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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發墨 - 다모 . 강명석.

by 소금눈물 2011. 11. 16.

02/24/2007 10:28 am공개조회수 1 2










물론 특정 드라마의 매니아층 시청자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그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폐인’이라는 말만 해도 ‘다모’ 이전에 MBC ‘네멋대로 해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다모’가 이전의 매니아 드라마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이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에서는 최초로 매니아층 시청자의 힘이 일반 시청자의 힘을 ‘눌러버린’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모’가 또다른 매니아 드라마인 ‘네멋대로 해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다. 두 작품은 모두 상당수의 ‘폐인’을 가지고 있고, 그 활동력에 있어서도 기존의 시청자층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네멋대로 해라’의 그 세계는 그들 내부에서 소화되는 것이었고, 대중과 언론매체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에 가까웠으며, ‘폐인’ 시청자들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네멋대로 해라’가 매니아 드라마라는 것은 드라마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드라마의 화제성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즉, ‘네멋 폐인’이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일반 시청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거나 하지는 않았고, ‘네멋대로 해라’에 대한 팬들의 반응과 언론의 평가역시 차분한 편이었으며, 그 관심역시 크지는 않았다. ‘네멋 폐인’이란 단어는 팬 커뮤니티와 드라마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이었고, 작품이 집중적으로 거론되는 곳은 ‘씨네 21’이나 ‘FILM 2.0'같은 매체였으며, 스포츠 신문에서는 ’네멋대로 해라‘가 매니아 층이 많은 드라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전부였었다. ’네멋대로 해라‘는 ’네멋 폐인‘들을 위한 작은 파티같은 드라마였던 것이다.

폐인들, 세상을 흔들다



그러나 ‘다모’는 매니아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 그 자체가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 드라마의 시작부터 스포츠 신문(스포츠 신문을 자꾸 거론하는 이유는 스포츠 신문이 비록 노골적이고 과장이 섞인다 하더라도 최대한 대중의 관심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은 ‘다모 폐인’들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웹 사이트에서는 숱한 다모 패러디물로 넘쳐나기 시작했으며, ‘다모’의 대사들은 유행어가 되기 시작했다. ‘다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다모 폐인’들이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숱한 현상들은 곧바로 스포츠 신문의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그것은 ‘다모’의 스타였던 하지원과 결합해 ‘다모폐인 모여!’같은 헤드라인으로 스포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즉, ‘다모’는 매니아 드라마로 시작해 대중적인 ‘인기’ 드라마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 드라마’이기 보다는 ‘매니아 드라마’로 남을 수 있을만큼 끝까지 드라마의 여론 주도층이 매니아였던 드라마였다. ‘네멋 폐인’들과 일반 시청자가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면, ‘다모 폐인’들은 그 경계가 모호했고, ‘다모’라는 작품의 매력과 ‘다모 폐인’들의 열성적인 활동은 계속해서 ‘다모폐인’의 숫자를 늘려갔다. ‘다모 폐인’을 ‘폐인’이라 하기엔 드라마를 보는 상당수의 시청자가 ‘폐인’에 속했고, 그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이것은 처음에 하나의 점으로 시작된 것이 갈수록 점점 퍼지면서 큰 원이 된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폐인들이 폐인으로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중심에 나선 것이다. ‘다모’의 홈페이지 게시수를 100만건을 넘기자는 식의 다모폐인들의 운동아닌 운동은 인터넷 게시판상의 ‘1등놀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폐인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총 14회가 방영된 드라마에서 100만건이 넘는 게시수를 기록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 드라마의 팬들의 숫자와 열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모든 작품에서 열성팬들은 일반적인 팬들보다 많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들에겐 일반 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활동력이 있고, 이들의 숫자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는순간 그들은 말그대로 거대한 점이 되어버리면서 자신들의 세계를 일반 대중과 언론매체에 퍼뜨리기 시작한다. ‘다모’는 시청자들이 정말로 ‘發墨’(이에 대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모 폐인’들에게 물어볼 것)을 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는 매니아 드라마가 더 이상 매니아 드라마에 그치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동시에, 드라마의 수익성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매니아가 많은 작품은 그에 관한 부대상품으로 뒤떨어지는 대중성을 메꾸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이정도로 ‘폐인’ 시청자가 많은 드라마라면 기획에 따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을 올릴수도 있고, 동시에 드라마로 방송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꿀수도 있다. 물론 MBC는 ‘네멋대로 해라’부터 새로운 드라마를 만든다는 이미지를 얻어나갔지만, 그것에 마지막 점을 찍은 것은 ‘다모’였다. ‘다모 폐인’현상은 단지 매니아가 많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기획자체를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시청률이 꼭 높지 않아도 매니아가 ‘정말로’ 많은 드라마를 만든다면 매니아들의 호응뿐만 아니라 실제 수익과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매체의 관심도 함께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MBC, 새로운 시대를 열다


그렇다면,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다모’가 그 ‘發墨’의 근본이 된 열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 이유는 각기 다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모’라는 작품이 지금까지의 시대극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모’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선 ‘다모’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MBC 시대극의 흐름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대로, MBC 시대극은 1999년의 ‘허준’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사이에는 ‘홍국영’같은 실패작들도 있었지만, ‘허준’으로부터 ‘상도’ ‘어사 박문수’, 그리고 ‘다모’와 ‘대장금’으로 이어지는 MBC의 시대극은 기존의 ‘조선왕조 오백년’ 류의 왕실 중심의 시대극과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사극이 왕실 중심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왕실의 권력투쟁과는 별개로 자신의 영역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었다. 또한 이전의 시대극들이 도덕적인 가치판단 보다는 권력투쟁의 승리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던데 비해 이 작품들은 뚜렷하게 말하고자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허준’에서 허준의 목표는 참된 의술의 길을 가는 것이었지 어의가 되는 것이 아니었고, ‘어사 박문수’의 박문수의 목표는 백성을 위한 정치였지 자신의 영달이 아니었다. 이렇게 드라마의 중심인물과 시각의 변화는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기존의 시대극들이 권력투쟁을 중심으로 누가 이기고 지는가, 즉 등장인물간의 대립과 그 결과에 드라마의 중심이 맞춰져 있었던 것과 달리 ‘허준’ 이후의 MBC 시대극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실천해나가는 캐릭터의 고난극복과 성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며, 그만큼 드라마의 중심은 캐릭터로 옮겨가게 되었다. 시청자들을 몰입케하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그 캐릭터가 자신의 이상을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과정자체가 시청자들을 열광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SBS ‘여인천하’와 KBS ‘장희빈’, 그리고 SBS '왕의 여자‘는 결국 시대와 자세한 설정의 차이만 다를뿐 악녀가 끼어든 권력투쟁이라는 것에는 변화가 없고, 캐릭터는 전형적이었다. 악녀자리에 장희빈대신 정난정이나 개시를 넣어도 그 차이는 크지 않았던 것이고, 그만큼 배우의 역량에 많은 것이 달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허준’이후의 MBC 시대극은 그 드라마를 끌어갈 캐릭터의 매력이 더욱 중요하게 요구되었고, 이것은 중심 스토리이상으로 각각의 세세한 에피소드의 짜임새가 중요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캐릭터를 다듬기 위해서는 그만큼 세세한 설정이 필요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로 캐릭터의 매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권력투쟁이 중심이 된 시대극은 인물간의 대결이 중심에 놓였기에 중전의 임신만으로도 한참동안 드라마를 끌 수 있었지만,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는 계속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제시하면서 캐릭터의 활약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드라마가 보다 디테일해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상당한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MBC 시대극들은 ‘허준’으로부터 그것이 드라마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다모’가 등장하기 전까지 포도청에 포도대장말고 종사관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청자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러나 ‘다모’를 만들려면 최소한 종사관이라는 직책에 대해 이야기해야하고, 포도청의 세부 조직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왕실 중심의 시대극은 판서와 정승, 도승지정도만 등장해서 권력에 관한 ‘큰 일’만 이야기하면 됐지만 포도청이나 궁인의 세계에 대해서 다룰때는 에피소드 자체가 소소한 소재로부터 나오고, 그만큼 디테일한 조사가 필요하다. 기존의 시대극들이 스토리에 필요한 지식을 조사하는 정도였다면, '허준‘ 이후의 MBC 시대극들은 쌓이고 쌓인 지식들이 에피소드의 소재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런 디테일한 내용과 더불어 비쥬얼역시 기존의 시대극과 차별화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세계를 파고 드는데 비쥬얼이라고 엉성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종사관의 위엄을 보여줘야 하는데 포도청 간부들의 옷이 예전 ‘대하사극’의 그들처럼 ‘알록달록’하기만 할 수는 없고, 음식만드는 궁인들의 드라마를 찍는데 매번 비슷비슷한 음식만 올려놓을수는 없다. 당연히 옷 만드는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음식은 ‘진짜’ 궁중음식을 보여줘야 한다. ‘왕의 여자’에는 중전과 광해군이 먹는 주안상이 참 ‘소박’하고 그 종류도 약과와 술 한병정도가 올라가면 그만이었지만, ‘대장금’에서는 왕의 야식 하나에도 수많은 궁녀들이 붙어 정해진 메뉴대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개념의 변화는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일으켰고, 이는 동시에 드라마의 ‘깊이’를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각각의 시대극이 하나의 ‘진짜 세계’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MBC의 새로운 시대극 들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현대극 못지않게 드라마속의 인물들에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들 드라마속의 사람과 배경이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 사람들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짜 살아있는 세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캐릭터와 뚜렷한 가치관, 그리고 전문지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비쥬얼이 결합되면서 시대극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의 재현에서 벗어났다. 즉, ‘허준’이후의 MBC 시대극은 만드는 사람의 가치관이 강하게 개입되어 과거를 ‘해석’했고, 동시에 그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데 충실함으로서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몰입하며 볼 수 있는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블록버스터 시대극


