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의사가 그러냐고 하지 마세요.
사람 죽이고 살리는 거, 그런거 관여하고 싶지 않았어요.
죽어가는 엄마에게 무서워서 피를 줄 수 없다고 어린 나는 울었지요.
하지만 이 마음 속의 그늘은 아무도 보지 못해요.
남들에게 쓸데없이 내 어둠의 그림자를 보여주지 않아요.
훌륭한 사람은 아빠 한 분으로 족해요.
그 짐은 어차피 제가 다 지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 원망은 한 적 없어요.
나 윤 미주. 얼마든지 씩씩하게 잘 삽니다.
까짓거, 젊디 젊은 나이에 이런 고달픔 하나쯤 없는 사람 없지요.
착한 내 동생들, 턱없이 남말 믿다가 번번히 휘청대는 아버지만 아니라면
나는 씩씩해요.
모르세요? 캔디 윤미주라고요.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별빛 쏟아지는 그 바닷가에서 얼결에 마신 소주에 취해 엉뚱하게 그 사람의 인생으로
걸어들어간 그 날이 아니었다면...

너 따위 새끼하고 한 두름에 묶지 마라.
금으로 목걸이를 해 주어도 네 주제는 딱 그 자리야.
너, 놀만큼 놀았어.
주인을 넘보는 개에게 집을 넘겨주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어.
이제부터다 하강재.
네 앞에 내가 서 있다.

언제나 오빠의 침묵은 나를 외롭게 했어.
그거 알아 오빠?
나는 언제나 오빠가 정한 거리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애야.
흰 장미꽃을 사 주고 뚜껑이 있는 차를 보내오고 그리고 어둠 속에서 오빠는 찾아오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오빠.
오빠의 꿈 속에 정말 내가 있는 것일까.
나는 두려워 오빠. 그 대답을 나는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내가 꾸는 꿈 속에서 오빠는 언제나 서 있지만 나는 그 등만 바라보고 있어.
옆에 있어도 이렇게 외롭고 추웠는데...
그런데 오빠.
나는 왜 이렇게 떨리지...
그래도 함께라고 생각했는데.
오빠는 내게 내일을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였는데
오빠의 등이 점점 멀어보여.
그게 조금씩 나는 무서워.
어쩌면 나.
소리내어 오빠를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날이 올 것만 같아 그게 너무 무서워...

나 하강재.
밟는대로 밟히고 찢는대로 찢기며 살아왔다.
등 뒤에서 흔들리는 서늘한 칼바람 소리를 들으며 믿을 것은 이 몸뚱이뿐.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딴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살아 백년, 고작 그 뿐인 것을.
맨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면 얼음꽃이 돋겠지.
그래, 어차피 개 같이 살았고 또 그렇게 살다 가자 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서..
사람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나 너무 멀리 왔는데.
돌아갈 길은 이제 너무 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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