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꺼내기가 괴롭고 서러워서 입을 닫았다.
아니다, 애초에 주제에 맞지 않을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그저 그저 월말에 통장에 고만고만한 돈이 때맞춰 들어오면 그 뿐, 집에 가다 자빠져 코라도 깨지지 않으면 그날 그날 행복한 거다, 그게 전부다 믿고 사는 가늘디 가는 소시민의 심사에 남의 일인데, 생각할 게 무어냐, 괴로울 게 무어냐 했다.
포도청보다 무섭다는 목구멍, 서러운 그 밥그릇 앞에서 사람의 목숨이 이렇듯 흔적도 없이 타버리는 등불 앞의 나방 같구나 싶어서 목이 메일 뿐이었다.
잘났다는 떼부자들의 술집 난동으로 온나라 시선을 다 붙잡고 쥐어흔드는 판에, 마음에 걸리지도 못할 이야기 아닌가. 이게 세상 인심인데.... 눈길을 받을래도 잘나고 힘센 놈들이 저질러야지, 백만 원짜리 아파트 경비가 분신한 사건이야 눈에 들어오던가, 이 세상이 얼마나 모질고 독한 걸 모르고...
아침녘에 신문을 보다가 가늘게 한숨 내뱉고 덮어놓는데, 옆에 앉아 곁눈길로 보던 동료
"그러게 한심하지 않아? 아니 고작 백만 원 때문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냐? 멍청하긴. 거기밖에 직장이 없다고?"
기겁을 하고 돌아다보았다.
벌어진 입이 기가 막혀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그렇잖아요. 답답하지. 아니 뭘 그까짓걸 가지고 죽기를 하냐. 백만 원밖에 못 받는대며. 거기밖에 일자리가 없대?"
"너, 이 기사를 보고도 한심하다는 말 밖에 안나오니?"
굳어진 내 얼굴을 보고 말을 하려다 우물거린다.
"독하다.. 너 참 모질다. 어떤 사람에겐 말야... 그 백만 원 밖에 안되는 월급이 한달 목을 매는 절박한 직장이야. 아파트 경비를 한다면 보나마나 나이도 육칠십이 되었을테고 그 사람들 그나마 거기가 마지막 일터였을거야. 어쩌면 한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자리일 수도 있고 거기서 잘리면 갈 데도 없었을 거야. 그 자리를 그렇게 무참하게 잘리고, 그 사람들 어디로 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겠어?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서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다들 있는 사람도 줄인대잖아. 자기 직원도 끌어안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아파트에서 잘려 내몰린 사람들 쓸 것 같아?"
"아니 뭐 아파트 입장에서 보면, 어쨌든 관리비 줄이는게 좋은 거 잖아요? 월급 올려줘야 한다면 그럼 당연히 줄일 사람 줄여야지."
"사람을 쓰고 일을 시키면 합당하게 그에 응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일을 시켜야지. 일은 줄이지 않으면서 그렇게 사람 혹사시켜가면서, 그나마도 자리보전도 안되게 하고, 아파트 관리비가 오르면 얼마나 오른다고. 저렇게 원한을 사고 그 동네 사람들 대대로 얼마나 알뜰하게 잘 살려고 저렇게 만들었는지, 야 나는 그게 더 무섭다, 그게 더 끔찍하다야."
얼굴이 벌개져 뭐라뭐라 말이 길어지는 걸, 그만하자, 듣기 괴롭다 하고 손사레를 치고 말았다.
저도 월급노동자면서, 저도 그 경비 월급에서 몇 푼이나 더 받는다고, 일 많이 시키고 쥐꼬리만큼 돈 준다고 날마다 성화면서, 돈 올라가면 자르는게 당연하다니...
그렇다 치자, 그래 효율만 생각해서 그게 온당하다 치자,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 저 모질고 독한 시선에 설움을 못 견디고, 제 몸을 불 쏘시개로 그 막장일터에 불을 지르고 죽어버렸다.
이 끔찍한 일에, 저런 소리 밖에 나오는 말이 없대냐. 답답하다니. 한심하다니...
눈물이 난다.
야..세상 참 독하다... 독하고 모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아비가, 인간이 저렇게 처절하게 죽었는데, 돈값 먼저 따져가며 혀를 차는 이 세상의 인심이 나는 무섭다...
눈물이 나게 무섭다....
우리 아파트야 제발 그러지 마라.
아침 저녁으로 눈이 마주치면, 고작해야 동네 사람일 뿐인 한참 젊디 젊은 나한테 굽신거리며 인사하는 저 키 작은 경비아저씨들을, 월급 몇 푼 무섭다고 그냥 내치지 마라.
그 동네처럼 그러지는 말자.
아침부터 하루종일, 가슴 밑 바닥에 돌덩이를 매달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서러워서,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온다.
이 모질고 독한 세상... 드러운 세상...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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