‘다모’는 이런 MBC 시대극의 흐름속에서 나올 수 있는 작품이었다. MBC는 ‘다모’이전에도 인물을 중심으로한 시대극을 꾸준히 만들어왔고, 그러는사이 디테일한 묘사에 강점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것은 인물을 중심으로 강한 몰입을 할 수 있는 시대극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물론 여기에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세명의 강렬한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다모’의 방향은 MBC 시대극의 기본적인 흐름속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노하우는 충분히 쌓였고, 매번 ‘허준’이나 ‘상도’같은 스타일, 즉 이병훈 PD에게만 의존하는 시대극만 만들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번 ‘전폭적인’ 지원을 기울여서 시대극을 만든다면 뭔가 정말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MBC측에서도 ‘다모’를 기획하면서 시청률이 40-50% 나오는 초특급 작품이 나오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다모’는 ‘야인시대’의 시청자층을 흡수하기 힘들었고, 웹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마케팅과 HD라는 A/V적인 요소의 강조는 다분히 젊은층을 타겟으로한 것이었다. 그리고 연출과 각본은 모두 신참내기 PD와 작가였다. MBC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모’에 있어서 MBC에게 중요했던 것은 엄청난 시청률보다는 ‘새로운’ 시대극이었고, 그것을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얻어내는 것이었던 듯 싶다.


이 부분에서 ‘다모’는 이병훈 PD의 작품과는 또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시대극에 접근하면서 MBC 시대극의 스타일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감각적인 영상이나 과감한 와이어 액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극본의 구성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허준’이후 ‘다모’ 이전까지의 MBC 시대극들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속에서 한 인물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면서 인물에 대한 몰입을 강하게 한 반면, 호흡은 상당히 천천히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캐릭터의 면면을 드러내다보니 드라마의 흐름은 현대극에 비해 조금 천천히 진행되는 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허준’에서 허준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동안에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니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커졌지만 뭔가 보는 사람의 ‘호흡’을 가쁘게할 역동적인 힘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모’는 이것을 이전의 시대극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스토리 전개로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몰입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허준’으로 대표되는 MBC 시대극들은 일종의 롤플레잉 게임에 가까웠다. 이는 ‘대장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캐릭터들은 갈수록 성장하고, 에피소드는 다양했으며, 그만큼 다양한 ‘이벤트’가 있었다. 그러나 ‘다모’는 아케이드성이 강한 어드벤쳐 게임에 가까웠다. 캐릭터는 이미 어느정도 완성된 상태이고, 그 캐릭터들이 하나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캐릭터를 드러내며, 그 캐릭터들이 중심 사건을 해결하면서 각자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MBC 시대극들이 긴 호흡을 가지고 오랜세월에 걸쳐 스토리를 완성시켜나가는 기존의 대하사극에서 관점과 스타일을 바꾼 것이었다면, ‘다모’는 시대극보다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시나리오에 가까운 극본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드라마는 꽤 있었다. 작년만해도 SBS ‘대망’이 있었다. 그러나 ‘대망’과 ‘다모’는 스토리 구성에 있어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주었다. ‘대망’은 하나의 통합된 스토리보다는 두 형제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었고, 20부작 남짓한 작품의 분량안에 너무나 긴 시간과 많은 인물을 다루려 했었다. 즉, 미니시리즈였으나 ‘대하 사극’의 스타일을 얹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좋았지만 캐릭터의 몰입에는 무리가 있었고(물론 여기에는 몇몇 배우들의 연기력의 문제도 있었지만), 두 형제간의 대결을 속도감있게 밀어붙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다모’는 몰입도가 강한 캐릭터를 만든 뒤, 그들을 사주전사건으로 시작되는 역모에 집어넣어 각각의 캐릭터를 끊임없이 부딪치게 만들었다. 모든 인물들은 드라마 초반에 캐릭터를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캐릭터를 가진채 사건안에서 자신들의 캐릭터는 물론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갔다. ‘다모’에서 드라마 초반 캐릭터와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생각해보라. ‘다모’는 각각의 캐릭터를 따로 형성하기 보다는 몇 개의 사건안에서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와 관계를 설명해나갔다.


채옥(하지원)의 다모로서의 재능은 살인사건의 수사에서 단번에 드러나고, 황보윤(이서진)과 채옥의 관계, 그리고 조세욱(박영규)과 그의 아들 조치오간의 복잡한 관계는 격구 사건 하나로 모두 정리된다. 격구사건에서 채옥과 조치오의 갈등으로인해 이에 개입하는 황보윤의 채옥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고, 황보윤과 조치오의 라이벌 구도, 그리고 조세욱과 조치오의 관계가 한번에 표면화된다. 이후 등장하는 황보윤과 채옥의 어린시절이 이들의 깊은 애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것은 그에 앞서 이 사건을 통해 서로의 감정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음을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과 어린시절부터 사랑하고, 함께 무공을 수련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그에 앞서 이미 이들은 자신들의 캐릭터와 서로의 관계를 분명히 했기에 그것이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들의 진짜 과거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축지(이문식)나 부장 이원해(권오중)같은 조연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망’의 경우, 주인공을 배반하는 서구(홍경인)라는 캐릭터는 스토리와는 별개로 자신이 원래 비천한 것을 무기로 살아왔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로 나아가 사람들에게 구박받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 그의 그런 모습은 스토리속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다모’의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그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몇가지 특징을 보여줘 캐릭터를 각인시킨뒤, 스토리에 따라 그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더했다. 마축지가 언제 자신의 신분이 가진 처지를 따로 한탄하면서 시청자에게 동정을 구했던가. 마축지는 처음에는 단순히 ‘발빠른’ 도적으로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채옥과 잠시 맞서면서 타박녀(노현희)가 옆에 있어도 채옥의 몸에 눈을 못떼는 ‘경박한’ 성격을 드러내며, 채옥과 함께 일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신분’에 대한 ‘한’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원해는 또 어땠는가. 1,2회에서는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첫 번째 살인사건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채옥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것 같았던 그는 사건이 진행되면 될 수록 그 속에서 심지굳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어느덧 장성백(김민준)과 겨루고, 황보윤에게도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인물이 된다. 드라마가 절반에 이르기 이전 이미 캐릭터들은 자기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 방법은 포도청내에서의 에피소드, 혹은 그 이후의 역모의 스토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람이 살아있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은 드라마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했고, 시청자들은 스토리의 속도감과 캐릭터의 생명력에 압도되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토리 자체가 극적인데 그 안의 캐릭터는 생명력을 얻어나가고, 그들은 무거운 스토리속에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몰입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캐릭터에 정이가고, 그 캐릭터들이 점점더 무거운 운명속으로 빠지는데 거기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할 생각을 가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캐릭터와 스토리의 조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모’가 8부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시나리오의 짜임새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무거운 ‘숙명’으로 통합해서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 정말 ‘發墨’할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힘이 주위에 급격한 속도로 퍼지는 것이야말로 ‘다모’가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었고, 그것은 살아있는 캐릭터에 ’무거운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요소를 솜씨있게 집어넣는 것이었다. 채옥과 황보윤, 혹은 채옥과 장성백과의 사랑이 가슴아픈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그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채옥‘과 ’황보윤‘과 ’장성백‘이었기 때문이다. 신분의 차이, 혹은 적과의 사랑이란 요소는 그 자체만으로 보았을때는 지극히 전형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적인 스토리속에서 그것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용되었을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대사가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들간의 숙명적인 사랑이 겹치고, 스토리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서로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드러난 상태에서 이런 대사가 나올때 그것은 시청자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인데 그들이 끊임없이 사건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드러내며 자신들의 운명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나간다. 사건은 급박하고, 그속에서 캐릭터는 거기서 자꾸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시청자의 선택은 둘중 하나다. 떠나든가, 그냥 폐인의 세계에 빠지든가.


