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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만추 7

by 소금눈물 2011. 11. 17.

 

01/28/2004 04:58 pm공개조회수 0 1



큰엄마는 청소를 다 하고 엄마가 끓인 국이 식어갈 때야 돌아왔다.
벽에 걸렸던 엄마의 월남치마를 입고 보푸라기가 잔뜩 핀 낡은 스웨터를 입은 큰엄마는 머리에 축축한 이슬을 달고 있었다.

"새벽부터 어딜 나갔다 오셨어요?"

"아이구 수작굴도 많이 변했다야. 서울 살먼서 질 아순 게 목구멍이 꽉 멕히는 공기여. 참말 오랜만이 와 봉게 살겄다. "

"수작골까지 올라갔다 오셨어요?"

"이. 근디 버섯공장이 움써지고 거게 양어장이 생겼대?"

" 그게 언젠데요. 근디 큰엄마는 여기 버섯공장이 있던 건 어띃케 아셨어요? 여기 사신 것두 아니잖어요?"

"너는 몰르겄지만 한참 전이 느이 사춘오빠가 거기서 일헌 적이 있단다"

"네에?"

"어이구 근 석이 한창때 얼마나 속을 씩이든지. 멫 달을 종적을 감춰서 애를 태우드니 글쎄 여기엘 가 있었다는 거여.
은산은 못 가구 작은집이 가서 놀았다드만 알구 봉게 늬 엄니 아부지두 몰르게 수작굴 버섯공장이 쳐박혀서 보냈댜.
거긴 또 으띃게 알었는지. 베룩두 낯짝이 있다구 즈의 작은집이는 못 들어오구 거기서 한철 보냈나벼.
아이구 내 새끼지만 철읎이 나댈때는...... 아이구 힘들다 "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어깨를 두드리던 큰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멀거니 앉아 있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된 서리 내리는 상강 때꺼정 뭬 할라구 혼자 남었나.
딴 눔들 올 때 같이 오구 갈 때 하냥 가지 시절 지나 혼자 남응게 펴두 시름읎구 이쁘두 않다.
사람이나 뭐나 늦게까지 가지 못허구 혼자 남으믄 애잔허기만 허지 이쁘들 안혀"

눈길을 따라가보니 담장 밑에 핀 봉숭아 한 포기였다.
손 부지런한 엄마가 오며가며 심심풀이로 가꾸는 꽃밭이었는데 보라색 과꽃 사이로 봉숭아 꽃 대 하나가 기운 없이 서 있었다.

갑자기 울적해진 큰엄마 때문에 덩달아 나도 할 말을 잃고 먹먹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새벽 전화가 생각났다.
그런데 어쩐지 그 얘기를 하면 안될 것 같았다.
호철오빠와 엄마가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도 모르고 말을 하자면 엄마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결에 와 있었는지 엄마가 나를 보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출근 안 헐텨? 여덟시 이십 분 차 놓치문 지각이라메"

화들짝 정신이 들어 일어서는데 귓전으로 들리는 엄마 목소리에 더 놀라고 말았다..

"식전버텀 어딜 갔다 오셨대유. 베랑 아는 냥반두 읎을 틴디. 눌은밥 만들라구 솥이다 지었잉게 들어오세유"

가시 없이 눅눅해진 말에 큰엄마도 별 말 없이 고분고분 따라 일어섰다.

"동네가 다 비었드만"

" 원체 많이들 떠났슈. 나가문 꽃방석이 기대리구 있는 중 아는지"

" 그러까. 나가서 잘만 살문 다행이구"

두런두런 주고 받으며 방 문을 여는 두 사람 어깨가 비슷했다.
뒤태로 보면 엄마나 큰 엄마나 닮은 데가 많았다.
같이 늙어가는 노인이라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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