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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석양에 홀로서서 2

by 소금눈물 2011. 11. 17.

 

02/05/2004 08:14 pm공개조회수 0 2




자꾸만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풀잎에 잠이 깬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중천에 떴던 해는 뉘엿뉘엿 가라앉아 땅거미가 설풋 지고 있었다.

덜깬 눈을 비비며 목덜미를 훑으려다 철만은 흠칫 놀랐다.
누웠던 자리의 풀잎이 아니라 누군가 강아지풀로 목덜미를 일부러 간지럽혔던 것을 깨달아서였다.

벌떡 일어났을때 쪼그리고 앉아 철만을 들여다보던 그림자도 성큼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면사무소 직원 은숙이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니? 오도바이는 팽개쳐 두고?"

철만은 대꾸도 없이 일어나 앉아 팔에 묻은 풀잎을 툭툭 털었다.
잠깐 잠들었다 생각했는데 누웠던 자리의 풀잎이 그대로 주저앉은 걸로 보아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얘, 너 얼굴에 자국났어."

은숙이 까르르 웃었다.

철만은 얼굴이 빨개졌다.
자기도 몰래 쓱쓱 얼굴을 문질러 보았다.
손바닥으로 더듬어도 볼록 패인 자리가 느껴졌다.

얼마나 바보같아 보였을까.
공연히 화가 나서 철만은 입을 잔뜩 내밀고 벌떡 일어났다.

"얘 너 돌아가는 길이면 나 좀 태워줘라 내동리부터 걸어왔더니 다리아파 죽겠어. 너 깨기 기다리다 한밤중 되겠더라."

" 고장....났어요...."

얼버무리며 돌아서는데

"그럼 어차피 끌고 장터로 가는 길이군. 할수 없지. 같이 가자 뭐."

한번도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데 허물없이 달콩달콩 건네오는 말이 어쩐지 밉지 않았다.

철만은 풀숲에 누워있는 오토바이를 일으켰다.
여전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지만 가지고 가긴 해야했다.

한길에 묶이고도 철만은 별로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철만이 신문배달을 하는 시간은 면사무소 문이 열리지 않는 새벽이었고 한낮에는 은숙이가 밖으로 나돌아다닐 일이 없었다.
이따금 오가는 길에 얼굴을 마주치거나 수금을 하러 가서 얼핏 지나치고는 했어도 은숙이나 철만이나 데면데면, 저 이가 우리동네 사람이구나 할 정도였지 살가운 인사를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한번도 새겨 본 얼굴이 아니었으니 철만이 그녀에게 이렇다 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런 이에게 넉살좋게 말을 풀을 성품도 못되었다.

시큰둥한 철만과는 달리, 은숙은 내내 혼자서 종알종알댔다.

군청에 수리조합관련 무슨 서류를 내고 오는 길이었는데, 내동리를 지나다 보니 내동리 앞 강물에 풀어진 저녁노을이 너무나 고와 생각없이 덥석 버스에서 내렸단다.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노을에 넋을 잃고 보다보니 금새 저녁바람이 불었고, 그때서야 내동리서 돌말까지는 걸어서 거진 한시간 거리나 된다는 걸 깨달았다.
터덜터덜 걷다보니 생길이 익숙치 않은 발바닥은 물집이 잡혔는지 쓰라렸고 지쳐서 지나가는 아무차나 얻어 걸렸으면 좋겠다 싶을 즈음 풀숲에서 정신없이 코를 고는 철만을 만난 거였다.

코를 골았다고?
철만은 얼굴이 화닥 붉어졌다.

바보같이...
주정뱅이도 아니고 대낮에 길바닥에 뻗어 잔것도 한심한데 코까지 골다니...
철만은 갑자기 자신이 한심하고 , 그런 걸 본 은숙이에게 화가 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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