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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봄밤

by 소금눈물 2011. 11. 16.

봄밤

03/27/2005 10:59 pm공개조회수 1 2




















아씨.

마당의 달빛이 곱습니다.
산수유 노란 꽃이 달빛에 툭툭 터져 희디 흰 달빛을 제 것으로 물들이고 있는 봄밤입니다.
그만 나와보셔요.
시나브로 여위어가는 아씨 , 또 애꿎은 바느질로 손가락을 뚫으시면서 또 그러십니까.


독한 세월이 벌써 두 해가 넘어갑니다.
누구나 꽃밭만 디뎌걷다 가는 이 생 아니고,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든 그늘이고 바람이고 어찌 없겠나이까마는 그 속을 이년이 압지요. 아씨의 마른 설움을 이년이 다 압지요.
생각하면 기막히고 절통한 일이라, 살아 계실 때도 그 숱한 밤을 촛불 키워가며 바느질을 하시더니, 그리 애틋하게 지은 옷을 한번 입은 모습도 못 보시고 철철이 애꿎은 비단만 錦(금),綾(능),緞(단),羅(라),紗(사),絹(견),紬(주).. 청홍 비단을 골라 만지시고 손수 푸새를 넣으시고.. 아씨 그 손질이 어떠했던가요.
비단을 마르실 때는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드시던 분이, 저고리 동정을 달 즈음엔 수시로 손끝을 찔리면서 고개가 떨어지던 그 마음이 어찌 기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분 성품을 모르지 않으시면서, 그 마음 간 데를 모르시지 않으시면서 주인을 만날 기약도 없는 비단옷을 지으시고 혼자서 설워지던 그 마음....

그 몸을 덮혀드리고 싶어서 시작한 바느질은 아니지요.
아마도, 드릴 것은 천상 그 뿐이었을, 정을 못받아 가난하고 외로운 아씨를, 그 기나긴 달빛들이 지은 옷들이었겠지요. 무심하게 결 고운 그 비단 만지다 섬섬옥수 얼마나 찔리고 상하셨을지. 설렘이 반이요 한숨이 또 반이었을 그 두루마기들...

생각하면 무정하고 모진 어른이십니다.
까짓, 그렇게 맵게 구실 게 무어있습니까.
아무리 면천, 승차를 한들 다모계집이 올라봤자 삼정승 육판서를 바깥으로 둘 것도 아니고, 역난을 잡으시고 선전관에 제수되신 분이 그 지체에 그 아이를 아낙으로 맞지도 못하실 것을요.
정을 주었다 하나, 살다 보면 그까짓 정이 무슨 대숩니까. 그저 살맞대고 자식 둔 인륜보다 더 앞설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합디다.
정히나 못 베실 마음이거든, 아씨마음이나 지우고 가실 것이지...
모진 양반.....

그만 하셔요.
육례를 갖춰 보낸 낭군도 아니시고, 그만 하시면 사람 도리는 다 했습니다.
이제 그만 잊으셔야지요. 잊으셔야 그분도 편해지실것 아니겠습니까.
아니할 말로, 아 거기서 그렇게 죽고 못살던 이들 이제 다 만나서 이생것 다 잊고 잘 지낼텐데, 아씨 한숨이 무슨 덕이겠습니까.

아이고...

달빛이 그새 다 저물겠습니다.
저 꽃이 그에 지기 전에 좀 돌아보세요.
꽃이 꽃이라커늘, 보이지 못하고 시들고 마는 것이 무슨 뜻이 있어 오고갔다 하겠습니까.

아씨, 제발요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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