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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길에 서서

세상을 안고 싶어서, 세상을 잊고 싶어서.

by 소금눈물 2011. 11. 13.

08/07/2007 11:22 pm공개조회수 0 5




왜 이렇게 이런 아이들에게 약한 지 모르겠어요.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간신히 도착한 양평 숙소, 마당 앞의 구절초에 금방 혼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흔히 보던 흰 구절초와 크기나 모양은 같으나 색은 쑥부쟁이 비슷하지요?
내내 구절초인지 쑥부쟁이인지 헷갈립니다.
구절초의 종류도 한 둘이 아니니 그냥 구절초라 믿어보렵니다.
(이런 무식한 인간~-_-;;)
사실은 제가 갖고 있는 식물도감에는 자세하게 구별해놓지를 않았어요.
그러게 언제부터 제대로 된 식물도감을 갖고 싶다는 게 소원인데 ㅠㅠ




펜션에 가방을 훌러덩 던져두고 마당 끝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마당 끝이 호수로 이어지는데 내내 내린 비에 제법 많이 불어 있었습니다.
물살이 제법 세어보이는데도 얕은 지 가족들이 고기를 잡으며 물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차차, 본연의 임무!
묵은 숙소 인증 사진입니다.
마당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구요 (오른쪽 나무) 저 건물들 뒤로는 새파랗게 벼가 자라는 논이 보였습니다.
깨끗하고 호젓한 곳이어서 빗속을 허위허위 간 보람이 났지요.




으허허;;; 별너믜 사진을 다 ;;;





모기장이 쳐진 창, 테라스 너머로 바라보는 밤나무가 올라온 마당입니다.




여행은 이래서 좋은 거지요.
가방을 풀고 준비해간 저녁거리를 벌여놓고 행복해졌습니다. ^^;
밤이 깊어가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깊어가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화려한 휴가> 까지 닿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을 기억해야 하지만 더 이상은 눈물이나 상처로 만들지 말고 이겨나가자고, 그 시간들을 살아낸 사람들처럼-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안 되요...

"거기서 인봉이 그래요. 순진한 민우의 연애상담을 해 주던 술집에서, 야 근디 안주가 상당히 건방지다야... 그래요. 안주가 건방지대. 안주가..."

웃으려고 한 이야긴데, 근데 어쩌자고 바보처럼 눈물이 푹 솟습니다.
밤이라 다행입니다.
안 보였을 거예요...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자위가 벌개진 걸 안 들켰을 거예요...

-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한 분이 그런 분이 있었어요. 일 땜에 그 때 거기 갔는데 딱 만난 거라... 근데 뭔 일이 있긴 있었을텐데 입을 절대 열지 않아요. 어찌나 호되게 당했는지... 그 분은 그냥 일로 간 거였는데... 어떠셨어요? 하고 물으니, "비가 오면 지금도 가끔 욱신욱신 하지 뭐." 그렇게만 말해요.

- 제가 전에 공부할 때요. 그 때 어떤 모임 때인데요.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지고 하다보니 어쩌다가 광주 이야기까지 닿았어요. 마침 오셨던 작가 분 작품이 망월동의 어머니 얘기가 있었는데 그 얘기 하다가 말이 나왔나... 암튼. 근데 그런저런 말 끝에, 우리 선생님이 술김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거라. 그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총을 들었었대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그렇게 불끈해서 일어나진 거라 어쩌다 손에 총을 들긴 들었는데 애들이지.. 애들이 뭘 알아. 근데 진압군하고 대치가 된 거라. 어쩌다 보니. 이리저리 총알이 핑핑 날아오고 정신이 없는데 어느 순간 눈 앞으로 무언가 쌔액 하고 지나가더래요. 그게 총알이었어. 근데 그 짧은 순간에 자기의 일생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촤르르 지나가더래요. 아 이렇게 죽는 구나...딱 그 생각이 들면서 그 찰나의 순간이 그렇게 길더래요. 근데 오른쪽 어깨가 턱, 무거워지는 거야. 정신없던 순간이 어느새 조용해지고, 그러다 어깨를 돌아보니.... 바로 옆에 섰던 친구의 머리가 툭 기대 있더래요. 그니까 그 때 선생님의 눈 앞으로 지나간 총알이...

- 미친 시간들이었지... 그 개자식들은 지금도 그렇게 잘 살고 있는데...

- 그러게...

- 나무낭 같은 분들은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어려울 거예요... 난 그래서 미냐낭이, 나무낭이, 이런 선배들이 너무 고마와요. 그 시간들을 넘어와주셔서.

- 아 왜 이래요~

- 사랑해용 미냐낭~*.*~

- 아 니에니에~ 아 나, 이거 인제 너무 익숙해. -_-;;

- 아이씨, 갑자기 다소방 생각이 나네. 좌포청이 뭐 진압군? 지금 생각해도 열받어. 그지같은 인간들! 어디 감히!!

- 으이쒸!!! 용서가 안돼 아직도!!

술 한 잔이 없어도 취해지는 밤이었습니다.
세상 꼬라지는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를 않는 걸까.. 살다 보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역사는 어차피 긴 시간 속에서 조금씩 승리하는 거라고 했지만... 하지만 되풀이 되는 꼴을 보면 도무지 그런 시간이 오기는 오는 걸까.
답답한 밤입니다.
세상을 잊으려고 떠난 길에서, 한숨이 자꾸 더 깊어갑니다.





안 그래도 잠이 얕은데 집을 떠나면 도무지 잠을 이루지를 못합니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동이 트자, 잠이 든 친구들을 두고 가만히 아침 산책을 나왔습니다.
간밤엔 호수로 보았더니 개울이었군요.
물이 불어 완만히 흘러 기어가는 개울물, 손 끝이 시리도록 차갑습니다.
개울가의 갈대밭에서는 작은 새들이 부산히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개울 건너 언덕에 작은 집이 보입니다.

문득 우리 도련님이 생각납니다.
난을 무사히 진압하셨으면 승정원 선전관으로 승차하실 분이었으나, 아마도 그 분은 관복을 벗고 초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부질없는 세상의 명리야 관심이 없던 이이고, 그 작은 계집아이와 세상을 잊고 조용히 숨어살고 싶었을 사람.
동네 학동 몇을 모아놓고 서당을 열었을까요. 반상의 구별을 도련님은 두지 않으셨겠지요.
총명하게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앉히고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시경, 서경... 새소리처럼 낭랑한 그 합창을 들으며 웃으셨겠지요.
서자로 돌아가도 좋다, 백정으로 살아도 좋다. 숨이 넘어가게 뜨겁고 아프던 그 음성...

개울이 흐르는 산마을,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촌에 그렇게 묻혀 한 세상 꿈결같이 살다 가지 않았을까요.
물안개가 올라가는 건너편 산마루를 바라보며 혼자 시름없이 앉았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종주먹을 해대며 침을 뱉고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이 작은 몸을 갖고도 제 힘껏 살아가고 있는 이 이쁜 것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비에 젖은 풀숲에 제 나름대로 환하게 피어있는 생명들에 금새 눈을 뺏기고 주저앉았습니다.
참 이쁩니다.
그래서 날마다 욕을 달고 살면서도 세상에 미련한 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네요.
춘천 가는 기차라지요?

정말로 놋양푼에 수수엿을 녹여먹으며 겨울밤을 새야 할 것 같은, 그래서 어여쁜 나타샤와 소주를 나누어 마시며 세상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산마을이었습니다.

자... 다시 길을 떠나야지요?

그만 자고 일어나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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