특히 8부까지 ‘다모’의 극본은 각각의 캐릭터간 배치가 절묘했다. 채옥과 황보윤, 장성백은 조선시대에 드물게 활동적인 여성, 그리고 전혀 다른 성장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두 남자라는 설정을 통해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채옥은 강인하고 똑똑하되 신분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과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의 특성으로 인해 유약하지 않으면서도 ‘지켜주고 싶은’ 여성의 캐릭터를 만들었고, 황보윤은 늘 곁에 있으나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고, 장성백은 위험하나 행복해질 수 있는(남매지간이라는 것만 모른다면) 남자의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 관계는 채옥이 누굴 선택하든 각각의 생각에 따라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것이었고, 채옥이 점차 성백에 가까워질수록 이 긴장관계는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어느쪽으로 가든 비극은 막을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비극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관계를 형성하니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뜯을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각 캐릭터의 편에 서기도 했다. 어찌보면 이들은 연애물의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비극으로 치닫는 한 스토리안에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묘사된 캐릭터 속에 드러나자 그 무겁고 거침없는 힘이 ‘다모 폐인’들을 압도해버린 것이다.


이는 조연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조연 캐릭터의 배치를 보라. 그들은 각각의 캐릭터도 뚜렷했지만, 역모라는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안에서 각각 전혀 다른 성격과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세욱의 딸 난희는 채옥과 정반대에 가까운 성격, 즉 외향적으로는 활동적이지 않으나 황보윤에 대한 접근만큼은 채옥 이상으로 강한 집념을 가지는 인물이었고, 조치오는 황보윤과 장성백의 대립이 전면에 떠오르기전 황보윤에게 몇가지 고난을 부여하며 악역아닌 악역을 담당했다. 또한 마축지와 백부장은 심각한 스토리속에서 좀더 유머스런 표현으로 스토리의 완급을 조절하는 캐릭터를 담당했다. 물론 이런 캐릭터별 역할은 다른 드라마에도 있는 것이지만, ‘다모’는 8부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각각의 인물들을 하나의 커다란 사건속에 밀어넣으며 그들의 개인적인 성격과 스토리의 무게감을 따로놀게 하지 않아 강렬한 스토리의 힘과 캐릭터의 매력을 동시에 유지시켜 나갔다. 아무리 마축지가 경박하게 사람들을 웃겨도, 백부장이 복지부동의 자세로 사람을 웃긴다해도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스토리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었고, 각자 살아야할 치열한 이유가 있는 존재였다. 아무리 그들의 본성이 가볍다해도 사건 자체가 그들을 그저 웃기게만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떴다 마축지, 죽인다 이원해


‘다모’의 중심을 지켜주는 것이 세명의 주연이었다면, ‘다모’의 진중한 분위기와 끊임없는 에너지를 유지시켜주었던 것은 이런 조연 캐릭터들이 어느순간 내쏟는 에너지였다. 처음에는 단지 한가지 역할만을 하는줄 알았던 조연이 사건이 진행되면서 자신과 타인의 생명에 대한 진지한 애착을 보일때, 특히 악역노릇만 했던 조치오가 장성백일당과의 대결이라는 ‘목숨을 건’ 스토리라인속에서 아버지와의 억눌린 애증을 푸는 순간 그의 매력은 극대화되고, 시청자들은 대결할 수 밖에 없는 두 캐릭터중 어느쪽의 손을 들어줘야할지 갈등하게 된다. 캐릭터에게 각자의 삶의 방식을 부여하고,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에 풀어놓음으로서 캐릭터가 부딪히면서 내는 갈등의 힘을 거의 끝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이는 조연중 특히 이원해의 캐릭터에서 빛을 발했다. ‘다모’의 중심은 분명히 세명의 남녀 주인공이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캐릭터의 창조라는 면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이원해였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일종의 조커였고, 가장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였다. 다른 인물들은 자신에게 포커스가 집중되는 순간 감정을 쏟아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찬반이 명확히 갈렸다. 이를테면 장성백을 살리기위해 자신이 대신 잡히는 채옥이나, 역모세력의 속임수에 의해 다시 그 세력에 가담하고, 채옥으로 위장된 타박녀를 죽이는 장성백의 모습은 각본상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그 인물의 한계이기도 했으며,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캐릭터의 사고방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원해라는 캐릭터는 모든 인물들 사이에서 한발짝 떨어진 듯,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자신의 모든 실력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다모’에서 포도청의 모든 인물들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가장 입체성을 띈 캐릭터중 한명이 되었다. 그는 평소에는 거칠지만 채옥의 목숨을 살리기위해 동분서주하고, 그러면서도 채옥의 복귀에 한번 씩 웃는 것만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속 정 깊은 인물이며, 마축지와 백부장과도 편하게 놀 수 있지만 황보윤과 조세욱등과 진지한 대화를 해도 그 무게감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일인자는 아니었지만 ‘믿을만한 2인자’의 캐릭터를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었고, 이것은 그가 8부에서 장성백과 겨룰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가 황보윤이나 장성백보다는 실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예측할 수 없는 진중함과 언제나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냉정함은 때론 채옥 때문에 흔들리는 황보윤(장성백과 채옥을 찾는 12-13부의 전개에서 이원해와 황보윤의 대립을 생각해보라. ‘주인공’으로서는 황보윤이 그렇게 판단해야 했지만, 흔들리는 황보윤의 모습을 눈치채고 냉정한 충고를 한 것은 이원해였다)이상의 신뢰감을 주기도 했다.


‘다모’의 8부 예고편에서 이원해와 장성백의 대결을 크게 강조될 수 있었던 것도 이원해의 캐릭터가 가진 이런식의 독특함때문이었다. 주인공이 될정도로 강하지는 못하지만, 그들과는 겨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시청자들에게 준다. 그러니 사이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중심 스토리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 아직은 여물지 않았던 장성백과 황보윤의 대립을 대신해 이원해가 그 갈증을 풀어줄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독특한 2인자, 혹은 조연의 위치와 주연못지않은 무게감을 동시에 가진 이 캐릭터는 가벼움과 무거움,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질수도 있었던 ‘다모’의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적어도 8부까지의 구성에 있어서 ‘다모’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어떻게 조화하고, 하나의 비극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캐릭터를 등장시켜야할지에 대해 드라마로서는 거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 작품이었던 것이다.


