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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길에 서서

용문사

by 소금눈물 2011. 11. 13.

08/06/2007 11:18 pm공개조회수 0 1



올 여름 여행은 짧을 것 같습니다.
여느해처럼 남도 다모 답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멀어 어려웠던 강원도 쪽으로 돌아보기로 계획을 잡았는데, 휴가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네요.
어렵게 떠나는 여행길, 길에 나선 오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일단 함께 하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여행.
부푼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




양평에 여장을 풀어야하는데 가는 길에 용문사에 들렀습니다.
용문산 용문사, 신라가 국운을 다해가던 신덕왕 무렵 창건되었다지요?
우리에겐 마의태자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용문사 은행나무로 유명하지요.
일주문 기둥의 용장식이 절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어우~
절로 들어가는 길목에 숲이 울창합니다.
가랑비가 내리니 더 컴컴합니다. 저물 무렵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산길이지만 산책삼아서 걷기엔 참 좋은 길이었어요.
봉곡사 들어가는 솔숲도 참 좋았는데...

 


아하~
이게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랍니다.
중학교땐가, 국어 교과서에 만추의 뜨락, 노랗게 쌓인  은행나무잎을  쓸고 있는 스님의 사진이 있었지요.
그 정취가 지금 생각해도 어찌나 그윽하던지, 가보지도 않은 용문사 가을을 그리워했더랬습니다.
가을이면 정말 좋았겠어요.

국운이 마침내 다해 나라를 고려에 바치게 되자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떠나다 여기에 지팡이를 꽂았다지요.
의상대사가 꽂았다는 전설도 있지만 이야기의 비극적 감동은 마의태자 쪽으로 기웁니다.
정말로 크더군요.
나무 한 그루가 넉넉히 작은 동산 하나쯤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랑비가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어쩌나... 가는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한데.
서둘러 안으로 들어섭니다.




용문사 대웅전보다 크고 장중한 절도 많이도 봤지만, 모양새나 규모가 한 발 물러 보기에 한 품에 딱 들어오는 마춤한 대웅전입니다.
이렇게 보니 정암사 적멸보궁이 비슷했던 것도 같아요.




조성된 지 이십 년이 채 되지 않은 요즘의 탑입니다.
깔끔하고 날카로운 탑신이 세련되지요?
몸매 좋은 요즘 젊은 처자들처럼요. ^^



대웅전 앞을 살금살금 돌아다녔습니다.
역시나 절간에 들어서 단청 쳐다보느라 정신없는 소금눈물 ㅜㅜ





대웅전 돌계단 아래서 옥잠화가 비에 젖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근데.. 참 정신없이 쏟아지네요.




태극의 시작은 원래 불교보다는 성리학의 음양조화에서 출발했다고 하지요.
불교에 수용된 태극의 이념은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하나하나가 모두 평등하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무한한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랍니다.
눈여겨 보면 단청 끝이나 절문, 계단 장식 등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불교에서 태극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태극이 지닌 상반(相反), 융합의 원리와 사상이 절대 평등과 원융을 추구하는 불교의 교의와 상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베게 출판, 허 균 지음,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인용)




빗줄기 속의 대웅전 단청 구경 좀 해보실래요?




원래는 목조 건축의 수명을 길게 하고 공공건물의 위엄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 단청은 특히 궁궐과 절의 건축에서 절정의 아름다움을 뽑냅니다.
특히나 대웅전의 단청과 내부 장식, 즉 닫집, 천정 등을 이루는 오방색의 단청은 여인네의 화사한 비단치마가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 극도로 화려합니다.
연속무늬로 이뤄지는 저 문양들은 반복적이면서 연결되어 끊이지 않는다는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삼성각입니다.
삼성각은 원래 불교의 주인공들을 모신 곳은 아니지요.
전래의 토속신들이 그 勢를 불교에 넘겨주며 밀려나면서 절의 한 쪽 전각에 의탁하게 된 산신과 호랑이 등을 탱화로 모십니다.
아 참 절에 따라서는 실존인물,그러니까 존경받을 만한 고승대덕을  모신 곳도 있더군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 속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사진기를 들여대다 보니 등허리는 다 젖고 꼬라지가 영 말씀이 아닙니다.
빗방울이 눈송이 처럼 보이네요.



대웅전의 별지화입니다.
별지화는 머리초와 머리초 사이의 공백과, 벽체, 공포벽, 편액 등에 그리는 그림입니다.
상서러운 불교의 상징이나 꽃, 산수화, 혹은 이런 비천상을 그리기도 하지요.




오호~
용문사에도 이런 꽃창살이 있군요.
계룡산 동학사에서 사군자 꽃살을 보고 놀랐었는데 이런 형태는 그 이후 두번 째로 보는 드믄 것입니다.
용문사에 가실 분들은 꼭 한번 확인해보세요.
송학이나 모란, 목련이 화려하게 양각된 문살, 불이 켜지면 이 문은 얼마나 화려하게 피어날까요.
자못 궁금해집니다.





참 섬세하지요?
땅을 디디고 있는  학의  굽어진 다리를 보세요. 참으로 정교하고도 섬세한 솜씨가 아닙니까?



닫집과 꽃천장도 제대로 보고 싶은데 예불하는 분도 있고
사진기를 들이미는 무례를 범할 수 없어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다 말았습니다.
닫집의 모양새가 담백하고도 말끔하네요.




비안개 짙은 오래된 절...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지붕선에 홀렸습니다.
빗소리에 취하고 저 아름다움에 취하고...





기대에 부풀었던 은행나무보다, 단정하고 품격있는 절간이 그대로 우아한 멋을 보여주었던 용문사였습니다.

비는 점차 거세져서 이젠 한 치 앞이 안 보입니다.
저러다 계곡물이 넘치는 건 아닐까, 가는 길이 온전할까 문득 두려워집니다.

자아.. 다시 길을 떠나야지요.
저녁무렵, 빗속의 용문사를 추억으로 담으며 다시 여정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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