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아..
나 편지 잘 못쓴다.
나 검시기록 같은 거, 좌포청 포졸들 인사기록 같은거, 병법서..그런거 내게 물어봐라..그럼 나는 한 자도 안 틀리고 얼마든지 네게 읊어줄 수 있어..너는 모르지. 내가 얼마나...그런 거 잘 아는지..그거 나는 자신있다..그..죽은 황보종사관보다 더 잘 할 자신있다.
근데..편지는 참 못쓰겠다..처음 붓을 잡고 한참을 뱅뱅거리고..무비사 담장을 두번이나 돌다 왔다.. 하고 싶은 말들은 목구멍 까지 쌓였는데..차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마음이 가는대로...그냥 생각나는 대로..네게 쓴다..처음이니..네게 처음으로 쓰는 글이니...그냥 웃어줘라....종사관께 이르지 말고, 네 오라비께도 보이지 말고...
요즘 며칠은 좌포청 쪽은 조용한 듯 하다. 일전에 이부장과 난희아씨가 어딜 다녀오고 내내 이상하게 조용하다. 아버지 발걸음조차 나직해졌어. 엊저녁 하시는 말씀이 곧 좌포장이 바뀔듯 하다더라..
이젠 좌포청에 가도 알만한 얼굴도 많지 않을 듯 하다.
하긴 네가 없으니 자주 가지도 않는다. 그 망할놈의 이부장과 백부장이 나만 보면 못잡아 먹어서 난리다. 너는 어찌 그런 고약한 이들하고 잘도 지냈는지 참으로 신통하다. 역시 옥이구나.
불쌍하고 가여운 옥아.
네가 내 마음만 받았으면 이리 될 일이 아니었지.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때문에 네가 내 맘을 받을 수 없었다 생각하니 아버지를 보면 밥을 먹다가도 원통하고 짜증이 난다. 나는 비록, 종사관처럼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고 이부장처럼 칼을 잘 쓰지도 못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갖고 있는 재산이..좀 된다.
네가 말만 했으면 얼마든지 예쁜 노리개도 가락지도 한성에서 젤 좋은 걸로 해 줄 수도 있었다. 쓰지도 못할 것을 우리 아버지는 어찌 그리 열심히 모으시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옥가락지를 하겠니 삼작노리개를 달겠니.
한 두올, 살짝 네 귀밑머리가 흐르는 목덜미에, 이렇게 고운 비단으로 동정을 지어 노랑저고리를 입혔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우리 아버지가 쟁여둔 중국비단 생각에 무던히도 속이 탔었느니라.
당혜도 아닌 짚신을 신고 다닐 때, 바늘도 아닌 연검을 차고 다닐때, 그 우라질 이부장이 너에게 소리를 지를때 내가 다 열이 났었다.
우리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아니 너에게 그리 고된 일만 시키고 기어이는 목숨까지 잃게 한 좌포청 식구들만 아니었으면~!!
무비사는 아주 조용하다. 맨날 시끄러운 포청과는 달라. 네가 여기에 그대로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참. 네게 같잖은 말로 무비사 일을 가르쳐 주던 그 놈은 바로 담날로 그만두었단다.지병이 있었나봐...
네 말을 하고 싶었는데...생각하면 참 할 말도 없다.
나는 역시 편지를 잘 못써. 이럴 줄 알았으면 검률서 대신 무슨 책이라도 좀 읽어둘 걸 그랬다.
요즘 다모들은 통 못쓰겠어. 무얼 물어도 틱틱거리기만 하고 내가 지나가면 웃기만 한다. 앞에서 좋은 척을 못하고 꼭 뒤에서만 수근거리는 애들이 많아. 칫~! 그런다고 내가 맘을 줄 성 싶으냐?
네가 있을 적이 참 좋았다. 그 보라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후원을 돌아갈때 그 모습을 보면 나는 참 가슴이 뛰었다. 네가 내게 웃어보일때면 나는 참 행복했다.
너도 나를 좋아했던 게지? 그래서 웃어주었던 게지? 아버지는 날마다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하지만..나는 잘 알아. 네가 내 처지를 생각해서 속 맘을 보이지 못한 걸.
무얼 그리 걱정했던 게냐. 그까짓것 내가 어디서 곤궁한 집안 아이 하나 대속하고 너를 빼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했던 일 아니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우리 아버지가 내가 정 조르면 그만한 일 못했을 것 같니?
네가 너무 착한 탓이다....어휴..생각하면 더 맘이 아프다..그런 네 속을 모르고 아버지는 맨날 내게 혼례를 올리라고만 성화시다.
내 생각에 우리 아버지도 나와 같은 맘으로 어머니를 데려오셨을까 싶어.아마도 천수답 서너마지기라도 외갓댁에서 요구하셨으면 절대로 안하셨을걸? 우리 아버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분이다.. 하지만 너무 미워마라. 다 나를 생각하셔서 그런 거려니 해라....내 맘이야..그런 재물이 뭐에 다 필요할까 싶지만..하긴 나도 아버지 몰래 그 재물로 병법서를 사보니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
옥아.
춘분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차다.
솜을 둔 옷도 하나 없이, 단출하게 그리 보내고...내 마음이 춥다. 거긴 춥지 않지? 비오는 날은 네가 젖어서 걸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 길은 참으로 멀다는데, 그래서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데 아직도 어디쯤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지..걱정이다..그래도 혼자는 아닐테니 조금은 맘이 놓인다.
뭐..내 맘은 다 알테니, 할 말이 없다.
내 걱정은 말어.산 사람은 다 산다더라. 나도 봄이 오면 검술이라도 배워야 겠다. 젠장, 한번씩 좌포청에 갈 때마다 나보다 직위도 낮은 것들이 꼭 내 머리를 쥐어막아 못 살겠다. 말도 안통하는 것들이야.
잘 지내라 옥아.
댕기를 드린 네가 참 보고 싶다.
그거 아니?
한성에서 젤 예쁘고 참하다는 난희아씨보다
나는 네가 더 이뻤다. 한번도 마셔보진 못했지만 틀림없이 차맛도 네 것이 더 좋았을 거야.
나 가면..언제 가면 ..꼭 그 차 한잔..같이 하자..
...옥아...내 걱정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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