다만 아쉬운점이라면 병택(신승환)의 캐릭터정도가 겉돌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인물들이 스토리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던데 반해, 병택의 경우는 드라마 초반에는 다른 인물들처럼 ‘살아야할 이유’를 갖고 있기 보다는 채옥을 코믹하게 쫓아다니며 오히려 채옥을 곤경에 빠뜨리는 매우 전형적인 코믹 캐릭터의 역할을 했고(물론 한 여자 죽자사자 쫓아다니는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한동안 너무 코믹하게만 다뤄졌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중후반에서 뛰어난 암기력을 발휘할때도 스토리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보다는 다른 이들과 별개로 무과 시험에 이르러서야 그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그의 재능이 드러났다. 또한 이후 조세욱이 그를 따로 불러 사무라이들에 의해 죽은 나병 환자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 그의 캐릭터는 포도청 사람들이나 역모 사건과 잘 융화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사람’ 그 자체로 중요했던 반면, 그는 그의 캐릭터중 몇가지 측면만이 부각된 것이다. 만약 그가 스토리속에서 ‘진심’을 제대로 보여주었다면 채옥에게 ‘진지하게’ 구애를 하며 애낳고 잘살자는 장면은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이 슬픈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채옥의 처지 때문이지, 병택의 ‘진심’이 제대로 드러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캐릭터들이 모두 발전하고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상황파악은 전혀 하지 못한채 그저 채옥에게 결혼하자고 떼나 쓰는 캐릭터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밤의 매력


그러나,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다모’는 적어도 8부까지는 HD영상이나 사전제작제같은 드러나는 부분보다, 오히려 극본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할정도로 ‘대단한’ 극본을 보여주었다. 사전제작제는 그런 극본을 나오게 하는 기본 토대가 되었고, HD영상은 이 극본에서 필수 전제가 되어야할 ‘살아있는’ 영상을 만드는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과연 한국 드라마중에 이렇게 큰 스케일의 작품속에 이정도의 매끄러운 전개와 캐릭터의 생명력을 동시에 유지한 작품이 몇이나 더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고 극본이 HD영상과 스케일 큰 액션이라는 비쥬얼적인 측면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모’가 8부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시청자를 몰아붙인 것은 결국 시나리오의 거침없는 힘에서 나온 것이지만, 1회부터 이 드라마에 ‘운명적인 힘’을 부여한 것은 시나리오보다는 영상의 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MBC 시대극이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전의 시대극들을 통해 실제 조선시대, 혹은 실제로 느껴질법한 섬세한 정성으로 조선시대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새롭게 인식토록 했던 MBC 미술/소품팀은 HD 영상과 사전 제작제를 통해 보다 ‘진짜 세계’에 접근하는 비쥬얼을 창조해냈다. 이것은 단지 화려한 액션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언행이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모든 시각적인 토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일례로 ‘다모’는 낮보다 밤에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인상적인 씬들이 많았다. 이것은 와이어 액션의 경우 밤에 그 티를 안내기 쉬운 까닭도 있지만, HD영상이 가진 장점 때문이기도 했다. 밤에도 뚜렷한 색감을 보여주는 HD영상은 밤이 가진 무게감속에서도 등장인물들간의 섬세한 움직임을 제대로 표현했고(DVD로 나온다면 한번 확인해보라. 특히 몇부인지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마을의 전경이 드러난가운데 포도청 사람들이 말을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그 색감의 차이가 정확히 드러난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무게를 더욱 잘 표현했다. 밤의 무거운 공기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갈등하고, 대결을 통해 갈등을 증폭하거나 해소시킨다. 진짜처럼, 혹은 진짜세계의 진중함을 만드는데 있어 ‘다모’의 비쥬얼은 그 ‘검은 기운’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 작품에서 왜 포도청 인물들이 기존의 포도청하면 떠오르는 ‘알록달록’한 옷대신 검은색 옷을 입었겠는가. 그것은 MBC 의상팀의 디테일한 의상 색지정이 HD영상과 만나면서 그 특유의 빛깔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색이 촌스러운 검은색이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무거운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면서, 검은색은 ‘다모’의 진중함을 가장 제대로 살려내는 색깔이 된다. 황보윤의 이마를 가린 검은색 천과 그 위의 황금색 장식이 보여주는 진중함과 화려함의 조화는 HD영상과 의상팀의 세심한 손길이 결합된 결과이자, ‘다모’를 대표하는 이미지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밤에 꽃잎이 떨어지는 씬은 상상만으로는 무척 멋있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유치해질 수 있다. ‘다모’는 그것을 밤의 어두운 분위기속에서 보여주고, HD영상으로 그 씬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을 유지하면서 ‘다모’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연출을 맡은 이재규 PD의 스타일역시 8부까지 ‘다모’의 거침없는 힘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이재규 PD의 연출 스타일은 액션신등에서 지나칠정도로 여러 영상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와이어 액션씬등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간단하게 말한다면 날라다니면서 ‘칼싸움’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는) 대신 지나치게 액션씬을 과용한다는 점이 단점인데, 적어도 초반에는 그것이 상당부분 장점으로 작용됐다. 우선 초반에 등장한 스토리의 후반에 해당하는 채옥과 장성백의 결투는 드라마의 초반 아직 비중이 커질 수 없었던 장성백의 존재감을 분명케 했고, 마축지의 도주 장면에서 보인 독특한 영상기법이나 계속 이어지는 와이어 액션등은 이 드라마가 사극이기는 하지만 매우 현대적인 감각의 드라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줌으로서 이 드라마를 ‘누가’ 봐야할지에 대해 정확히 보여주었다. 캐릭터의 이입도는 크고, 비쥬얼은 ‘진짜’이며, 감각은 현대적이다. 젊은층이 빠져들만한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작품 초반 계속되는 대결씬은 등장인물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특히 황보윤과 채옥이 밤의 빗속에서 결투를 하는 장면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빗속을 날아다니는 남녀의 결투는 자칫잘못하면 과장스럽게 보일수도 있었지만, 두 캐릭터간의 관계가 결투로 이입되면서 그것은 두 인물간의 갈등을 더욱 촉발시켰고, 무협이라는 장르의 특성은 이재규 PD의 화려하고 과장된 연출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졌다. 밤, 비가 오고, 채옥과 황보윤이 대결을 한뒤 서로 슬프게 바라보는 사이 난희가 그것을 본다. 비쥬얼이 만들어내는 무게감만으로도 시청자가 캐릭터에 이입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던 것이다. 비록 채옥과 장성백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에서 채옥의 등장시 갑작스런 ‘다리찢기’같은 것은 비쥬얼을 위해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한 장면이라고 생각되지만(대체 왜 배 위에 올라가면서 다리를 찢어야 하는지 지금도 알수가 없다), 캐릭터의 갈등을 하나씩 쌓아가는 작품의 초반부에 폭발적인 액션씬과 화려한 영상은 등장인물간의 갈등과 감정의 폭발을 쉽게 드러낼 수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비극의 힘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모두 모여 절정으로 치달은 것이 바로 8부였다. 8부에서 이 드라마는 캐릭터간의 대립이 격렬한 비쥬얼로 표현되면서 캐릭터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고, 동시에 가장 스펙터클한 비쥬얼을 함께 보여줄 수 있었다. 역모 세력과 포도청 군사들이 대립하면서 누구한쪽은 죽어야 했고, 각각의 캐릭터는 모두 절실하게 살아야할 이유가 있었다. 장성백과 채옥은 물론이고 이원해와 마축지, 그리고 조치오도 모두 살아야할 이유가 있고, 그만큼 그들의 대결은 격렬했으며, 그것은 그동안 쌓아온 갈등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대결에 이르기 위해 어떤 과정을 쌓아왔는지 생각해보라. 채옥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장성백에 대한 호감으로 인해 갈등하기 시작했고, 조치오는 공을 세우는 것은 물론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겨야 했다. 그리고 포도청 인물들 못지 않게 노각출(권용운)을 비롯한 장성백 일당의 캐릭터들도 이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냈고, 반드시 살아야할 이유도 제시됐다. 이 상황에서 과연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누군가 죽어야하는 대결은 피할 수 없고, 그만큼 그들의 대결은 격렬해지며, 시청자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다모’는 가장 격렬하게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부분에서 비극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심 캐릭터간의 대결이 있었다. 캐릭터가 스토리의 힘에 의해 격렬하게 부딪치게 되면서 조치오와 장성백, 이원해와 장성백, 그리고 채옥과 장성백의 대결은 그 자체로 결과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재규 PD는 이에 부응하듯 ‘다모’중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액션들로 캐릭터간의 감정을 끝까지 폭발시켰다. 이원해와 장성백은 하늘에서, 조치오와 장성백은 물에서, 그리고 채옥과 장성백의 대결은 좁은 방에서 각각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액션은 공중의 빠르고 화려한 대결(물론 공중에 뜬채 계속 칼만 휘둘러서 ‘검법’을 썼다기보다는 그냥 칼을 휘두르기만 하는것처럼 보였다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부터 물속에서 벌어지는 생사를 건 힘찬 칼질이 거듭되는 결투, 그리고 좁은 방에서 총대신 칼을 서로 겨눈채 홍콩 느와르처럼 액션보다는 캐릭터간의 무거운 대화가 중심에 있는 결투등 갖가지 방식이 사용되었다. 거기에 각종 함정과 폭파씬까지 등장하면서 포도청 군사들의 죽음까지 처리하며 비극성을 높였으니, 8부는 극본과 연출 양쪽에서 거의 ‘끝’까지 갔던 것이었다.


