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솔길 같은 솔숲 너머로 건릉과 이어집니다.
이른 가을날의 청명한 바람이 숲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아산 봉곡사의 오솔길이 생각나는 아름다운 숲이군요.
금천교...
저세상이라 하나 임금이 쉬시는 곳이니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의 궐이겠지요.
궐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입니다.
홍살문 너머로 정자각, 그 너머 능상이 일자로 보입니다.
정갈하고 조용한 숲에 이따금 날아가는 새소리만 들립니다.
현륭원으로 참배를 올 때마다 혼절하듯 통곡하셨다는 정조대왕.
사무치는 그리움이 닿는 그 아득한 길로 당신도 이 참도를 따라 떠나셨지요.
내 백성의 노고를 한 치라도 헛되이 말라,
그들의 땀과 눈물을 무서워 하라.
그토록 두려워 하셨던 임금님.
백성의 부역은 당연한 공역이었을 것을, 조정 중신들의 빗발치는 반대를 무릎쓰고 유례없는 영을 내리시니 화성 축성과 현륭원 조성시 그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을 하루 반나절 품까지 계산하여 내리시고 더위 먹어 지칠까 두려워 하시니 척서제(滌暑劑)까지 내리시던 그 따뜻한 배려.
이 박석 하나하나에 당신을 사랑하던 그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이 배었으리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다시 없을 그 임금을 보내는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정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융릉의 계단석과 아주 많이 닮았지요?
기단석이 조금 더 단순하고 낮을 뿐, 놀랍도록 흡사합니다.
제물을 진설하고 제를 드리는 곳입니다.
정자각에서 건너다 본 건릉 능상.
융릉은 까치발로 짐작이라도 했었는데 건릉은 정말 도무지...
참말로 아득하오 마마..ㅠㅠ
무심한 가을날의 햇살이 능선에 흐르는 것을 가뭇없이 볼 뿐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깡충깡충 하지만 도무지 눈길이 닿지를 못합니다.
그러게 남 만큼도 크지 못한 키를 탓할 밖에요.
대한 정조선황제건릉 효의선황후부좌
더듬어 읽고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습니다.
당신이 소중히 키우고 지키셨던 그 사람들, 규장각의 젊은 교리들, 장용영의 늠름한 병사들, 당신을 보내던 그 날의 마음이 저처럼 애틋하고 서러웠을까요.
김진, 이명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김홍도, 백동수...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들이 바스라진 그 날.
다시는 자신들을 진정으로 안아주고 품어줄 주군이 없다는 그 비통과 때이른 죽음에 대한 분노와 절망.
제가 겪은 슬픔인양 생생하게 떠올라 눈밑이 자꾸 따끔거립니다.
왜 그렇게 일찍 가셨어요...
왕실 누구보다 강건하고 용맹했다는 당신이, 당신의 꿈의 나라 건설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왜 그렇게 서둘러 가셨어요...
그 위대했던 왕이 잠든 곳.
삼가 옷깃을 여미고 아득한 그리움을 고개숙여 전할 뿐입니다.
발길은 쉬이 돌려지지 않고 수랏간까지 돌아보게 되네요.
아쉬운 마음으로...
금천교를 건너면 다시 이 세상...
생전의 위대한 업적과 못다한 꿈을 새기며 돌아나오는 길.
마음은 그리움의 빛깔로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거론된 이름은 김탁환의 소설, <방각본 살인사건>과 <열녀문의 비밀>에 등장하는 정조의 사람들입니다.
09/11/2007 08: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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