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 들어서 백제의 흔적을 보자면 아무래도 부소산성이 가장 좋겠지요.
찬란했던 백제를 이 작은 산성하나로 어찌 짐작하겠습니까만.
이 참에 <백제>를 검색하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역사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혹시 백제를 알고 싶은 분들은 요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부여읍에 위치한 부소산성는 부여 서쪽을 감싸며 백마강을 해자같이 두르고 조성되었습니다.
이곳은 538년(성왕 16)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여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국도를 지킨 성입니다. 짐작하기로는 성왕 천도 무렵부터 무왕에 걸쳐 완공되었을 것이라 하네요.
군창터와 영월루, 사자루등이 있고 슬픈 전설로 유명한 낙화암은 이 산성이 백강과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크고 높은 산성이 아니니 편하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돌아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정림사지를 돌아보다 시간이 늦어서 망설이게 되네요.
부소산성 올라가는 길을, 길에서 뻥과자를 팔던 아저씨께 여쭈어보니 아 잠깐만요 하시더니 관광안내문을 주십니다. 안내문이 퍽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부여분들은 길가 뻥과자 아저씨까지도 백제문화의 안내자가 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하니 어느쪽에 차를 대면 어떤 식의 관광이 낫고 어디로 주차하면 나중에 돌아볼때 얼마를 깎아주시고 하는 꼼꼼한 안내까지 해주시네요 .
시간이 늦어서 부소산성에 직접 올라가는 건 포기하고 구드레나루로 가서 유람선을 타보기로 했습니다.
유람선으로 백마강을 돌다니 저도 이건 처음 경험이네요.
유람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유람선을 구드레나루서 편도로 타고 가 낙화암에 내려 산성에 올라가 걸어내려오는 방법이 있고 다시 그 배를 타고 돌아오는 방법이 있는데 승선시간이 짧은데 비해 낙화암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배 뿐일 것 같네요. 왕복으로 표를 끊으면 가격이 조금 싸집니다.

나루에서 유람선을 타면 곧바로 낙화암으로 향합니다.
보이세요?

가을빛에 물드는 낙화암의 저녁.
사직이 막을 내리던 날, 도성은 불타고 그 아비규환속에서 적병들에게 쫓기던 궁녀들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었겠지요.
임금님의 수라에 올리는 물을 길러 이 곳을 다녔던 궁녀들은 그들이 익숙한 이 산길 말고는 더는 몸을 가릴 곳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타는 궁성을 도망쳐왔으나 앞은 까마득한 절벽아래 깊고 깊은 강물, 바로 뒤까지 쫓아온 말발굽소리들.
그들은 더 갈 곳을 찾지 못합니다.
國破山河異昔時 국파산하이석시
獨留江月幾盈虧 독류강월기영휴
落花巖畔花猶在 낙화암반화유재
風雨當年不盡吹 풍우당년부진취
(나라는 깨어지고 산하도 옛날과 다르니,
홀로 강에 머문 달은 그 몇번을 차고 이지러졌음이오.
낙화암 언덕에 꽃은 아직 피었으니,
비바람 치던 당년에 모두 날리지는 않았음이라.)
후세사람 홍춘경(1497 연산군 3년∼1548 명종 3년.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중明仲, 호는 석벽石壁.)은 그 모습을 애달프게 떠올렸습니다.
그 때도 꽃은 피었던가보지요.
낙화암의 꽃은 그날의 그들을 기억하며 피었겠지요.

낙화암 바로 옆으로 고란사가 잡힙니다.
고란사는 절 뒤편 언덕에서 자라는 고란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네요. 백제의 임금님이 드시는 물에 이 고란초를 띄워 올렸답니다.
지금은 마곡사의 말사이나, 원래부터 절은 아니었던 듯 하고 당대에는 임금님이 놀러오시던 정자가 있었을 것이라 합니다. 백강을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름다운 언덕에 있지요.
절은 고려 헌종때 낙화암에서 떨어진 궁녀들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졌답니다.


고란사는 사실 가서 보면 외관으로는 실망하기 쉽습니다.
버젓하게 큰 가람도 아니고 그 세월이 저절로 무게와 함께 느껴질만큼 품격있어 보이지도 않구요.
낙화암, 백제의 슬픔, 그것을 기억하는 후세인의 애달픈 마음이 있을 뿐이지요.

고란초랍니다.
멸종위기에 처했다 하는 말을 들었는데 용케도 잘 자라고 있군요.

고란초 옆으로 약수가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 젊어진다 해서 어르신들은 열심히 줄을 지어서 드시더군요.
물맛이야 그저 물맛이겠지만 이 물을 길러 새벽길을 총총 달려오던 어린 궁녀들의 그림자가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저 <약물>알림글자, 참 격이 떨어집니다.
그냥 두어도 약수인줄 알 것을 참......

고란사 벽에는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 기억합니다.

고란사를 지나 좀 더 올로가면 강을 바라보는 낙화암 꼭대기에 정자가 있습니다.
이름이 백화정입니다.




낙화암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입니다.
그 옛날의 백강은 지금처럼 작은 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중국 중원까지 영토를 가졌다는 백제의 기록을 보면 그야말로 대제국이었을텐데 그 도읍을 지키는 강이 어떠했을까요.
지금의 금강하류에 유속이 느려지면서 백마강 한 중간에 커다란 모래섬이 생기고 퇴적층이 넓어져 들판처럼 되었지만 그 일대가 다 강이었겠지요.
중국의 교역물을 실은 상선들이 무시로 들락거렸을테니요.
지금의 이 모습이라면 나당연합군의 중국병선들이 몇 척이나 백강에 오를 수가 있었을라구요.
그래도 내려다보는 절벽은 아득하여 어지럽습니다.
비단치맛자락을 날리며 강물위로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같다 하였으나 그 참혹한 지경을 보던 백제사람들의 눈물은 어떠했을지요

고란사 아래의 작은 바위, 아마도 저것이 조룡대가 아닐까 합니다.
조룡대의 전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들은 선생님의 말씀으로 기억하기로는, 백제를 치기위해 바닷길로 들어오던 소정방일행이 안개가 자욱해서 영 성으로 들어오지를 못했답니다. 백제를 지키는 무왕의 혼이 용이 되어 강을 지키는데 그 용은 백마를 좋아한다 하여 백마를 미끼로 강 속의 용을 잡아올리니 끌려오던 용에게 소정방이 버티다 무릎을 짚었던 자국이 남았답니다.
용을 낚은 바위라 하여 조룡대라 하였는데, 다른 말로는 사비를 버리고 웅진으로 피했던 의자왕이 결국 다시 돌아와 여기에서 항복하니 왕을 잡았다 하여 왕을 뜻하는 龍자를 써서 조룡대(釣龍臺)라고 했다고도 합니다.
그 전설의 가지로 이 일대를 백마강이라 하지요.

배는 다시 나루로 향합니다.
'그룹명 > 길에 서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도 여행 (1)- 무진기행, 김포 조각공원 (0) | 2011.11.13 |
---|---|
가을나들이, 봉곡사 (0) | 2011.11.13 |
백제의 꿈 (1)-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 (0) | 2011.11.13 |
돌말에 갔다. (0) | 2011.11.13 |
동학사 3 (0) | 2011.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