불행을 운명으로 타고난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국 피할 수 없는 대결과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일단락지어졌고, 이제는 각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은채 서로 부딪히며 무엇인가 분명한 선택을 보여주어야 했다. 가장 큰 대결이 벌어졌지만 주요 인물들간의 관계는 더욱 꼬였고, 그것은 점점 그들을 비극속으로 몰아넣었다. 모든 캐릭터들이 생명력을 부여받은 이 순간, 더 이상 ‘죽어줄’ 비중적은 캐릭터도 없는 상황에서(조치오는 그나마 죽어도 마음이 덜 아픈 캐릭터 아니었던가)과연 이 비극의 하강곡선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것은 ‘다모’의 가장 큰 숙제였고, 이것을 해결하면 ‘다모’는 정말 ‘최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모’는 8부 이후에서 ‘놀랍게도’ 작품의 장점을 모조리 단점으로 바꿔버리면서 후반부를 스스로 무너뜨려버린다. 이것이 쫓기는 제작일정으로 인해 후반부는 사전제작제를 하지 못한 탓인지는 알 수 없어도, 8부 이후의 ‘다모’는 그전까지의 ‘다모’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8부까지 여러 문제들을 쌓아놨던 ‘다모’의 시나리오가 그것을 풀어나가야하는 과정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데 있다. 그 전까지의 ‘다모’는 분명히 캐릭터와 스토리가 함께 움직이고, 스토리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후반부의 ‘다모’는 스토리의 짜임새가 아닌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그것은 마치 잘못된 사랑의 순서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처음 사랑할때는 그 사람의 진짜 좋은 점을 보고 사랑하게 되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되고, 그 사람의 단점마저도 가리게 된다. 물론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어느 정도는 그럴 필요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또 이것을 ‘다모’와 ‘다모 폐인’의 관계에 대입해본다면 다모 폐인들이 ‘다모’의 캐릭터에 관해 변치않는 애정을 보이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그들은 ‘다모’속의 ‘사람’들 하나하나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모 폐인은 그렇다치더라도 ‘다모’의 제작진마저 그래서는 안됐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단점까지 눈감아 준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 사람을 이용하거나,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 되서는 안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제작진들이 팬층을 믿고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다모’의 후반부는 시청자들을 사랑에 빠뜨린 그 캐릭터들로 드라마를 ‘쉽게’ 끌고 나갔다.


사랑하니까


우선 첫 번째 문제는 ‘다모’의 후반부가 풀어야할 숙제를 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후반부의 시작이 황보윤과 채옥의 멜로 모드를 위해 낭비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궁에 들어가는 채옥과, 역시 모든걸 버린채 채옥을 살리려는 황보윤의 모습은 그 자체로는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 2회분의 이야기를 통해 얻은 것은 결국 채옥과 황보윤간의 감정확인과, 황보윤과 조세욱의 복직이다. 채옥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문제를 안게 되었지만 무공에 있어 전혀 손실없이 살아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다모’의 진행에 있어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채옥을 구하러 간 황보윤역시 난희와의 문제가 얽히기는 하지만 그가 임무수행을 하거나 이후 채옥과의 관계를 엮어나가는 것에 있어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없다(이후 채옥과 황보윤의 사이가 갈라지게 되는 것은 채옥의 ‘선택’이지 다른 이유가 아니지 않는가). 결국 이 스토리라인의 목적은 황보윤과 조세욱을 복직 시키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위해 14부중 거의 2부에 달하는 분량을 낭비한 것은 이후 이 드라마의 진행이 숨쉴틈도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온갖 설정들이 그대로 묻혀버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궁중 호위무사(박준규)의 활약은 실질적으로 그것으로 끝났고, 병택의 캐릭터는 겉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갖추며 자신의 매력을 유지했어야했던 장성백의 캐릭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모’ 중반까지의 장성백은 그가 하는 역모가 진짜 ‘나쁜’ 역모일지라도 어느정도는 이해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의 장성백은 역모라 할지라도 실제로 포도청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채옥과 갈등관계를 엮은 것도 아니었으며, 개인의 매력은 한껏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역모의 실체가 어떻건간에,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포도청 인물들과 대결을 한 이후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역모의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장성백은 황보윤과 채옥을 공격할 수 밖에 없을뿐만 아니라, 채옥은 그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는 어쨌건 조치오를 죽인 상황이다. 이때 그의 행동이 ‘대업’을 위한 ‘어쩔수 없는’ 행동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8부이후 착실하게 역모의 정당성을 쌓아나갔어야 했다. 그래야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 때문에 칼을 들이대는 채옥과 장성백의 관계가 계속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채옥과 황보윤의 감정교류를 보여주는 사이 장성백의 캐릭터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역모세력은 11부까지 이것이 정말 정당성이 있는 역모인지, 혹은 장성백을 이용하기만하는 악한 세력의 모임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나쁜 계책이란 계책은 전부 쓰는 전형적인 모사형의 악역 최달평의 존재는 장성백이 그것을 알건 모르건간에 역모세력을 ‘악’으로 규정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 이용하는 사람과, 그것을 용인하는 보스가 있는 세력이 어찌 정의로운 혁명을 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겠는가(음모나 꾸미는 정필준 대감과 카리스마 넘치는 왕을 비교해보라. 어느쪽이 ‘의로운’ 보스로 보이는가?). 그리고 결과적으로 장성백은 최달평이 노각출의 딸까지 죽인것도 모른채 그에 이용당해 채옥과 황보윤까지 모두 죽게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물론 장성백은 몰랐다고 하지만, 이것은 현명하고 냉정했던(자신이 호감을 가진 여성까지도 대의를 위해 이용한) 장성백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을뿐만 아니라 결국 그가 황보윤, 혹은 이원해보다도 더 상황판단을 못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이야기의 중심을 황보윤쪽으로 옮겨가도록 만들었다. 그가 아무리 무공이 출중하고, 멋진 모습으로 채옥과 사랑에 빠진다해도 그는 이미 ‘이용당하는’ 캐릭터가 되었고, 모두 살 수도 있었던 드라마를 모두 죽는 이야기로 바꾸는, 사고뭉치가 된 것이다.


