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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박정만을 죽인 이들

by 소금눈물 2011. 11. 13.

03/08/2008 03:19 pm비공개조회수 0 0

비는 눈물같이 줄창 내리고
창은 보랏빛으로 젖어 있다
나는 저 산쪽
외로운 한 사람을 생각하노라.

그대 생은 어디 있는가.
가고 없는 사람은 생각 말고
돌아올 사람도 생각지 말자.

한 떨기 풀잎을 바라보자.
그냥 그 뜻대로 지고
산천도 언제나 조용하게 저물었다.

인간은 다 어디로 갔나.

<비는 줄창 내리고>

<남산 안기부>가 부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루가 멀다고 제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는 참혹한 소식이 들고나는 요즘이지만,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가슴이 써늘해졌다.
이 미친놈들, 이제 이렇게 가자는 거구나. 이렇게 할 작정이구나!

남산 안기부...
내겐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거기 지하실에 있었다.
시인 박정만.


열시에 자나, 새벽 두 시에 자나 눈 뜨는 건 대개 네시쯤 전후다.
고요한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을 더듬어 습관처럼 열어보는 책이 바로 이 것이다.
내게 꼭 한 권의 시집을 가지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작은 시집 하나를 구할 것이다.
박정만에 대해서라면...할 말이 참 많은 것 같기도한데, 할 수 있는 말은 참 적다.

이 순정한 영혼을 미친듯 사랑하는 나는 내 블로그의 이름을 그의 싯귀절에서 따와서 지었다. <꿈없는 꿈>.

박정만...
눈물어린 목소리로, 속절없는 일평생 사이의 초록바람과 저 세상의 대청 마루 한 쪽, 받을 이 없는 편지, 눈물어린 날의 술잔...그런 것들을 그리고 부르던..천상 꽃 같고 물 같던 그 시인..
광주학살의 추악한 핏자국을 감추려고 벌였던 허깨비 장난 <국풍> 와중에, 그는 다른 문인의 필화에 휩쓸려 들어가서 사흘동안 종적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몸을 못가누면서 집으로 들어왔을때 그는 사흘 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고, 다시는 그의 몸도 혼도 돌아가지 못했다.
시간을 그려가며 미친 듯이 썼던, 아니 피로 토했던 그의 시, 절망과 한과 미칠듯한 그리움의 그 낱말들..
술이 그를 먹어들어가던 지독한 가난과 병고의 나날, 아내는 떠났고, 그리고 두 아이를 남겨두고 그도 이 세상을 버렸다. 그의 운명을 지킨 이는 아무도 없이 홀로 그렇게 갔다.
그의 육신과 정신을 찢어발긴 정권이, 치부를 감추기 위해 벌였던 올림픽이 막을 내리던 88년 10월 2일이었다.

그의 시는 말로 씌어져 있으되 그려진 것은 물빛이다.
눈물빛이고 강물빛이고 빗물빛이다.
그리고 이 모든 시는 시인이 간 별나라의 꿈빛이다.


앞 사연만 듣고 박정만의 시를 혹시라도 정치나 다른 이념의 무게를 얹어 볼 생각이라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말해두고 싶다.
그는 저쪽 나라의 푸른 대청 한 칸을 두고 새소리를 들으며 낮잠자는게 꿈이던, 한 생을 하루 해에 던져놓은 채 그 혼곤한 잠을 꿈꾸던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시였으니 말이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이처럼 순수하고 명징한 <순수시>를 시를 쓰던 사람이 어째서 그 악명높은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밀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그 시대를 치열하게 자기 시에 입혀 살아간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는 정말 천상 시인, 맑은 눈물과 꽃빛의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시인의 목소리조차 지켜줄 수 없었던 시대, 이런 시인의 노래조차 들어줄 수 없었던 폭압의 독재정권에 그가 있었다.

내겐 이 사람을 짓밟은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혹은 그의 뒤를 잇는 이회창이나 모두 개자식들이다. 권력을 이용해서 피에 젖은 시신 위로 탱크를 돌진했던 인간이나, 평생 권력의 양지쪽만 디뎌 살면서 충실하게 그 정권을 이어 잡아보자 했던 인간이나 다를 것 없다. 이회창은 운나쁘게 투표에서 제 깜냥으로는 도무지 상대로 되지 않았던 고졸의 전직 인권변호사에게 지고 말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 정권의 태반을 고대로 이어받았을 것이니 다른 무게로 두지 않는다.
정말 시인, 천상 시인 아니면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이런 무고한 사람이 고문의 비명 속에 죽어갈 동안, 그 시대를 위해, 그 시대의 민중을 위해 그 인간이 무슨 항거를 하고 투쟁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미친듯이 술을 마시며 자기 피를 녹여 써가던 그의 시집, 그래서 "유서시집"이 되고 만 < 지는 저녁은 바라보지 말라>.
이 시집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終詩>

그는 그렇게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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