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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풍죽도 그림 이야기

28. 수렵도

by 소금눈물 2011. 11. 11.

 

09/06/2011 08:41 pm공개조회수 0 0

 

 



오늘 이야기는 착호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호랑이는 백성의 삶과 뗄레야 뗄 수가 없는 동물이었지요. 호랑이가 궁궐에까지 침입해 임금의 시위군이 출동한 일도 있었으니 민가에서 호환(虎患)을 당하는 일은 부지기수였습니다. 세종이 백성들의 도덕적 교화를 목적으로 출간케 했단 삼강행실도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그림이 많이 나옵니다. 고려 때 사람 최누백의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잡아먹히고 절치부심하여 어린 나이임에도 호랑이를 때려잡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그림이 <누백포호(屢伯捕虎)>라는 제목으로 책에 실리기도 했구요.(사실 최누백의 일화 뿐 아니고 여러가지 버전으로 남편의 원수를 갚는 부인 등등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민가에 해를 끼치는 호랑이는 한반도에 원래 살고 있었지만 급격하게 개체수가 늘어난 원인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전쟁과 서식지 이동 및 군기 감소로 인해 호랑이 사냥이 힘들어졌고 조총 등의 무기를 나라에서 엄격히 관리하며 군기고에 봉인하면서 더 늘었다고 합니다.

이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가 바로 착호군이었습니다. 착호군은 궁술이나 창술은 물론 총포술에도 아주 능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용맹스럽고 무술이 뛰어난데다 임금의 원행길에는 반드시 동행해서 최측근거리에서 임금을 모시기도 했으니 그 기세가 자못 하늘을 찔렀습니다. 착호군은 그 수가 적어서 특권의식도 상당했다네요. 번이 아닌 날에는 도성을 활보하며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여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는데 그리하여 때로 호랑이 잡는 일보다 민간에 해를 끼치고 백성을 잡는 일이 많아서 착호군에 대한 원성도 대단했다 합니다.

풍죽도에서 기형의 날카로운 눈에 잡힌 착호군은 본디 성질이 포악한데다 또 양반무리들 못지 않게 그 기세가 등등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별감까지 달았으니 얼마나 그 성정이 대단하였을까요. 제 그릇 감당 못 하고 어울리지 않게 권세를 쫓아가는 무리는 있기 마련이지만요.

사족을 붙이자면 백두대간을 호령하며 살았던 조선 호랑이들이 씨가 마른 것은 역시 일제의 짓이었습니다. 군인과, 경찰, 전문포수들을 동원하여 야마모토 세이코군이라는 특수부대를 조직해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는데 이 부대를 일제는 '제국 청년들의 기상을 드높이기 위하여' 구성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피폐해진 시대 상황과 일본의 경제 침체라는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기 진작용으로 만든 부대였답니다. 이 부대는 조선 팔도를 헤집고 다니며 마음껏 호랑이 사냥을 했는데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전국 어디를 가도 황송한 대접을 받았으며 실제 그들이 사냥한 호랑이는 당시 최고의 호텔이었던 조선호텔에서 요리해 '호랑이 고기 특별 시식회'까지 열 정도로 떠들썩하게 홍보를 했답니다. 이렇듯 일제는 조선 호랑이 사냥을 자국의 청년의식 고취라고 떠들고 다니며 식민 국가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방식으로 풀어내어 또 한번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조선 호랑이의 포효는 더 이상 백두대간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 자료 참고 최형국 지음 <조선무사>
강명관 지음 <조선의 뒷골목 풍경>
고연희 지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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