‘다모’가 8부 이후 곧바로 보여줬어야 했던 것은 이미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는 채옥과 황보윤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장성백의 주장대로 카리스마적인 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제도상의 부조리로인해 핍박받는 백성들의 모습과,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장성백의 모습이었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이후 장성백을 위해 황보윤을 배신한(이후 이야기하겠지만 이게 배신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채옥의 행동이 좀더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장성백은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했고, 대신 황보윤과 채옥은 목숨을 걸고 서로를 구하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채옥은 평생을 함께했고, 서로의 목숨마저 걸고 사랑한 남자를 버리고 역모세력에 이용이나 당하는 남자에게 가버렸다. 물론 실제로는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드라마에서 이해못할 사랑이야기가 어디있겠는가. 특히 ‘다모’처럼 모든 캐릭터의 행동이 스토리속에서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나는 작품이라면 더더욱 ‘사랑할 수 있는 남자‘로서 장성백의 캐릭터에 대한 타당성을 쌓아나갔어야 했다.


이것은 곧바로 연쇄작용을 일으켜 11-12부에서 스토리의 힘이 사라져 버리고, 그전까지 쌓은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힘겹게 드라마를 끌고가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부분에서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드라마의 디테일한 상황설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모’가 이전의 MBC 시대극과는 다른점중 하나는, 이 작품이 이병훈 PD의 작품과는 달리 디테일한 전문 지식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초반에 채옥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조선시대의 법의학적 지식을 보여준다거나, 포도청의 조직등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등이 드러나긴 했지만, 이후 사주전의 제조방법이나 수사에 있어서 매우 과학적인 접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다모’의 원작이 되는 동명의 만화가 역모의 이야기는 후반부에 이르러 등장하고, 그전까지는 조선시대의 다모가 보여주는 매우 디테일한 ‘과학수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음을 생각하면 정반대에 가까운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베테랑 PD와 작가에 비해 데이터 베이스와 그 응용에서 떨어지는 신참 PD와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수도 있지만, 동시에 ‘다모’같은 작품에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스토리전개가 워낙 빠르고, 사건의 중심에는 인물간의 격렬한 부딪힘이 있기에 그런 세세한 설명까지 곁들이지 않아도 드라마를 재밌게 이끌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준’같은 작품이야 워낙 차분한 호흡에 의학지식을 이용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필요했지만, ‘다모’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다모’에 필요한 것은 캐릭터간의 대결을 만들어내는 여러 상황들의 디테일한 설정들이었다. 즉, 어떤식으로 역모의 움직임을 알아내고, 또 어떤식으로 반격을 시작하는가하는 그런 계책들 말이다. 적어도 8부까지 이런 계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역모세력에서 포도청의 훈련대장과 조세욱, 황보윤을 모두 처리하는 과정은 그 사건 자체로는 전형적인 뒤집어 씌우기의 모습을 띄고 있었으나 그 앞에 훈련대장이 의심받을 수 있는 여러 단서를 조금씩 제시하고, 그 결말이 훈련대장의 자살로 끝나는 것이었기에 스토리의 흐름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장성백에게 이용당한뒤 장성백에 대한 호감과 배신감, 그리고 자신의 의무사이에서 갈등하는 채옥의 모습은 어땠는가. ‘다모’의 전반부는 하나의 큰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놓았고, 그만큼 사건은 복잡하고 개개인의 감정의 대립은 커져갔다.


그러나, ‘다모’의 11-12부를 생각해보라. 이 부분은 그동안 수세에 몰리던 포도청이 반대로 장성백 일당에게 역공을 취하고, 노각출이 죽으며, 채옥이 장성백에게로 마음을 돌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주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채옥이 장성백을 곤경에 빠뜨리는 계책은 이전과 비교해 너무나 간단했다. 채옥이 장성백의 여동생이라며 산적인채 활동을 하자, 정말로 장성백이 채옥의 앞으로 와서 곤경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장성백이 채옥 때문에 이성을 잃고 채옥을 찾아나선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장성백이 누구인가. 그전까지 그는 포도청의 정규군사를 몰살시키고, 채옥을 철저하게 이용하기까지한 지략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단지 채옥의 거짓말에 속아 사지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럴려면 채옥측의 군사가 최소한 지형의 유리함이라도 가지고 있던가, 아니면 뭔가 장성백을 혹하게 만들 그럴듯한 속임수라도 더 있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이런 설정상의 디테일함이 사라지면서 장성백이 채옥에게 이렇듯 쉽게 속는 이유는 딱 하나가 된다. 즉, 장성백이 채옥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것이었다면 전반부의 스토리는 무엇이고, 또 시청자들은 갑자기 달라진 전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만약 이 부분에서 스토리의 조악함을 느끼기전에 채옥과 장성백의 대립에 조마조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 스토리 자체의 완성도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 빠진 인물이 8부까지 그토록 자신의 마음을 때렸던 채옥과 장성백이라는 ‘사람’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가깝고, 이유가 필요없는 것이다. 물론 '다모‘를 정말 좋아한다면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만드는쪽에서 그렇게 ’대충‘ 넘어갈수는 없는 것이다. 스토리속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발전시키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캐릭터를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 전반부였다면, ’다모‘의 후반부는 완성된 캐릭터와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시청자들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 혹은 이미 이루어진 등장인물들의 감정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즉, 채옥과 장성백이 아무리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벌이더라도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고,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선택을 해야했던 것이다. 그래도 채옥이와 장성백이니까 모두 받아들이든가, 갑자기 이상한 드라마에 의심하거나 보지 않거나 말이다. 게다가 채옥측의 군사가 장성백을 포위하자마자 아무런 설명없이 곧바로 나타나는 황보윤의 군사는 우연의 남발이라고 밖에 할수 없었다. 서로가 모든 준비를 마친채 목숨을 걸고 부딪친 8부와 비교해 이 대결이 얼마나 엉성한 것인지 비교해보라. 여기서는 사실상 최고의 빅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황보윤과 장성백의 제대로된 첫 번째 대결이 있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이원해와 장성백의 대결보다도 긴장감이 떨어졌다. 8부와는 달리 대결자체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그만큼 그들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오직 두명의 ’멋진남자‘들간의 대결이었다. 그전까지 쌓아온 캐릭터의 매력에 의해 그것은 어느정도의 힘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캐릭터의 갈등과 액션을 극대화시키던 이전의 ’다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동굴에서 변심하다


