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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그 손가락에게 묻는다.

by 소금눈물 2011. 11. 13.

05/31/2006 09:19 pm공개조회수 0 24




이 얘기는 제발 하지 말라고, 공연히 사서 상처받을 말은 삼키고 잊어버리는게 낫다고 내 친구는 극구 말렸지만
일년을 나는 생각했어.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걔네들도 무슨 생각이라는 게 있을 거야...
생각이 있겠지...

그런데 나는 기를 쓰고 목구멍 안쪽에 꾹꾹 눌러왔던 말을 기어이 다 못삼키고 하고 있네.

지난 여름, 다모답사를 하면서 공교롭게, 제주만 빼놓고 충청남북, 전라남북, 경상남북, 강원도까지 갔다가 경기도로 내려왔어.
불과 이박삼일 동안 숨차게도 돌아다녔지.
고단한 여정이었지만 나는 참 소중하게 생각해.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이 땅과 이 땅이 가진 속살의 이야기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관통하며 지나오면서 그냥 관념적으로만 막연히 가졌던 의문과 대답을 그 풍경들을 통해 깨달은게 많았거든.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우리 산천의 한여름 풍경들, 아프고 괴로운 이력을 가진 수탈의 땅들을 돌아보면서 같이 갔던 친구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어.

전라도 출신이라 싸고 도느냐는 십원짜리 소리를 막기 위해서 미리 말해.
나는 충청도에서 태어났고 한때 경상도에서 산적이 있어.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사돈의 팔촌쪽으로 아무리 작대기로 휘저어봐도 전라도엔 아무 연고도 없다는 소릴 하는거야.
무슨 말만 하면 전라도내기 운운하는 너희 텅 빈 머리와 가벼운 입을 향해.

참으로 넓고도 아름다운 산과 들이었어.
기름지고 넉넉한 고장이었지. 불과 산 하나를 두고도 밥상의 그림이 기가 막히게 달라지는 곳과는 산물의 규모와 종류를 생각하게 했어.
이상하지.
수탈은 늘 그런 곳에 가장 먼저, 가장 집요하고도 잔인하게 행해지지.
그런데 말야.
이나라 역사를 줄줄이 훑어보면 늘 더 많이 수탈당하고 더 많이 짓밟힌 그 동네가, 뭘 그리 나라나 민족따위 깃발아래 받아먹은 것이 있다고 이 땅에 무슨 변란만 있다 하면 먼저 일어나고 더 많이 다치면서도 끝끝내 올곳게 서는 그 힘이 무엇인지 나는 늘 궁금했어.
이해가 되지 않잖아?
고관대작을 두루두루 해먹다가 낙향해서, 그러고도 둥우리를 만들어서 무슨무슨 서원을 내리짓고 팔작지붕 휘둘르고 살면서 무슨무슨 양반고을 내세우면서 살았던 이들의 동리에는, 그런 상처의 시기에 납작 엎드려서 먼저 부복하거나, 적어도 모른 척 외면하면서 살더라는 말이지.
그 양반들이 말야.
노블리스 오블리제.- 양반, 가문.. 그런거 따지면서 내세우는 이들에게 정말 묻고 싶어.
너희는 정말 뭐였니?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하고 싶겠지.
나 역시 지금 함부로 쉽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근대사를 지나오면서, 너희는 정말 이 역사에 미안해야 하는 거야.
그냥 눈감고 모른 척 하는 것도 밉상인데, 너희가 지금 부르짖고 애통해하는 가치가 어떤 눈물 아래 서 있는 건지 정말 그러면,,안되는 거잖니. 그건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닌 거잖니.

부산에 있을 때였어.
오래전이지.
앙숙이 된 두 동네끼리 프로야구전이 있었단다.
그때 내 상사는 주먹을 떨면서 그러더라.
"전라도 새끼들 다 죽여버려!"

아니 왜?
전라도 사람이 그 상사에게 뭔 죽을 짓을 했기에?
그리고 그걸 왜 야구가 해결해?

정말 웃기는 건, 그 말이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는 거야. 그 동네선.
그날, 원정왔던 그 야구팀의 버스는 아주 박살이 났고...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 구장을 빠져나갔다나 했어.
거기 가서 돌을 던지고 싸움을 했던 우리 직장의 남자들은 무슨 대단한 전투를 승리로 치루고 온 양 흥분했더라.
다들 점잖고 배울만큼 배운 이들이었어...

나는 80년 오월의 광주를 몰랐어.
아직 어렸거든.
거기다가 나는 그 동네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대학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알았지.
그리고 내가 아무 생각없이 공부하고 내 밥벌이를 위해서 캄캄한 시간들을 뚫고 나오던 그때에 무슨 일이 이 땅에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생목숨이 그렇게 소리없이 피를 뿌렸는지를 그때 알았어.

