음악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이것은 드무라고 합니다.
목재로 지어진 조선의 궁궐은 자주 불이 났습니다.
드무는 방화수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화마(火魔)가 드무에 비친 자기 형상을 보고 놀라 도망친다는 척사의 의미도 있습니다.
무엇이 보이나 얼핏 비추어보니, 서시 같은 여인네가 방긋 웃고 있네요.
봉수당 편액입니다.
상서러운 기물과 꽃으로 채운 편액이 참 아름답습니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입니다.
앉아계신 전하께서는 생각보다 보령이 높아 보이십니다. ^^;
임금의 상징인 일월오악도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고
들문을 내리면 바로 넓다란 대청, 중신들이 임금을 뵐 곳이겠지요.
무늬가 참 호사스럽지요?
진찬을 받으시는 어머니 혜경궁께 예를 올리는 정조대왕의 모습입니다.
으;;;
꽃천장 단청에는 언제나 넋을 놓는 소금눈물 -_-;
융건릉에서 보았던 정자각 계단이 생각나지요?
문양이 아주 비슷합니다.
거기서 따오지 않았나 싶어요.
경룡관이라는 이름은 당태종의 궁궐 이름에서 가져온 곳입니다.
누대로 태평성대를 이루고 싶으셨던 임금님...
장락당.
혜경궁 홍씨의 처소였습니다.
편안히 수를 누리시라, 한나라 태후의 거처 장락궁의 이름을 따와 지으셨습니다.
편액이 정말 이쁘지 않은가요?
경복궁 교태전 편액이 생각납니다.
내관의 수종을 받으시는 혜경궁.
연이어지는 복도 천장이 이뻐서 찍어보았습니다.
장락당을 기웃거리다 혜경궁 마마의 진찬상을 보았습니다.
혜경궁 마마의 상에 오른 대추가 얼마, 쌀이 얼마, 그릇이 몇 개며 대수파련과 중수파련 하나하나를 따 일일이 그려 남긴 원행을묘의궤의 그 놀랍도록 치열한 기록이 떠오르네요.
날렵하게 차오르는 지붕선이 어찌 직선의 목재들이 만든 선이라 하겠습니까.
버선코를 살짝 들어올른 것 같지요?
장락당 뒷모습.
앗 뒷담길을 어슬렁거리다가 반차도를 만났습니다.
지난번 답사 때는 없었는데 너무나 반갑네요.
반차도란 궁중의 각종 의식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 행사에 참여한 문무백관의 모습과 일의 순서를 기록한 도표로 순수한 회화라기보다는 정보기록의 일종입니다.
특히 이 정조대왕 화성 행행 반차도는 어머니의 회갑을 기념하여 장헌세자가 묻힌 현륭원을 참배하는 모습을 치밀하게 기록하여 남긴 <원행을묘의궤>에 나오는데 당대 최고 화원인 단원 김홍도의 지휘로 자비대령화원들의 작품입니다.
정조대왕과 어머니 혜경궁, 그리고 두 군주와 행차에 함께 한 중신들의 지위와 이름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수행 병졸과 나인들까지 모두 그렸는데 그들의 움직임이 금방이라도 그림 밖으로 행진해 나갈 것처럼 생생하지요.
옆을 돌아보는 병사, 가마를 끄는 말을 재촉하는 병사, 배후를 돌아보는 이들의 표정이 잡힐 듯 하지요?
두 분 윗전의 자리군요.
장용대장 서유대의 모습입니다.
늠름하고 씩씩한 기상이시군요 ^^
정조대왕의 좌마입니다.
어진 이외에 임금의 형상은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만인지상의 임금이 어찌 무수리, 병졸들과 함께 그 형상을 한 폭에 나란히 놓여지겠습니까.
별감들의 복색이 참 호사스럽지요?
여긴 수랏간 어린 장금이가 선배 나인들에게 구박을 받았던 곳이래요.
우리 <이산, 정조>에도 이 곳을 보여줄까요?
범상치 않은 문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석판은 마침 촬영 중이던 드라마팀 옆으로떼어져 누워있기에 용도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훔.. 저 당초문...
무슨 석판일까 궁금하네요.
임금이 머물러 신하들에게 하교를 내리던 유여택입니다.
드라마 촬영 팀으로 인해 수선스러웠습니다.
복원된 곳이라 하나 그래도 문화재인데, 나인복색의 엑스트라어린처자가 이 방 저 방 건너다니며 휘젓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해지더군요. -_-;
해시계 앙부일굽니다.
장헌세자께서 갇혔던 뒤주를 체험용으로 갖다놓았습니다.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뒤주가 생각보다 굉장히 좁았구나...
스물 여덟의 장부가 들어가서 꼼짝도 못하고 저기 갇혀서 세상을 떠났을 것을 생각하니 참...
한이 되지요... 암요...
헷살은 오후로 기울어 이젠 구경에 지치기도 하려는데
촬영시간을 기다리던 내시 도령들께서 지쳤나봐요. ^^;
뜀뛰기도 하고 마루에 기대 졸기도 하면서 관람객들과 서로 구경 중입니다.
조용조용~
드라마 한 편 찍는 게 참 어렵구나...
여러번 엔지들을 내더군요.
이 더위에 온통 치렁치렁 옷을 감싸고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며 찍는 모습을 보니 애처롭기도 합니다.
화성 행궁 소개를 옮기며 답사기를 마칩니다.
우야튼,
이산 정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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