그리고 이는 이어지는 동굴씬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장성백은 역모의 정당성을 제대로 얻지도 못했고, 채옥은 황보윤과 서로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줬으며, 심지어 장성백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채옥은 동굴에 있는동안 장성백의 말에 의해 순식간에 장성백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채옥은 장성백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뻔한 방법이다. 이전까지 채옥과 장성백, 채옥과 황보윤이 서로의 마음을 교류하는 것은 스토리속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쌓아나가는 것이었지 오직 그들만의 사랑을 위해 따로 스토리를 허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채옥과 장성백은 계속 그런 감정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대결의 갈등구도를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여러차례의 ‘제대로된’ 대결을 통해 둘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다모’는 이 부분에서 그전까지 지켜온 스토리를 통한 캐릭터의 발전을 놔둔채, 둘을 곤란한 상황에 함께 빠뜨리는 것으로 둘간의 감정을 모두 정리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서로 싸우던 남녀가 남자주인공이 불치병에 빠지면서 화해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과 얼마나 다른가. 한데 몰아넣고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사랑이 끝날 것이라면, 황보윤은 이미 자신의 목숨을 걸고 채옥을 구할 때, 혹은 그에 앞서 채옥을 안을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만큼 장성백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물론 말은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극본으로서는 타당성이 크게 떨어진다. 또 장성백과 채옥의 사이를 가로막는 역모에 대한 설명은 또 어땠는가. 백성을 위한 혁명이라는 장성백의 말에 채옥은 곧바로 마음이 흔들리고, 마치 모든 오해를 풀었다는 듯 장성백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다. 물론 채옥역시 신분의 차별을 겪었기에 그것이 채옥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움직일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 몇마디가 채옥이 평생동안 쌓아왔던 가치관과 자신이 가장 아끼던 사람들을 배신하게끔 만들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채옥이 역모세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장성백이 의외로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고, 그 안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 정도이다. 반면 장성백은 그 ‘역모’를 위해 채옥의 곁에 있던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마저 기만했다. 그러나 채옥은 ‘극단적인 상황’과 자신이 장성백에게 마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쉽게 장성백에게로 가버린다. 8부 이후로 꾸준히, 그리고 섬세하게 진행했어야할 이야기를 동굴씬 하나로 처리하려니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채옥이 장성백의 말에 동의하는 이유는? 사랑하니까. 그리고 다모의 팬이 이 부분에서 가슴아파한다면 그 이유는? 역시 채옥과 장성백을 사랑하니까.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들이 무엇을 하건 가슴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그전까지의 캐릭터가 타당성이 있었다고 해서 그가 하는 행동이 모두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채옥의 선택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 부분에서 ‘다모’의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채옥을 잠시나마 ‘악역’으로 만드는 스토리나 다름없었다. 이 장면에서 채옥은 더 이상 자신의 사랑과 의무를 현명하게 조율하는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일 뿐이다. 만약 그녀가 8부 이전의 채옥과 ‘같은’ 캐릭터였다면, 그녀는 아예 장성백을 따라가거나, 혹은 자결을 했을법한 인물이었다. 수없이 많은 포도청의 군사를 죽이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남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남자가 거의 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채옥은 그 순간 포도청을 ‘배신’하고 스스로 인질이 되어 장성백을 놔주도록 만든다. 여기까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야하니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 다음의 채옥의 모습은 어땠는가. 그녀는 스스로 책임을 지려하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쫓아가며 황보윤이 자신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도록 만들어 자신을 나쁜여자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 순간 한없이 ‘약한’ 모습으로 황보윤측에 가게 되고, 황보윤은 결국 그녀를 풀어주고 장성백에게 가도록 한다. 그녀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나라의 안전을 떠나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자신의 목숨도 지켜준 수백의 포도청 군사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


채옥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니까 그랬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상황을 놓고 봤을때 그것은 사랑을 ‘핑계’로 무책임한 행동을 한것일 뿐이다. 사랑을 한다면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든가, 아니면 책임을 지든가 둘중 하나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만약 이것이 채옥의 문제가 아니라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연애담이라고 생각해보라. 근 20년간 자신에게 사랑을 쏟은 남자를 차는 것도 모자라, 그 남자는 물론 그 남자와 자신에게 관련된 모든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은채 남자에게 다시 돌아와 잘못했다며 우는 여자기 있다 치자. 물론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하니 용서해줄 것이다. 하지만 적나라하게 얘기한다면, 그 이야기를 아는 다른 사람들은 그 여자를 ‘나쁜년’이라고 할 것이다. 남들에게 피해까지 준 주제에 약한척까지 한다고 말이다. 이것과 채옥의 이야기가 얼마나 다른가. 결국 황보윤은 채옥에게 마음이 흔들려 다시는 보지 말자며 채옥을 장성백에게 보내고, 장성백에게 갈 수 없음을 알게된 채옥은 그런 행동을 하고서도 황보윤에게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 결국 이 스토리를 통해 장성백은 역모 세력에게 이용만 당하는 ‘바보’가 되었고, 채옥은 남에게 피해나 끼치는 약한 여자가 되었으며(정말 여기서의 채옥이 황보윤의 복직을 위해 목숨을 걸던 용기를 가진 그 채옥이 맞는가?), 오직 황보윤만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면서도 자기 사랑에 대한 희생을 감수하는 멋진 캐릭터가 되었다.


특히 황보윤이 일과 사랑을 최대한 함께 가져가려하고, 장성백이 어쨌건 채옥을 베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뒤에 있는 산채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고 했던 것과 달리 채옥은 두 남자의 결정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약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어떤 남자보다 용기있고 당당했으며, 자신의 목숨마저 버릴줄 알았던 여성이 순식간에 두 남자들로부터 ‘선택’받아야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 장성백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가 채옥으로 위장된 타박녀를 죽이는 과정은 이 캐릭터의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결정타였다. 그가 채옥인줄 알고 죽였다면 그는 자신의 생명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베어버린 남자가 된 것이고, 채옥이 아닌 것을 알고 죽였다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 하나쯤은 ‘쉽게’ 죽이는 인물이 된 것이다. 아이 하나의 죽음에 울부짖던 그가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앞뒤가 맞는 것인가. 산채 사람들에게 등떠밀려서? 그것 때문에 사람생명 하나 제대로 못지킬 사람이라면 그전에 그가 보여준 사람에 대한 애정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캐릭터의 설정은 거창하게 해놓고 후반에 장성백을 산채로 돌아가게 해야한다는 이유로 설정을 깨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이것은 디테일한 에피소드의 아이디어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까지 장성백에 대해 어떤 호의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부분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서라기보다는 그 행동을 한 사람이 ‘장성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속에서 자연스럽게 매력을 발산했던 캐릭터가 어느순간부터 그 인물이라는 이유로 모든 행동이 용인되는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문전처리 미숙


그러니 이후의 진행이 허겁지겁 모든 스토리를 끝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14부라는 분량이 모든 스토리를 담아내기에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그전에 ‘다모’의 후반부가 놓여진 문제를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한채 전에 잘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계속 소비하면서 그들의 감정만을 보여주고, 스토리는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8부까지 역모세력의 우세속에 서로의 감정을 풀어놓았다면, 그 다음은 그와 균형이 맞는 흐름을 가지고 역모세력의 토벌을 보여주며 모든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다모’의 후반부는 등장인물들간의 감정을 계속 확인시켜주는 과정만을 반복하다가 처리해야할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14부에서 거의 모두 해결하면서 등장인물을 모두 죽이는 결론을 맺게 되었다. 8부까지가 정말 ’發墨‘을 보여주며 비극으로 치닫는 스토리의 강렬함이 캐릭터를 몰아붙이고, 그로인해 시청자들까지도 흡수했다면, 이후의 드라마는 더 이상 그 ’묵‘을 제대로 퍼뜨리지 못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소비하는 것에 머물렀다. 8부까지 지나면서 이미 채옥과 황보윤, 장성백의 관계는 절정에 올랐고, 이미 이들에 정이 들어버린 시청자들은 이들의 행동을 상당부분 용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드라마는 ’다모 폐인‘의 세력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드라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강력했던 매력은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이런 극본의 문제와 함께 연출의 문제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토리속에서 캐릭터의 매력이 극대화될때는 어느정도 과장된 연출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토리의 강렬한 힘이 사라지면서 연출은 지나치게 캐릭터의 행동을 과장하는 것이 되었다. 이를테면 노각출이 죽는 장면같은 것이다. 노각출의 죽음은 여러대의 화살을 맞으며 매우 오랜시간동안 비극적으로 연출되는데, 이와같은 연출은 장성백이 조치오를 죽일때와 채옥이 궁중무사들에게 당할 때 비슷한 방법으로 연출된 바가 있다. 그러나 앞의 두 씬은 그것이 캐릭터의 비중과 사건의 심각성과 맞물려 상당한 에너지를 발휘했다. 조치오의 죽음은 장성백이 갑자기 잔인하게 변한다는 점에서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할수도 있지만 작품 전체에서 가장 화려했던 전투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강한 캐릭터의 결말을 짓는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었다. 또한 채옥이 궁중무사에게 공격당하는 것 역시 궁중무사의 무공과 궁중무사들이 위험인물을 처리하는 어떤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얻을 수 있었고, 더불어 채옥정도의 비중을 가진 인물이 쓰러져간다는 점에서도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노각출은 다르다. 물론 그는 살아야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죽을 정도의 비중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딸아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뒤로는 장성백에게 충성한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캐릭터의 발전이 없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스토리의 중심은 채옥 - 장성백 - 황보윤의 관계에 집중이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각출의 죽음을 전면에 부상하며 그의 죽음을 비극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과잉 연출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노각출의 죽음은 비극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죽음이 화살을 계속 맞아가며 오랫동안 비춰질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왜 그가 거기서 갑자기 그토록 비극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가. 그러기엔 그가 그전까지 쌓아온 ‘살아야할 이유’도 간단했고, 그만큼 다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것은 죽음 자체에 대한 과장이고, 과장을 통해 스토리의 흐름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을 울게 만들고자 하는 연출이다. 어쨌건 캐릭터 하나가 전장에서 죽으니 슬퍼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공들여 쌓은 캐릭터에 대한 ‘예우’였다면, 타박녀의 죽음역시 그와 같은 비중으로 처리했어야 했을 것이다. 노각출의 죽음은 긴장관계가 강하지 못한 전투씬에서 특정인물의 죽음을 통해 슬픔을 강조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