나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어.
나는 대학도 혼자 벌어서 들어갔고 늘 생활이 쪼달렸고 다음 학기의 등록금도 장담을 못하는 아이였어.
먹고사는게 너무나 힘겨운 고학생이어서, 나는 그 이즘조차도 먹고사는 게 해결 된 이들의 이차적인 고뇌로 알았어.
그러면서도 나는 내내 미안했지.
미안하고 아팠지...
나 혼자 먹고 살기 바쁘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 내 한그릇의 밥 밖에 더 소중한 것이 없다고...그래서 지금은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나는 미안하고, 그렇게 초라하고 가난한 내가 슬퍼서 울었지.

87년, 나는 대학 1학년이었고.
그 봄의 뜨거운 환호가 무슨 의미였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했어.
학교앞에 뭐 하는 지도 모르고 날마다 상주해 있는 그 닭장차들.
코를 막는 그 최루탄 냄새를 더는 맡지 않는게 신나는 아이였어.

밤중에 내 자췻집 마당에 뿌려진 전단지, 골목길을 다급히 뛰어가던 발자국들.
그리고 경상도 억양의 젊은 국회의원이 청문회에서 일단의 전직 군인들을 향해 부르짖다 눈물을 흘리던 그 여름..
내 의식의 떨림은 그런 것들로 시작되었을 거야.

그러다 취업을 했고...
몇 년이 흘러 어느날 나는 우연히 망월동에 서 있었어.
"민족의 성지"는 너무나 초라했고, 낮으막한 봉분들이 줄을 지어선 그 묘지.
밭귀퉁이 아무데에 느닷없이 생긴 것 같은 생경한 풍경들과 하나같이 사연이 다단한 묘비들.
남은 이들의 절절한 서러움과 흑백사진속의 젊은 얼굴들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묘지의 모습과는 달랐던 게 충격이었을까.

하나하나 더듬다가 구석에서 만난 묘비 하나.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義를 구하라.

가슴을 뽀개는 불칼이었어.
지금도 나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성경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이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무엇이었을까.
그 의가 무엇이었길래, 이 사진속의 할아버지는 그 연세에 빨갱이 폭도로 단죄되어 몽둥이로 절명을 당해야 했을까...
이 대명천지에.
이 여남은 살의 꼬마아이는 무슨 대역무도한 죄를 지어서, 어머니 심부름으로 시내에 나갔다가 머리가 바숴져서 이렇게 누워버린 것일까.

무엇이었을까.
이 아이와 무력한 노인네와 웨딩드레스 고운 차림의 새색시와, 거대한 관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공장직공들이 이렇게 나란히 누워 이 뜨거운 지열을 더 끓이고 있는 이유는...

선거와 투표를 몇 번이나 치르면서 나는 암담하고 괴로운 심정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어.
너희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너희들의 그 증오와 복수심이 왜 전라도를 향하고 있는지, 과연 전라도 사람 누가 너네들을 그 집단광기의 최면으로 빠지게 하는지.

전라도 사람들이 너희에게 갖는 증오는 이해해 차라리.
그쪽에서 난 권력자가, 하늘아래 두번 다시 못할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르고도 너희에 의해 대통령으로 추대되었고 그들을 몇번이나 절망케 했어.
그러고도 너희는 너희의 잘못과 죄를 미안해 하기는 커녕 너무나 뻔뻔하게 비난을 해.

전라도의 몰표?
너희의 모습은 어떤데?
정치의식에서만큼은 나는 정말 전라도를 존경해.
그 사람들만큼 위대한 정치의식은 우리나라 어디서도 없다고 생각해.

절대지지?
그들의 한을 모르니?
그 한을 접고도 그들은 갈등하고 자신들의 원한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분개하고 섭섭해 하면서도 또 다시 자기를 접어야 했던 이들이야.

왜 너희는 너희가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지 모르니?
아니 그런 사실조차 인정을 못하는 거니?

온나라를 홀라당 뒤집어놓고, 그 시련을 거쳐 국민이 과반수를 넘겨 만들어준 표를
홀라당 다 까먹고 죽쑤어 개, 아니 개떼들에게 준 열린우리당도 내 분노에 기름을 붓지만

나는 정말 너희들을 보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부끄럽지 않니 너희?
정말 너희는... 너희가 찍는 표가, 부끄럽지 않니?
왜 너희들은 갈등이 없니?
어쩌면 너희는 정말, 어떻게 그렇게 갈등이 없니?

왜 그렇게, 똑같니?
자신의 잘못으로 엉망이 되는 관계를, 번번히 상대에게 덮어씌우고 이를 가는 모습까지
어쩌면 그렇게 똑같니?
그걸 모르는 모습까지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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