또 타박녀가 채옥과 함께 떠나는 마축지를 보며 땅에 주저앉아 털썩 주저앉는 장면은 어떤가. 이 장면에서 타박녀의 모습은 마축지와 채옥이 떠난뒤 풀샷으로 멀리서 잡히며 털썩 주저앉아 우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구도상으로는 상당히 간접적으로 타박녀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나칠정도로 친절하고 감정 과잉된 연출이다. 이 장면에 앞서 타박녀는 마축지에게 여러 이유를 대며 아픔을 꾹 참고 마축지를 채옥과 함께 보내도록 한다. 타박녀는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마축지에게 일종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타박녀가 마축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얼마나 조마조마해하는지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제야 사람답게 살게된 마축지와 타박녀의 입장이나 그들의 좋은 관계가 앞에서 충분히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규 PD는 여기서 기어코 타박녀의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그것도 통곡하는 모습을 말이다. 이것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사실은 이렇게 슬픈 부분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울리려면 아예 처음부터 타박녀를 통곡하게 만들었어야 하고, 간접적으로 그 슬픔을 표현하려고 했다면 끝까지 간접적으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물론 타박녀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간접적으로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본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 장면에서 슬퍼해야한다는 강요를 받은 것에 가깝게 된다(그리고 아무리 본심이 아니라도 타박녀가 그렇게 차분하게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과장된 연출은 계속 이어지는 결투씬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캐릭터의 감정이 충돌하는 순간에는 얼마든지 결투가 ‘폭발적’이어도 상관없었고, 와이어 액션으로 큰 스케일을 보여주어도 되었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에 극의 진행 대부분을 의존하게 되면서, 과장된 액션씬들은 대결의 형태나 인물간의 대립관계에 상관없이 계속 현란한 검술대결만을 반복했다. 황보윤과 장성백 둘중 하나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대결은 이전처럼 계속 같은 스타일의 대결만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의 대결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연출상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황보윤과 장성백의 검술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많은데, ‘다모’는 둘이 서로 다른 스승밑에서 배웠음을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들 각각의 특징이나 필살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설정을 했다면 최소한 시청자들이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둘간의 검술의 차이를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어딘가 모자라


또한 연출의 아쉬움을 하나 더 이야기한다면, 지나칠정도로 많이 사용된 카메라워크와 몇가지 영상 기법들이다. ‘다모’의 액션씬에서 화면은 고정된채 화면속의 인물들의 액션과 그에 이어지는 편집만으로 이어지는 컷들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정확히 세보지는 못했지만 ‘다모’의 액션씬의 상당수는 카메라를 심하게 이동시키거나, 혹은 특수 기법을 사용해 현란하고 빠른 영상을 계속 고수했다(특히 11-12부의 전투 장면을 살펴볼것). 물론 그것은 영상을 화려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액션씬의 효과는 정확한 완급조절과 철저한 인물의 동선계산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그런 기법들은 영상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부분에서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감을 잃거나 너무 현란한 영상으로 인해 오히려 액션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일례로 이런식의 액션을 가장 제대로 찍은 작품중 하나인 ‘무사’를 생각해보라. 그 작품은 대부분의 액션씬이 별다른 영상기법없이 짜임새있는 편집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출자의 생각에서는 현대적인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만들려고 한 듯 했지만 그게 도가 지나쳐 산만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음악의 문제에 있어도 이런 ‘현대적 감각’의 사용여부는 군데군데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는데, 우선 다모처럼 진중하게 나아가는 작품에서 갑자기 일반적인 트랜디 드라마에나 쓰일법한 ‘걸어서 하늘까지’류의 록기타 리프진행을 보여주는 음악을 썼다는 점이다. 물론 이게 신나기는 하지만 ‘다모’는 신나는 것 외에도 비쥬얼에 있어 트랜디 드라마의 가벼움을 넘어서는 ‘품격’을 갖춘 작품이었고, 동시에 비극으로 치닫는 무거운 작품이기도 했다. 이런 작품에 경쾌하기만한, 그리고 전형적이기까지한 곡이 드라마의 엔딩으로 쓰인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최소한 더욱 무겁고 파워풀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반대로 페이지가 부른 러브테마는 ‘단심가’는 일반적인 발라드에 동양적인 분위기를 첨가했는데, 사랑을 강조하는 후반부의 전개를 생각한다면 옳은 선택일수도 있겠지만 강렬한 스토리라인으로 드라마를 이끈 전반부를 생각하면 너무 청승맞은 것 아닌가 싶다.


또한 빼어난 비쥬얼에 비해 사운드 녹음에 있어서도 약간 아쉽다. 물론 대체적으로 준수한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어쩔 수 없이 효과음을 따로 더빙할 수 밖에 없었던 검술대결에서의 효과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채옥과 마축지가 산채 사람들과 함께 천렵을 할때 흐르는 물소리가 더빙된 티가 확실히 나서 영상의 생생함을 조금 깨뜨리는 부분같은 경우는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좀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나 싶다.

I love you, But I can't agree about your everything.


물론 그렇다해도 후반부 스토리의 붕괴를 제외한다면 ‘다모’는 전체적으로 뛰어난 드라마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영상과 소품은 가히 TV 사극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연출은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현대적인 감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특히 극본에 있어 전반부의 경우는 축약만 가능하다면 영화로서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정말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연기는 어떠했는가. 작품의 진중한 분위기에 걸맞는 분위기를 가진 인물들이 캐스팅되었고, 이들은 자신의 연기력에서 거의 베스트를 보여주었다. 비록 김민준의 경우 감정의 변화에 상관없이 일정한 톤만을 보여줬고, 아무리 조용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설정되었다지만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른 이들에 비해 명확한 대사전달이 되지 않은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는 외모만으로도 장성백이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했고, 이서진은 자신의 안정된 목소리 톤이 사극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증명했다. 또한 하지원은 갑자기 멜로‘만’으로 빠져버린 후반부에 연약한 여자로서의 연기톤을 맞추는데 애를 먹은 듯 하지만(이건 극본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을 소화하는 것은 연기자의 책임이니), 현재 한국에서 이런 ‘센’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외에는 좀처럼 대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다모’의 후반부는 더더욱 아쉬워진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모든 것이 제대로 준비되었고, 그전까지 작품은 최고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며,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그냥 ‘소수의 드라마’로 놔두지 않을만큼 강력한 팬층도 형성되었다. ‘다모’는 정말로 한국의 드라마가 블록버스터 급의 스토리를 제대로 소화하면서도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순간, 완성도와 대중의 반응이 함께 폭발하려 했던 그 순간 ‘다모’는 그 ‘묵’이 다해버렸고, 제작진은 그 부족한 힘을 사람들을 열광시킨 캐릭터의 힘을 조금씩 소진시키는 것으로 대신해버렸다. 사람들은 ‘다모’와 ‘사랑’에 빠졌었다. 그러나 거기엔 정말로 사랑‘만’ 남아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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